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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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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받았다.
1) 프로들은 무엇으로 프로가 되었는가. 어떤 책을 읽었는가.
2) 애기가들에게 꼭 필요한 책을 추천하면 어떻겠느냐.
3) 이창호 국수는 어떤 책을 읽었느냐. 조훈현 국수의 장서는 어떤 정도냐.
그에 대한 궁금증을 내가 풀어 줄 수 있느냐. 편지의 내용이다.
부족하지만 답을 드리겠다.
1) 프로들은 프로가 되기 위해 어떤 책을 읽었느냐?
답) 닥치는대로 읽는다. 적어도 구할 수 있는 책이라면 다 읽는다. 실력이 약할 때는 잡지도 읽겠지만, 잡지를 책이라고 할 수는 없다. 잡지를 빼놓고는 어느 정도의 책을 읽을까.
내가 프로가 되기 전에 읽었던 책이라면 일본의 위기연감, 본인방전 전집, 사활묘수집, 일본명인전전집, 현대의 명국, 오청원10번기집, 우리 나라와 일본의 잡지들, 오청원과 사까다, 임해봉의 단행본들, 정석책, … 이 정도가 우선 기억된다.
요즘은 어느 정도의 책이 있을까. 훨씬 다양하다. 전집류도 많으며 연감도 중국까지 포함된다. 사활묘수집도 각 바둑도장들이 따로이 편집하여 수준에 맞게 제공한다.
몇 권 정도 될까. 모른다.
이런 표현은 한 적이 있다. 대략 한 100권 정도 보면 바둑이 둥글게 보이지 않을까. 그 정도 보면 아! 바둑이란 게 이런 거구나. 할 수 있다. 그렇게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훨씬 더 많이 본다. 요즘이야 말할 것도 없겠다. 최명훈 9단은 나중에는 더 이상 볼 책이 없었다기보다 있던 책도 몇 번이나 읽었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읽었는지 모르겠다.
물론 잡지는 제외한 것이다.
하나 더 있다. 제외된 것이. 옛날 바둑이다. 20세기 이전의 바둑은 아마도 거의 보지 않을 거다. 그건 당연하다. 굳이 볼 필요가 없다. 왜냐? 현대 바둑에 다 녹아 있으니까. 보면 더욱 좋겠지만, 안 보아도 별 문제가 없다. 현대 바둑은 기존의 바둑관 위에 더하여 분명히 다른 바둑관 위에 세워진 것이다. 화점을 둔 것도 20세기 신포석 이후라고 해도 무방하며 세력 또한 그러하다.
정석책은 어느 정도 볼까.
스즈끼 선생의 정석대사전이 있지만, 나는 그 책을 본 적이 없다. 나는 포석대사전도 수근대사전도 본 적이 없다. 정석은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 고등학교 졸업 직후 - 조남철 선생의 실전 정석을 방에 누어서 눈으로 한 번 사흘 만에 읽고 끝냈다. 정석 공부가 늦은 건 사실이지만, 사실 어떤 과정이 바람직한지 매우 어려운 문제다. 요즘 바둑 도장들은 다르리라.
알게 되는 순간엔 - 그 수준이 어느 수준이더라도 - 그 보다 낮은 건 볼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제대로 된 과정을 거치면 훨씬 진보도 빠르리라.
나는 그러한 과정을 거치지 못했으므로 사실 나의 안목이야 주장할 바가 없으리라.
2) 애기가들에게는 어떤 책을 추천할 수 있을까.
답) 추천할 수 없다.
왜냐? 내가 그 분들의 실력을 모르므로.
그래도 좋은 책이라는 게 있지 않겠느냐?
있다. 그러나 좋은 책은 구하기가 어렵다. 적어도 우리 나라 책으로는 좋은 책이 별로 없기 때문에.
그래도 한 번에 말해주면 어떠냐. 실력별로. 내용을 분류해서. 일본책이라도.
곤란하다. 매우 힘이 드는 것이고, 또 내 방에는 책이 거의 없다. 추천할 만한 책으로는 거의 없다. 나는 나의 관심에 한정된 책만 가지고 있다. 물론 그 책들은 비록 바둑책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프로기사들은 대부분 거의 필요로 하지 않을 그런 종류의 책들이다. 바둑도장에 가서 찾아서 분류하면 되겠지만, 솔직히 난 그런 노력을 할 생각이 없다.
하나 더.
좋은 책을 말하려면 좋지 않은 책도 말해야 한다. 신통찮은 책을 말하지 않고서 좋은 책을 말하기란 어렵다. 내가 보기에 나쁜 책도 없지 않다. 그러나 난 약간 곤란하다. 나는 바둑계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이라 나의 안목을 여과 없이 드러내기란 좀 어렵다. 정말 추천하고 싶지 않은 책도 있긴 하다. 다행히 그런 책은 몇 권 안 된다.
책의 좋고 나쁨이라는 것은, 판단 기준도 모호하지만 다른 한편 우리 나라 출판계와 문화의 수준에 더욱 크게 힘입은 거라서 내가 딱 잘라 말하는 것은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다.
