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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마 시절 - 어느덧 1년, 겨우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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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반상 일기(1월 18일) - 나의 아마 시절 - 어느덧 1년, 겨우 1년
12시 43분.
야, 눈이다. 눈이야. 펑펑 쏟아지는 눈이다, 눈이야. 함박눈이야.
이리 눈 내려야 하리. 그래야 하리.
쟁기꾼의 대지, 그 시인의 구절처럼 이런 날 옷깃 올리고 비밀의 연인처럼 한강을 걷는다면 그 얼마나 좋으랴.
음, 나도 아직 이런 정서가 남아있나. 다행이다. 다행이야.
1974년의 겨울은 그리 기억나지 않는다. 마산 부산 다녀온 거 빼놓고는.
1975년의 봄도 그리 기억나지 않는다. 입단대회 3차 예선 올라가본 거 빼놓고는.
1975년의 여름도 가을도 그냥 지나갔다. 입단대회 3차 예선 올라간 것과 고교생 대회 정도만 기억에 남는다.
어느덧 1년. 서울생활에 익숙해지니 시간은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지나갔다.
고교생 대회.
여름이었던가. 봄이었던가. 초여름이 맞겠다.
나도 그제는 나름대로 실력이 붙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만만하게 지고 싶은 생각은 없었는데, 그래도 차이는 쉽게 따라붙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1년이 지났지만 나는 조대현 강만우 두 후배와 비교해서도 한 점 정도 차이가 있었다. 그러니까 1년 동안 불과 반 점 정도 실력이 늘었던 것이다.
참 재주도 없는가보다.
그래, 없어도 된다. 지금 창밖에 내리는 저 푸근히 떨어지는 함박눈을 감상할 수만 있어도 말이다.
내 실력은 아슬아슬했다. 분명히 半 점 또는 한 점은 실력의 차이가 있었다. 그 증거를 하나 보자.
75년엔 제8회 고교생대회를 충암고등학교에서 치렀다.
누가 본선에 올랐던가. 정대상, 조대현, 강만우, 문용직, 이렇게 4명은 충암고. 1명은 누구였던가. 바로 이계훈 선배였다. 남산공전에 다니고 있었다.
누가 우승했는가. 이계훈 선배가 우승했다. 하하. 충암에 와서 충암 학생을 모두 이기고 전승으로 우승했던 것이다. 가만 있어라, 누군가 한 명 더 있었던 듯한데. 6명이 본선에 올랐던 듯도 한데. 그렇지만 충암 출신에 다른 한 명은 없군. 5명이었던가 보다.
당시 충암 바둑부를 지도하고 계셨던 김수영 사범님이 정말이지 답답하신 듯했다. 내가 제일 마지막으로 이계훈 선배와 바둑을 두었는데 절대 유리한 국면. 그러나 대마를 잡으러 오는데 무서운 기백으로 잡으러 오는 것이 아니던가. 손을 두 번 세 번 빼도 잡히지 않을 대마가 잡혔다. 하하. 그 참! 기백이란 무서운 것이고, 유리하면 초조한 법이다.
실로 승부의 마음을 다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내 보기에 어느 정도는 타고 나야만 한다. 물론 훈련도 필요하다.
나는 전패했다.
고교생대회는 한편으로 즐거운 잔치였다. 1년 전 입단한 김수장 초단도 놀러왔으며 재밌는 묘수풀이로 우리의 주머니 돈을 몇 백 원 가져가기도 했다. 김수장 선배는 그 때도 묘수풀이를 즐겨 만들고 했는데 다음 문제가 기억에 남는다.
나도 200원은 잃었던 듯하다. 한 번 푸는데 100원을 걸고 했다.
김수장 사범의 사활묘수
우상귀가 문제이고 좌하귀에 답이 있다. 백이 살아간다고? 그렇다. 살아간다. 왜 그럴까. 수순은 다 맞는데 말이다. 그건 흑1의 방향이 틀려서 그렇다. 흑의 외곽에 돌 하나가 더해있는 것을 활용해야 한다. 물론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 때문에 나도 100원 동전 두 개를 드렸다.
