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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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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반상 일기(4월 14일) - 낯선 반상
오후 4시 45분.
지금 보니 새삼스럽고도 새삼스럽다.
놀랍고도 놀랍다.
마땅히 놀라야만 할 것이다.
실전1
저 실전1.
흑91 백92가 놓여진 저 실전.
저게 왜 저리도 낯이 설까.
우선 말이다.
나는 저 흑돌이 매우 막막하게 느껴진다. 지금 이 순간엔.
분명히도 기억한다.
2월 7일의 그 날엔, 저 돌이 너무나 넓은 들판에 풀려진 그야말로 야생마처럼 여겨진 저 흑대마가!
그 날엔 저게 뭐 잡힐 돌이야?
그렇게 느꼈고, 또 모두들 그렇게 보았다.
아니, 이런 얘기들이 오갔었다.
저거 두 집을 쉽게 낼 수 있을까? 설마하니! 그래도 두고 봐야겠지? 창호가 두는데! 아, 그래도 뭐 저렇게 넓은 곳에서 잡히겠어? 음, 저거 살면 어떤가요… 형세는 흑이 좋지 않을까요? 좋겠지! 아, 저 상변 흑집만 해도 45집이 충분하잖아? 백이 그 만한 집이 날 데가 어디 있어! 좌하귀 백은 몇 집이야? 아, 그거 눈으로는 20집! 아냐! 저거 맛이 나빠. 스무집은 무슨 스무집! 우하귀 흑은 몇집으로 봐야돼? 음…, 스무집은 봐줘야 하지 않을까요. 패맛이 있는데? 그러면 열다섯집으로 볼까요? 하, 백이 좌변과 중앙에서 45집을 만들 수 있을까? 좌변 흑이 살면 두세 집은 날 것이고.
뭐, 그런 말들이 지나갔다. 누가 했을까? 나도 했고 너도 했다. 프로들만? 아마추어도 몇 분 있었던 듯하다. 아니다. 그 분들은 그냥 듣기만 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저런 형세판단을 했던가? 아마 5분은 했던 듯하다. 아니, 10분은 했겠지.
그나저나 저 백92에 대해선 모두가 한 마디들 했다. 이해할 수 없다고. 아니, 괜찮다고. 최강의 手 아냐? 저 수밖에 다른 수가 있나? 이창호가 마음 독하게 먹은 거같은데! 그래도 저건 좀 이상하군요.
그래도 저건 좀 이상하군요. 그 말을 한 친구는 김승준 8단이었다.
손으로 컴퓨터에 뜬 화면에 점을 한두 마디 짚으며.
참고도1
그의 판단은 간결했다. 근거는 더욱 더 명료했다.
참고도1과 참고도2를 비교하니까 그만이었다.
참고도2
참고도2가 A 방면에 진출하기가 흑으로선 더 용이하잖아요?
누군가 말했다. B로 들여다보는 약점이 있는데? 그 약점이 있잖아?
내가 말했었다. 아니 물었다고 하자. 그렇지. 물었겠지.
김 8단이 말했다. 아니, 뭐, 그거야 흑이 먼저 중앙에 두겠지요…. 그 특유의 느린 말투로 그렇게 말했다.
모든 게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때맞추어 돌 하나가 놓여졌다. 흑93. 김 8단의 판단을 돕기라도 하듯이. 모든 게 이렇게 딱 맞추어서 시간이 잡혀지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다. 그건 내면의 바램이 만들어낸 환상일지 모른다. 우린 현실의 필연성을 항상 자신 운명의 필연성으로 몰아가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아니다. 그런 판단도 빠르다. 공부도 없이 그런 판단을 내리지 말자. 어리석은 일이다.
실전2
그러나, 여하튼, 좌우간, 흑93은 떨어졌고, 김 8단의 판단은 맞았다. 다들 참고도1이 2보다 백에게는 좋다고 했다.
초점은 흑이 아니라 백이었다.
분명히 좌변 흑 대마가 초점이 되어야 할 듯한데,
그 사활이 먼저 주제가 되어야 할 듯한데,
공격이 가능한가?
저 흑을 공격하면서 백이 얼마만큼 집을 만들 수 있을까?
관심은 거기에 있었다.
참고도3
일찌감치 참고도3 백2는 곤란하다고 모두들 보고 있었다.
하긴 쉽다면 쉬운, 너무나 쉬운 참고도다.
그야말로 古典的인 맥점이 담긴 것이다.
참고도4
참고도4 흑5때 백은 어떡할 거냐?
질문할 필요도 없는 질문.
참고도5
참고도5야 백이 억울할 것이고,
참고도6
그렇다고 참고도6? 그거야 더욱 안 될 말!
좀 어려울 듯한데요... 백이 이상해요. 백92가 아무래도 이상해요.
그런가 보다. 하긴 그렇지 않으면 어떡할 거나! 판단이야 냉정할 수밖에 없다.
지금 와서야, 백92가 아니라 참고도1을 택했다면 어찌되었을까 뒤돌아 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사치스런 감상에 불과할 것이다.
이미 승부는 멀어진 것이었다. 백에게서 떠난 것이었다.
두 대국자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판단하고 있었다. 아니 판단이란 말도 적당치 않은 거 같다. 그냥 두 대국자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맞다. 알고 있었다.
참고도7
이 국수는 국후 검토때 참고도7만을 되돌고 있었다.
백70도 이상했다고, 그는 서울에 내릴 즈음에야 던진 나의 질문에 독백처럼 답했었다.
가만 있어라…, 용직아.
뭔가 이상하지? 이상하다. 뭐가 이상하지? 저 반상이 이상하게 다가온다. 뭔가 설게 다가온다. 저 반상은 내가 예전에 가졌던 그 반상이 아니구나. 나는 내려다본 반상을 가졌었지. 그래 나무 바둑판. 그게 그거야.
이상도 하다.
2월 7일의 그날에도, 우린 노트북에 잡힌 그 반상만을 보고 검토하고 했었는데. 그 때는 조금도 이상한 느낌을, 뭔가 설은 느낌을 받지 않았었는데.
그 때는 역시 실전이었구나.
오늘은 아무리 발버둥해도 돌아보는거구나.
그래도 정말이지, 이상도 하다. 왜 저렇게 화면이 낯선걸까.
창을 열고 커피나 한 잔 할까...........
손이 떨리는구나. 이상도 하다. 5시 29분. 너무 앉아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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