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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감年鑑-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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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반상 圖書 일기(6월 7일) - 연감年鑑-1
날이 흐리구나. 창을 여니 가을인 듯 바람이 차다.
어제를 끝내고 오늘을 생각한다.
오늘을 짚어보니 어제가 떠오른다.
처음 충암에 갔을 때, 바둑을 어떻게 공부하면 좋을지도 몰랐다. 그저 두고 또 두고 했다. 물론 내가 실력이 낮아서 나와 가볍게 두어줄 선후배들은 많지 않았다. 하수와의 대국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약간은 꺼려지는 법.
물론 난 다음 이론을 지지한다.
두 점 정도의 하수와는 자주 두어라. 두 점 정도는 너의 착수에 반탄력이 있을 것이다. 약한 반항. 그러나 만만치 않은 저항. 평상시에 알고 있던 너의 수법을 마음껏 펼쳐라. 너는 부담이 없을 것이다. 심리적 저항감이 없을 것이다. 상수와 둘 때와는 달리 두점 하수에게는 자신만만할 것이다. 고수 앞에서는 괜히 자신의 실력에 대해 의문이 들지 않던가. 그래서 앞에만 앉으면 자신감이 안개처럼 사라지지 않던가.
두 점 접바둑이면 그런 우려는 씻어지듯 없어지고 自信만이 드러날 것이다. 평상시 써보지도 못했던 2단젖힘, 끊음, 축머리 이용, 약한 말의 방치, 수습에서의 붙임수 활용, … 마음껏 실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얻게 된다. 싸움을 할 힘을 얻는다. 힘이 붙는다. 그대의 손가락 근육 사이 사이에 힘이 붙을 것이다. 일본에서 쓰는 맥의 수법을 뜻하는 근筋은 肉之力也라고 중국 음운학의 원조 說文解字는 말한다. 바로 그 筋이 그대의 血脈 사이에 잠기게 될 것이다. 무협지로 말하면 내공이 쌓이게 되는 것이다.
가만, 정말 내공이라는 게 있던가? 즐거웠던 추억이 하나 떠오른다.
초반에 - 돌을 놓지 않는다. 척 던지고 밀어넣는다. 우상귀에 돌을 둘 때 좌하귀에 돌을 놓고 손에서 그 돌을 떼지 않은 상태에서 척하니 밀어 던지는 것이다. 우상귀로. 그러면 그 돌이 놓여지는 자리가 첫수가 되는 것이다. 그런 것을 가끔은 해봤다. 선배인 정대상 8단은 그 솜씨가 그야말로 빼어나서 아마도 내공이 있다면 그런 것이리라 하겠다. 좌하귀에서 던졌는데 우상귀 소목 아니면 화점에 떡 하니 돌이 풀 붙이듯 붙여서 떨어질 줄 몰랐던 것이다. 웃을 수밖에. 하하, 정말 어떤 수가 첫수가 될지 누가 알겠는가. 나도 가끔 해봤는데 잘 안되었다.
선배는 때로는 돌이 모여있는 곳을 향해서도 돌을 멀리서 척하니 밀었는데, 돌이 아, 글쎄 말이지, 다른 돌을 건드리지도 않고 착 하니, 낮게 깔아앉듯이 딱 두어야 할 자리에 붙는 것이었다! 그 참! 그 참!
하루는 묘한 광경을 봤다.
누구더라? 선배 아니면 조대현 9단이었으리. 바둑실에 가보니, 바둑을 공부하는데 반상에 돌을 그냥 쌓아가는 것이었다. 착점 하나에 1초도 걸리지 않고 척척 두고 있는 것이었다. 왼 손엔 책을 들고. 그래 물어봤다. 그거 기억했으면 그냥 놓지, 왜 책을 굳이 들고 있느냐고.
대답은 이랬다. 처음 보는 기보라고. 깜짝 놀랐다. 1도와 같은 기보를 놓아보는데 한 수에 1초도 걸리지 않고 척척 돌을 찾아내고 있으니 서울에 갓 올라온 내가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으랴.
1도
9시 09분.
9시 31분.
멀었다. 한참 멀었다.
저 1도를 놓아보는데 22분이나 걸리다니, 멀어도 한참 멀었다. 5분에 끝내야 한다. 때로 기보가 복잡해도 10분에는 다 놓아볼 수 있어야 한다.
컴퓨터로 놓아보는 것이니 직접 나무바둑판에 돌을 놓아보는 것보다야 불편하겠지만, 지금 내가 안경을 끼고 있으니 안경을 끼고 있지 않을 30년 전과 비교해 불편한 것도 사실이지만 - 난 이제 老眼이다. 지극한 자연의 섭리를 따르고 있는 중이다. - 그래도 22분은 좀 그렇다. 프로를 꿈꾼다면 노력이 한참 부족하다.
그렇다.
이런 식의 공부는 꼭 필요했다.
1) 모양 감각을 기르는데 더할 나위 없이 좋다.
2) 손끝의 감각도 기른다.
3) 수법에 대한 이해가 자연스레 높아진다.
4) 대국시의 감정을 간접적이나마 얻을 수 있다.
요즘은 연감이 큰 판형으로 나오지만 예전엔 보통 책의 크기로 나왔다. 그래서 활자도 작았다. 그래도 좋았다. 그 빽빽한 숫자 옆에 쓰인 읽을 수도 없는 해설 중에서 숫자와 한자만을 가지고 1국의 흐름을 찾는 것도 괜찮은 공부였다.
무엇보다 일본의 囲碁年鑑은 誤字 脫字가 없었으며, 기보 하나에 숫자가 틀리게 찍혀있다던가 또는 같은 숫자가 두 개 발견되는 경우는 그야말로 거의 없었다. 패감의 기록도 꼼꼼했다.
한국의 바둑연감은 그렇지 못하다.
많이 나아지고는 있지만 아직도 부족하다.
내가 공부할 때, 나는 연감은 빌려서 보았었다. 내 돈으로 산 적은 없었다. 돈이 없어서라기보다 서로가 잘 빌려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일본책을 구한다는 것은 헌책방에서 구하는 경우 외에 달리 새책을 구하는 방법은 미처 생각지도 못했었다.
앞서 1도에서 좌상귀 흑159의 침입은, 저번에 내가 사까다의 귀수묘수를 얘기할 때 기억나는 것 3개를 꼽았을 때, 그 중의 하나로 제시한 그 급소이다.
매우 피곤하다. 역시 이제 바둑 공부는 끝이다. 저 1도 한 번 놓아보았다고 눈에 벌써 무거우니 이거 참! 아냐. 잠이 부족했겠지.
1도는 가또 9단과 고바야시 9단과의 1997년 왕좌전 본선 1회전으로 흑을 잡은 고바야시 9단이 반집을 이겼다.
이 때는 고민한다. 저 반집까지 간 승부를 끝까지 놓아볼 것인가?
어떤 친구는 끝까지 놓아보았고
나는 끝까지 놓아볼 때도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다. 물론 종반까지 놓아보는 것은 그다지 맘에 들어오지 않았었다.
한편으로, 끝까지 놓아본다는 것은 자신의 성실을 확인하는 길이기도 했고
또 바둑의 승부는 끝내기도 중요하니까 그렇게 당연히 해야만 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 때 우린 연감을 놓아보면서
그런 내면의 성실에 대한 질문을 벗어 던질 수는 없었다.
바둑은 우리의 그날이었고 또 내일임을 누구나 다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9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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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산20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