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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와 달 - 잠시 비껴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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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반상 圖書 일기 - 9월 24일 - 향기와 달 - 잠시 비껴서서
오늘은 금요일. 이제 주말이다. 어느새 금요일이 주말이 되었다. 사회적 가치야 내 몰라도 되리. 그러나 그 영향은 내 몰라라 해도 알게 된다. 금요일은 주말인가. 글쎄다.
하긴 우리네 프로들이야 주말이 따로 없다. 어떻게 보면 언제나 주말이다. 나의 경우 대국을 가장 많이 한 때는 1980년대 중반. 1년에 45국이 최대였을 것이다. 한 달에 서너 판. 그 때는 대국할 때 집중할 수 있었다. 이제 안다. 몸과 정신 모두가 활기가 있을 때 가능했다고.
바둑의 역사를 돌아보면 명인들의 경우 언제나 10대 말 20대 초에는 실력이 정상에 올랐었다. 중국의 경우는 그러고 보니까 잘 모르겠다. 왜 모르나? 중국 국수들의 전성기 때 나이에 대해서 잘 정리해 둔 책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은 언제 어디서 누가 누구와 두었다는 것이 상당 부분 기록에 남아 있고 또 그 기록을 자료로 잘 정리해 두고 있다.
중국은 왜 그랬을까. 대륙적인 느긋함? 매우 좋은 표현이긴 한데, 그것으로 설명하기는 너무 산만하다. 문장가들의 글을 보면, 언제 어디서 글을 쓰고 있노라, 그 까닭은 무엇이노라, 그런 매듭이 있는 편이니, 대륙적인 느긋함과 같은 개념으로 중국을 한 마디로 그을 수는 없으리. 그 언제가 날짜까지 다루지 않더라도 말이다.
바둑만을 두고 보면 다음 설명이 제대로가 아닐까 한다.
바둑 승부의 제도화.
제도화의 정도에 따라서 시간과 공간에 대한 주의가 환기된다. 그럴 것이다.
자, 그러면 의문 하나. 제도화는 어떤 경우에 발생하나? 어떤 조건 하에서 제도화가 가능하냐?
개인적으로는 생활의 핵심이 될 때?
사회적으로는 사회적 의미가 주어질 때?
모르겠다.
밤이다. 03시 32분.
어제 서울 거리 산책은 매우 피곤한 일이어서 밤에 일찍 떨어졌었다.
추석이 며칠 남지 않은 탓에 마음이 가게 된다. 어떤 책을 소개할까. 의미 있는 책이 있을까.
金龍國 선생의 한국 바둑사? 우리 나라 고대 바둑의 역사에 대해서 가장 넓은 典據를 갖춘 책이다. 본래 월간지에 연재하던 것을 모아 瑞文堂에서 펴냈다. 가만. 바둑의 역사? 그렇게 말해야 하나. 그건 모르겠다. 史書에 나오는 바둑 얘기를 모았으니, 그 내용의 성실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
아무래도 김용국 선생의 책은 다음에 소개해야겠다. 정식으로. 우리 나라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는 바둑의 진실에 관한 史料를 모은 최초의 책이니 말이다.
잠시 다시 눈을 붙이자.
다시 아침이다. 이토록 밝을 수가. 환하고 환한 하루 하시라.
오전 9시 55분.
추석이 오니, 일기를 며칠 접어야겠다. 그래서 즐거운 문제를 드릴까 한다.
名人因碩의 발양론에 나와 인세끼의 작품으로 알려진 것이 하나 있는데, 실은 본인방 도샤쿠의 작품이다.
이름하여, 향이현어세 香餌懸魚勢
향기로운 미끼에(로) 고기가(를) 잡힌(는)다는 말인데, 속 뜻이야 내 모르겠다.
그러나 이 문제보다 좀더 진전된 게 있으니 다름아닌 수극굴산실국지형이다.
향이현어세를 저본으로 해서, 스승을 대신해서 죠와 명인과 대국을 펼친 아카보시가 만든 문제가 수극굴산실국지형 垂棘屈産失國之形이다. 뜻은 무엇일까. 앞서 향이현어세와 같다. 춘추좌씨전에 그 자세한 내막이 나와 있다. 역사서로서 춘추만한 책이 드물고, 그 춘추에 左丘明이 전거를 찾아 상세한 해설을 덧붙인 것이 춘추좌씨전이다. 춘추는 너무 간략해 읽기에 난감하다.
수극굴산실국지형
흑이 먼저 두어서 백을 잡는 문제다. 온통 백이 지리멸렬인데? 하하. 그렇지만 좌하귀를 자세히 보시라. 흑 15점이 단수 당해서 잡힐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저 좌하귀 흑을 죽이면서 백을 잡으러 가고, 백은 흑돌을 계속해서 잡으면서 나아간다. 자, 그러나 아쉽게도 해와 달이 번갈아 돌아가니 차면 기울고 기울면 찬다. 백이 비록 잡히지만, 흑과 함께 큰 뜻을 함께 하니 과연! 아쉽지 않다. 조금도!
수극굴산실국지형 답
군데 군데 쉽지 않은 부분이 있다. 우하귀가 좀 어려운데 자충 때문에 흑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수순이다. 흑61을 62에 이으면 백이 14-三으로 들어가 흑이 자충에 걸린다. 백이 살아간다.
용직 군. 자네의 얕은 뜻을 잘 알겠네. 그도 뜻이라고 펴나. 한심하군. 가르쳐도 변치 못하는 자네를 위해서 한 마디 함세. 송편을 너무 많이 먹지 말게. 적당히 즐기란 말일세. 그 정도면 되나요? 자네 정도면 그 정도도 과하지. 술이야 말해 뭐하겠나.
어제 오후 5시 약간 넘어서 고개를 넘느라고 흔들리는 버스 창밖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산 능선 바로 위에 우현을 원으로 하는 둥그스럼한 반달이 얼음처럼 하얗게 떠 있었다.
하얗다고? 무슨! 그렇게 하늘이 깜깜하던가. 아직 날이 밝기만 하던데! 그래도 말이야 그렇게 표현하는 거 아닙니까. 하하. 걱정 말게. 문군. 곧 겨울이 오네. 그 때 진짜 차갑게 얼린 달을 구경시켜 줄 테니 한 번 안아나 보려나? 그 때 말야. 안을 수 있나요? 차갑다는데… . 그러니까 안아보란 말일세. 이 바보야!
늦은 아침이다. 10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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