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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마 시절 - 생활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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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반상 일기(1월 14일) - 나의 아마 시절 - 생활의 발견
정오를 막 넘긴 12시 05분.
오늘 날이 따스하다.
이제 나도 추운 날은 싫다. 날이 추우면 집안에도 썰렁한 맛이 감돈다. 어릴 때 김천 우리 집은 우풍이 심했다. 겨울에 머리맡 자릿물이 얼 정도는 아니었지만. 황금동과 평화동 두 곳에서 살았는데, 황금동 집은 57-1번지였던가. 좌우간 작은 여관으로 쓸 집을 사용했는데, 방이 많았다. 5개인가 6개인가, 7개였던가. 커서 가보니, 납작하게 눌러앉은 집이었다.
평화동 집은 일본인들이 살았던 집이었다. 그래서인지 목욕탕도 있었는데 큰 종을 욕탕으로 사용했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이제 아쉬운 건, 그 鑄物로 만든 욕탕을 한 번 크게 때려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적당한 때 징을 하나 마루에 걸어두고 싶다. 방짜로.
오늘 제목이 약간 이상하다. 임어당의 생활의 발견을 베낀 듯하니 말이다. 그러나 아니다. 우리에게 생활의 발견으로 소개된 그 책은 본 제목이 the importance of living이다.
그래도 나에겐 생활의 발견이 하나 있었다.
제일 처음 충암에 들어갔을 때에는 수업도 빼먹지 않았다. 심지어 교련까지 받았으니 말이다. 교련선생에게 비웃음 받았던 기억도 난다. 내 걷는 태도가 어리숙하다나? 하하.
내 학업은 바둑. 나는 처음에는 교련과 체육만 빼먹었다. 그러다가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국어 영어 수학만 들어가게 되었고 곧 그 수업도 들어가지 않았다. 아, 바둑을 두어야지. 공부야 나중에 하면 되는 거지. 아니다. 그런 생각도 아니 했다. 바둑을 특기하는 조건으로 학교에 왔으니 선생들은 자연스레 묵인하였고, 나는 점차 자유로운 시간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 바둑의 공부.
이렇게는 할 수 있다.
학업을 먼저 한다. 1년 정도. 그리고 바둑만을 한다. 1년 정도. 그건 가능하다.
아니다. 1년씩은 거의 불가능하다. 한 번 빠져들어간 새로운 관념의 세계를 하루 아침에 버린다? 그건 내 경우엔 불가능했다. 하긴 고교 수준의 공부라면 이틀이면 바둑에서 다시 학업으로 집중할 수 있겠다. 그건 내 나중에 해 본 바다.
한 달 정도나 지났을까. 충암으로 온 이후 내가 생활을 달리 하게 된 것이.
느즈막하게 일어난다. 아침을 먹고 학교로 출근한다. 하하. 출근 비슷하다. 그래도 교복은 차려입는다. 처음에는 신발에 기합도 받았으나 - 김천고와 달리 꽤 까다롭게 복장에 간섭 받았다. - 늦게 출근하는 데야 어느 규율부 학생이 정문에 서 있으랴. 그리고 그들도 곧 알았다. 우린 별개의 존재라는 것을. 야구부를 그들이 간섭하던가.
충암엔 야구와 바둑, 특별한 두 개의 인생이 있었다. 일반 학생들도 특별하다. 그러면 모두 3 개의 특별한 학생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바둑과 야구는 인생이었다. 학생들은 대개의 경우 졸업을 해야만 인생에 대해서 마주하게 된다.
좌우간 편했다. 수업을 아니 들어가도 된다는 것이 그 얼마나 즐거운 일이랴. 이미 바둑에 인생의 진로를 결정한 우리들은 우리의 힘만으로 세상을 헤쳐가야만 했다. 물론 정수현 선배처럼 입단을 일찍 하고, 학교 수업에도 상당히 성실했던 분도 있었다. 그러나 입단을 하지 못한 인생들은 정말로 심각했다. 그 심각성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느냐? 그건 서로가 다 달랐겠지만 말이다.
돌아보면 대부분 선후배들이 바둑과 학업 사이에서 고민했었다.
이렇게 말해보면 되겠다.
내 나중에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 누가 나보고 이랬다. 너 바둑을 두어서 머리도 좀 좋아졌겠구나. 하하. 그 건방진 태도들. 아니, 만약 그렇다면 머리 좋은 것을 중시하는 너도 바둑을 지금이라도 두면 되지 않겠어? 그렇게 말할 것을 그랬다. 세상엔 별 희한한 놈들도 다 산다. 부족한 놈들이 성내는 세상. 아니다. 능력은 부족한데 자신을 크게 여기는 인간들이 성내는 세상이다. 언제나 그랬으리.
