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이런 얘기 했었다. 흑이 화점을 두는 이유 하나는 덤 때문이라고. 그 이유인즉 소목에서는 대형정석이 생기기 쉽다는 것인데, 그 경우엔 흑으로서 불리하다는 것이다. 반상이 결정되는 경향이 있으니까. 결정되면? 그 때는 흑이 덤을 낼 변화를 이뤄내기가 쉽지 않다.

한 걸음만 더 나아가자. 그렇다면? 흑으로서는 타협하는 정석은 바람직하지 않다. 타협하는 만큼 반상은 흑에게 유리하지도 불리하지도 않게끔 진행되기 때문이다. 진행된 만큼 반상은 결정되고, 결정된 만큼 반상에서 변화는 사라진다. 그 만큼 덤을 내기 힘들다.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알 수 있다. 그동안 의문 없이 받아들여졌던 기보의 우하귀 흑7에 문제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백12까지 서로가 만족하는 갈림으로 인정된 정석이나, 우변의 변화를 없앤 것이 백에게 만족스럽다. 아니나 다를까. 프로들도 요즘 느낀다. 이 정석은 백이 다소 두텁지 않을까 하고.

그렇다면 우상귀 흑5 굳힘도 그리 권할 수 없다. 변화를 없앤 것이니까 말이다. 변화는 덤을 부담하는 쪽에서 추구해야 하며, 덤을 받는 입장에서는 변화가 없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백의 입장에서 보도록 하자. 좌변 백2 백4는 어떤가. 화점은 소목에 비해서 변화가 적은 것. 백으로서 바람직한 선택이라 할 만하다. 그렇지만 앞의 논리에 따르면 백은 소목을 선택하는 것도 좋지 않은가? 그렇다. 그러나 화점도 좋다.

변화냐 결정이냐. 그런 개념이 초반의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을 생각하면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백에겐 외목도 바람직한 거 아닌가 하는 것. 외목에서 상대가 소목으로 걸치면 큰 변화가 일어나는 경향이 있는데, 그 변화는 대부분 대형정석으로 귀착된다. 그럴 것이다. 앞으로 예상되는 초반의 선호 하나는 백의 외목이다.

초반 그 모호한 세상에서, 화점이냐 소목이냐 그것부터 고민해야 하는 반상. 바둑이란 그런 것인가. 반상은 정석 이전의 갈등부터 엄존하는 곳인가. 그렇다. 반상의 길, 그 길은 시작 이전에 시작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