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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백(氣魄)과 예의(禮儀)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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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에게 기백은 생명과 같다.
기백이 없는 수는 생명이 소진된 무생물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패기 없는 바둑은 바둑이 아니라' 는 것이 프로의 철학이다. 절에 간 색시처럼 두어서는 틀린 것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여야 하나. 그 점에서 일본의 요다(依田) 9단은 화제의 인물이다. 패기가 지나치다 못해, 때때로 바람을 일으키며 도끼를 내리찍는 듯한 착점 태도는 상대에게 위압감과 함께 불쾌감마저 준다.
기(氣) 싸움을 중시하는 그의 그런 자세는, 지난 9월 말에 치러진 일본 명인전 제3국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났다. 2연패에 몰린 요다가 첫수를 좌상귀에 두었던 것이다.(기보 참조) 물론 대단한 화제를 일으켜, 일본의 주간지 {고(碁)}에서는 이를 두고 '의욕의 표시!'라고, 기백의 한 수로 받아들이고 있다.
바둑의 세계에서 첫 수를 좌상귀, 그러니까 백을 쥔 상대의 오른편에 두는 것은 대단한 실례(失禮), 결례(缺禮)로 받아들여진다. 상대가 칼을 들이미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런 기분이 든다. 예의로 악수하는 이유가, 서로가 손에 무기를 지니고 있지 않다는, 빈손임을 보여주는 호의에 있는 것 아닌가.
흑1을 받는 순간 조치훈 명인의 눈이 꿈틀거렸다 한다. 누군들 심기가 상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조치훈의 첫 착점, 그러니까 백2에 불과 2분만을 소비한 것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오랫동안 승부세계에서 살아온 탓에 이제 여유가 있어서일까. 2연승 이후 자신감이 충만한 때문일까. 아니, 아마 솟구치는 괘씸함에 손끝이 떨린 탓이 아닐까.
이 점에 대해서, 대부분 기사들의 의견은 다음과 같았다. 기분 나쁘겠다고, 그러나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느냐고. 기예(技藝)와 승부를 다투는 마당에서, 기백이 지나친 것 또한 자유요, 예술혼이 아니겠느냐고.사실 바둑을 두다보면, 투지와 예의 사이에서 딜레마가 없지 않다.
투지까지는 아니지만, 신경을 건드릴 정도로 소리나게 부채질을 한다든가, 담배를 피우는 정도가 지나쳐 반상을 안개 속에 잠기게 한다든가 하는 경우... .
흔하다면 흔한 일이지만... , 딜레마는 딜레마다
(문용직 프로4단)
○... 1999년 조치훈 9단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대삼관(일본3대 타이틀) 중 최고의 전통을 자랑하는 본인방을 후배 조선진 9단에게 빼앗겼고 이듬해 랭킹 1위 기성도 대만계 왕리청 9단에게 빼앗겼다.
조치훈, 고바야시 고이치 이후 열도의 최강자로 떠오른 요다 노리모토 9단을 도전자로 맞아 4:1로 명인을 방어할 수 있었던 것은 조치훈의 마지막 승운이었는지도 모른다. 99년은 조치훈 9단이 일본바둑계의 정상에서 서서히 밀려나는 퇴조의 징후를 보였던 한해였다.
●... 요다 9단은 이듬해인 2000년 25기 명인전에서 다시 도전권을 획득해 4-0으로 명인을 쟁취한 뒤 현재 27기까지 타이틀을 방어하고 있다.
○... 관련기보는 99년 요다 9단이 좌상귀에 흑으로 첫 착점을 하여 논란을 일으켰던 한판. 요다 9단은 이 도전기(24기 일본명인전 도전3국)에서 이 판, 한 판만을 이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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