바둑과 공부는 양립이 불가능한 것이다. 난 그리 본다.
어느 정도는 할 수 있다. 그러나 잘할 수는 없다. 이건 좀더 뚜렷한 이해다.
학교 수업과 바둑 공부와의 양립이 힘들다는 것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뿐이랴. 바둑은 근본적으로 저 홀로 하는 것.
1970년대엔 더욱 만만찮았다.
1960년대와 달리 1970년대 중반 이후의 바둑은 그 수준이 달라도 한참을 달랐다. 비교할 수 없이 높아졌다. 그건 기보를 보면 한 눈에 알 수 있다. 아마 정상이든 프로의 세계이든 2점 정도 수준이 높아지지 않았을까. 나는 그리 본다.
1970년대 중반엔 이미 바둑에 전념하는 아마추어들이 훨씬 많아졌고, 또 책도 비교할 수도 없이 많이 보고 있었다. 물론 책이라면야 오늘에 비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그러나 아마추어 대회가 1970년 전후를 기해서 많이 탄생했다는 점은 간단한 사회적 현상이 아니다.
1970년대의 아마 강자들은 오늘의 아마 강자와 수준에서 별 차이가 없다. 분명하다. 연구생 출신 아마 강자와 비교하면 다소 떨어지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바로 그래서, 1970년대 중반에 오면 학업하면서 입단한다는 것은 우연에 가까운 현실이었다. 무엇보다 실력이 늘려면 전국을 쏘다니는 일도 게을리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마 강자들은 여기 저기 흩어져 있으니까 그게 보편적이었다.
물론 예외는 어디서나 존재한다.
생활은 흘러갔다. 남두현 선배는 학업에 열중하고 있어서 함께 방을 썼던 나는 미안한 생각을 약간은 했다. 책을 보는데 그 옆에서 바둑돌을 두드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었지만 때로 무심하게 내 중심의 생활을 했다. 지금 돌아보니 죄송하기 그지 없는 일이었다. 그 얼마나 방해가 되었을까.
김상호 선배는 담배도 피웠는데 그건 유쾌한 일. 담뱃불로 무좀 치료하는 것은 보기가 좀 그랬지만 말이다. 요즘 원주에 계신다던가. 어깨에 손을 턱 얹으면서, 야 용직아, 넌 잘할 거야. 내 눈을 바라보며 낮은 허스키한 목소리로 격려도 자주 해주셨다. 감사! 상호 형은 바둑에 전념하지는 않았다. 그저 즐길 뿐이었다. 느긋한 고교 생활. 가끔은 부럽다는 생각도 했다.
함께 10시도 훨씬 넘어서야 집밖을 나서서 학교에 그래도 일과인양 가는 것은 참으로 맛난 생활이었다. 남가좌동 그 지금의 명지대 뒷길을 걸어 충암 후문으로 걸어갈 때는 따스한 가을 햇살이 우리의 발길에 밝게 떨어지곤 했다. 날은 청명했다. 언제나 그랬다. 잊을 수 없는 그 가을의 생활들. 그 형은 옷 매무새도 약간 허트리고자 단추도 한두 개 풀곤 했고 모자는 쓰지 않았다. 머리도 다른 학생들보다 훨씬 더 길게 길렀다. 참! 김천고와 달리 서울은 머리를 밀지 않았던 것은 좋았다. 스포츠 형으로 살았다. 아니다. 머리를 민 사진도 있었는데…. 아니다. 스포츠 단발이었다.
바로 옆 응암동도 무대였다. 학교 정문에서 아래로 내려가면, 저 감자탕 유명한 지역 방향으로 내려가면 곧 응암동 서점길을 옆에 두는데, 나에겐 그 거리는 산책로의 하나였다. 서점은 대부분 헌책방이었다. 일본 바둑책은 대부분 그곳에서 구하곤 했다. 값도 저렴했었고, 나는 사까다의 묘 시리즈도 그 헌책방에서 처음으로 만났었다. 秀策 등의 고전기보도 있었는데 그건 거의 보지 않았다. 재미도 없었다. 일본 사람들이 해방 때 남겨두고 간 것이 여전히 서점가에 흐르고 있지 않았나 그리 짐작된다. 물론 우리 나라 사람들도 일본 바둑책을 꽤 보았을 것이다. 전문직을 비롯한 잘 살던 계층들은. 군산의 바둑 동호회, 朝鮮棋界총람 등을 보면 그런 짐작이 그리 틀리지 않다고 여겨진다.
그럭 저럭 시간은 흘러갔고 또 흘려보냈다. 그렇구나. 그 흘러가는 시간밖에 남는 것이 없구나. 나는 바둑을 공부하는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자유로운 시간을 즐기는 학생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낙천적인 성격도 배워가고 있었다. 낙천적이라고?
1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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