3) 조훈현 국수는 어느 정도의 장서를 가지고 있을까. 이창호 국수는 내제자 시절 어느 정도의 책을 읽었을까.
답) 조 국수 집 서가를 살펴본 적이 있다. 몇 권 빌려서 복사도 했다. 후지사와 선생의 창작 묘수집도 그 중의 한 권이다.
특별한 책이 있었던가.
없었다.
수천 권에 달하던가.
아니다. 잡지를 넣으면 그리 될지 몰라도 그렇게 많지가 않았다. 그냥 많았다. 내가 제목을 모르는 책은 거의 없었다. 진기한 게 있었다면 내가 빌려 검토했을 것이다.
이창호 국수는 어느 정도의 책을 읽었을까.
읽고 싶은 것은 다 읽었으리.
읽지 않은 것을 물어본 적은 있다. 옛 古人들의 바둑, 그러니까 19세기 이전의 바둑은 별로 보지 않았다고 했다.
4) 책이란 무엇일까.
뜻을 글에 풀어 담은 그릇이다.
모든 뜻이 그렇듯이 책에 대해서도 과장이란 항상 있는 법이다. 더욱이 자기로부터 멀리 있고, 쉽게 구할 수 없는 법이라면 윤색도 쉽게 되는 법이다. 누구에 의해서? 타인에 의해서? 아니다. 먼저 자신으로부터 윤색하고자 하는 유혹이 온다.
손쉽게 실력을 늘릴 수 있는 책이 있을까.
있으나 또한 없기도 하다.
5) 나의 반상 도서 일기에는 어떤 책들을 다룰 것인가.
바둑에 영향을 미친 책. 바둑의 발전을 잘 드러낸 책. 바둑의 이해에 요긴한 책. 좋은 책.
이 때의 바둑이란 무엇인가.
문용직이 알고 있는 그런 세계의 바둑. 그런 바둑의 세계.
문용직은 다른 기사와 다른 세계를 알고 있는가.
약간 다르다. 관심이 약간 다르니까. 이 사람은 승부를 떠난 사람이다.
그렇다면 다른 기사들도 다른 세계를 알고 있는가.
물론이다. 그들은 문용직과는 또 다른 관심의 영역을 갖고 있으니까.
6) 충분한 답이 되었는지요.
사실 저는 책에 대해서 얘기할 때는 그리 맘이 편치 못합니다. 그래서 표현에도 감정이 많이 섞입니다. 묘하지요. 책을 얘기하는 데 무슨 감정이 들어가느냐 하는 의문은 저도 갖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다릅니다. 책을 얘기하는 것은 사실 세상을 얘기하는 것이니까 다르게 됩니다. 그냥 바둑 한 판의 해설과는 다릅니다.
그래서 앞의 글이 약간은 차갑게 흘렀습니다.
관전기를 쓴다든가 그저 수필 비슷한 글을 쓰게 되면 감정은 별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물론 감정 없이 쓴 글이야 없지만요. 논문이 그래서 편합니다.
바둑에 논문이 있느냐. 있습니다. 꽤 됩니다. 물론 논(論)을 붙였다고 논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논문의 형식을 갖추어야 논문이 됩니다. 그래야 비로소 내용도 논문이 됩니다. 당연하게도 내용이 없으면 형식은 더더욱 안 나옵니다. 논문 아닌 논문도 엉터리 논문도 많지요. 저를 뻔뻔하다고 하는 사람이 제 마음 속에도 있으니 언제나 두렵지만, 다행히 전 바둑에 대해서 논문을 쓴 적은 거의 없습니다.
하나는 분명합니다.
어렵다고 다 좋은 책은 아니며, 이름 있다고 다 좋은 책이 될 수도 없습니다. 그야말로 우리 옆의 책들은 옥석이 섞여 있는 것입니다.
제가 도서 일기를 쓰면서 제대로된 견해를 약간이나마 드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저도 모르겠다, 세상에 절대적인 관점이 어디 있느냐. 그런 얘기는 가능한 한 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6월 20일 아침 문용직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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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릿글 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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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ank you very mush!! 잘 읽었습니다. 항상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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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산2003 |
｜ 2004-06-21 오후 7:33:00 [동감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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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의견에 한마디 |
문용직 사범님의 도서일기를 관심있게 읽고 있어요. 얼마 전에 誠文堂新光社의 홈페이지에 들어갔더니 이창호9단의 저서들도 있어서 기분이 좋앗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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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산2003 |
｜ 2004-06-21 오후 7:37:00 [동감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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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의견에 한마디 |
우리도 좋은 바둑책을 출간할 역량은 충분한데... 아직은 기존의 책들과 차별화되는 기획물이 부족한 것같습니다. 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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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편지보내고 답장 받은 것처럼 잘 보고 잘 배웠습니다. 문사범님 글은 감정이 있어야 좀 더 재미가 있죠. 재밋께 읽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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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