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의 아마 시절 - 우등생클럽
|
|
|
|
|
나의 반상 일기(12월 13일) - 나의 아마 시절 - 우등생클럽
오후 12시 41분.
국민학교 5학년 때다. 가을이었으리. 초가을.
어느 날 친구와 놀러간 곳에 아이들이 왁자지껄 닭싸움을 하고 있었다. 닭이 아니라 발 하나를 반대편 손으로 잡고, 한 발로 뛰면서 상대를 넘어뜨리는 놀이.
물론 난 힘이 약했고 겁도 많은 편이었기에 적당히 하는 체만 했다. 대부분 학교에서 보던 얘들이었는데 난 그들이 오후의 한 때를 어떻게 보내는지 그 때까지 몰랐다.
얘들은 과외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름하여 우등생클럽.
김수한 선생. 그 분이 학생들을 참 잘 가르치고 계셨다. 그 날부터 나도 모르게 나도 그 클럽에 가입했다. 하! 내가! 사실 공부야 재미가 없는 것인데, 그 분은 재밌는 얘기도 곁들이면서 아이들을 잘 다독거려 주셨다.
그렇게 몇 개월.
그리곤 더 이상 과외는 하지 않았는데, 선생과 나는 바둑으로 자주 만났다. 애초에 나를 데리고 간 친구는 선생과 나를 바둑 두게 하려고 데리고 간 것이었다. 과외는 선생이 그냥 나를 옆에 두고 싶어서 참가시켰던 것이었고. 그래서 만난 첫날부터 바둑을 두었다. 오늘 오후 날만 차갑지 않다면 바로 그대로의 그 환하고 따스한 마루턱에 앉아서.
선생은 나보다 바둑이 약간 약했다. 나는 어린애라서 눈도 빨랐으니 내가 이길 수 있었으리.
그래, 그 남산동 그 아래, 골목길 좁은 길을 따스한 햇살 맞으며 우리를 인도하는 그 낮은 돌담길을 5분 여 걸으면 오른 쪽에 있던 그 뜰 넓은 선생의 집.
가고 싶은 시절이다.
내 지금까지 최고로 친 것은 1990년 5월 13일 오후 경주 황룡사 절터 앞 분황사. 그 분황사 좁은 마루. 햇살 가득 내려앉던 그 마루. 그 마루에서 잠시 눈 붙이던 것. 그것이 마루와 내가 마주할 때 가졌던 가장 의미 깊었던 것이었다. 의미가 아득하고 아늑했다고나 할까. 그리 말해도 되리.
그 몇 년 후 들른 분황사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나는 문화재에 대해서 나름의 철학을 갖고 있는데, 그건 다음과 같다.
모든 것은 변한다. 고로, 변하면 변하는 데로 그냥 두라.
지금 큰 집에는 몇 개의 트로피가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우등생클럽이라는 글자가 각인된 것으로 우승이라는 글자도 서툴게, 그러나 마음 넓혀보면 고졸하게 새겨져 있다.
클럽대회 바둑
선생이 학생들을 모아서 바둑대회를 연 것이었다. 가을 날에. 대략 몇 명쯤 참가했을까. 20명 쯤 되지 않았을까.
나는 재대결 끝에 우승했다. 실력은 내가 한두 급 정도 앞섰지만 다음 기보에서 보듯이 저 흑1 흑3 젖힘에 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도 잇지 않아서 졌다. 그래서 재대결.
왜 잇지 않았을까. 분명히 수가 난다고는 보고 있었다. 그러나 상대가 모르리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않았으리. 그러나 손을 뺐다. 왜 그랬을까. 답의 하나는, 그럴 수도 있지! 뭐, 안 그런가? 하하. 그 실력엔 그런 일이 자주 있으리.
선생과 함께
선생은 나에게 바둑책에 나온 묘수풀이도 보여주곤 했는데 그 중에 기억나는 것이 몇 개 있다. 다음 기보 흑1에 대해서, 패를 피할 수 있다는 데 놀랐으며 백4 백6으로 흑을 자충으로 만드는데 감탄했었다.
선생이 주는 문제는 대체로 잘 풀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비록 15급 정도의 실력이지만 말이다.
얘들은 바둑을 자연스럽게 익혔다. 마을 공동체가 어린 아이들의 공부를 대부분 맡아서 해주던 시절이었으니 서로가 쉽게 서로에게 전해주었던 것이다. 오늘 날 아파트 단지, 놀 곳이 없어서 과거 공동체가 맡았던 학습을 학원에서 집에서 개인의 비용으로 충당해야만 하는 것과는 다른 때였다.
환한 하루 하시라. 차가운 공기 나도 들이 마시리. 깊이 마시리.
1시 20분.
|
|
|
|
|
|
|
|
|
|
|
|
|
|
|
| ┃꼬릿글 쓰기 |
|
 명상의시간 |
｜ 2004-12-14 오전 9:41:00 [동감0] 
|
|
 이 의견에 한마디 |
리,리,리자로♬ 끝나는 말은♬ 었으리, 되리♬ 았으리, 있으리, 그리고 마시리♬
|
|
|
|
|
|
.gif){kind=log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