임선근 9단이 이 때 처음으로 서울에 왔다. 일종의 견학을 한 셈인데, 왜냐? 내가 2차예선에서 2집반을 이겼기 때문. 나 때문에 본선에 올라가지 못했다. 그러나 이 친구의 재주가 참 만만치 않아서 나보다도 늦게 바둑을 배우고 나보다도 당시엔 실력이 한 점은 약했는데 정대상 선배와 나보다도 먼저 입단했으니 참 대단한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바둑 배운 친구가 말이다.
임선근 이 친구는 부산진고를 다니면서 분명히 바둑만 두었으리. 우리처럼 말이다. 나와는 같은 학년. 그 이후로 나와 술도 참 많이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임선근이 물었다. 누가 기재가 있느냐고 김수장 사범에게 물었다. 조대현이가 좀더 두드러지는 듯하긴 한데… 다들 비슷비슷하지 않을까. 그리 답한 것을 옆에서 들었다.
75년 이후 83년까지 충암 출신 입단자는 모두 10명. 전체 24명의 약 반에 근접한다. 75년의 고교생 대회 본선 진출자는 모두 입단했다. 내가 제일 늦었다.
그러고 보니 어찌 보면 좁은 동네였던 듯도 하다.
그렇다면 말이다. 내 주위 선후배의 생활이 70년대 중반 이후 80년대 초반까지의 전형적인 입단자 생활이 되겠구나.
그러나 어려운 것이 입단.
전승으로 우승한 이계훈 선배는 79년 5월에 입단했고 강만우 군은 78년 4월에 입단했다.
어디 78년에 입단한 강만우 군의 입단소감을 좀 들어볼까.
前略
중3때 입단대회에 참가하였다가 예선 결승에서 탈락, 충암고 1년 때(1975년)에야 겨우 본선에 진출하였으나 3승 7패로 최하위를 면치 못하였다. 고2 때(1976년) 7승 3패로 3위, 실로 입단은 눈앞에 보이는 듯 하면서도 아스라이 먼 彼岸의 성이었다.
中略
78년 1월의 겨울날 고교 졸업식. 실로 만감이 교차하는 하루였다. 푸른 꿈을 안고 상경한지 6년. 그 숱한 날들을 바둑으로 생활하며 입단이란 목표를 잊은 적이 없건만 이렇게 텅빈 가슴으로 졸업식장에 서야 하다니!
…
한 번만 더 해보리라. 한판의 바둑에 내 모든 것을 걸리라.
그러한 각오가 주효했던가. 78년 5월, 제45회 입단대회. 그간의 각고에 몸은 허하였으되 마음만은 활줄처럼 팽팽히 긴장되어 있었다.
예선 최종국에서 김진환 아마 5단에게 극적인 반집승을 거두고 본선에 올라 8연승. 아! 이것이 그토록 꿈에도 잊지 못하였던 입단, 입단이었다.
…
옮기고 보니, 나는 알겠으되 아마추어 여러분은 모를까 아쉽다.
그래 우리의 생활은 알 수 없었다. 오직 입단만이 목표. 경쟁 상대는 바로 주변에 모두들 모여 있다. 그래 어떻게 할 것인가. 노력만이 할 일이지만, 그래도 어떻게 공부해야 입단할 것인가.
고교생대회라든가 다른 아마추어 대회는 모두가 입단대회를 위한 전초전.
그러나 나는 아직 그 힘든 여정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했다.
어느덧 1년이 훌쩍 지났지만 말이다. 강만우 사범의 경험에 비춘다면 나는 이제 겨우 1년이었다. 그가 상경한지 6년, 고등학교 졸업식 때 가졌던 그런 텅빈 고독은 내 짐작하기도 힘들었다.
어느덧 1년.
그러나 겨우 1년.
오후 1시 51분.
어느덧 눈이 그쳤구나. 그래, 눈발이 그립다 하려면 그 어느 겨울이 있어야만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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