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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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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반상 일기(4월 10일) - 하루 종일 잤다
하루 종일 잤다. 6시 13분.
약간의 두통기가 있어 타이레놀을 한 알 먹고 누었더니 그냥 하루가 한 세월처럼 지나갔다.
새들의 지저귐에 눈을 떴다.
쏙싹, 쏙, 쏙, 쏙 싹, …, 싹, 쏙싹,
마치 물방울이 터지듯, 소리는 저 창밖에서 오는데 터지는 건 내 머릿속, 귓속.
침대 위에서도 내 몸 위에서도 발끝에서도 쏙싹, 쏙 쏙, 씩, 잘도 터진다.
봄날의 도약이 여름을 기다리고 있구나.
원고를 써야지. 월간 바둑에 원고를 보낼 게 있는데. 반상의 변천: 게임과 문화. 그 제목으로 원고를 써야하는데. 마감일이 내일인데. 사실은 벌써 이틀이나 지났는데.
쓸 것은 대충 써두었지만, 그래도 수순을 잘 잡아야 할 터인데.
수순을 잘 잡아야 새로운 눈도 떠질 터인데.
그래야 내용도 보충될 터인데.
아, 오늘 아침에 쓴 어제의 일기, 그 마지막 참고도9가 걸리는구나.
멋진 맥점이 숨어 있지.
참고도1
백1 끊음에는, 축은 아니되지만 흑6의 맥점이 숨어 있지.
참고도2
그 다음은 참고도2로 이어지고.
참고도3
그러나 좋아하지 말자. 누가 장담하더냐. 참고도3 백1로 변화하면 그 다음은 그냥 끝이다.
실전1
실전이 돌이켜진다.
백78은 어제 말했다시피, 이 한 수의 자리. 이렇게 끊지 않고서 상변과 우하귀의 흑집을 대항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과연 좌변 흑이 잡힐까….
오로 생중계를 맡아 자판을 열심히 두들기던 김승준 8단은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옆에서 들여다보는 모두도 고개를 흔들기는 마찬가지.
다만, 바둑을 좋아하는 함양의 아마추어만 다음의 진행이 궁금한지 주변에 몰려 묻고 또 묻고 있었다.
모르겠는데요. 어려운데요.
우린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다.
감으로는, 백이 어렵다, 그렇게 느끼고 있지만 말이다.
미래는 불확실한 것.
아마추어와 프로가 보는 것은 다른 법.
설명이란 시간과 장소에 맞추어야 하는 법.
어언 김찬우 3단이 해설을 시작하고
유창혁 9단과 박승문 5단 등 프로들이 다면기를 시작하고 있었건만.
그러니까 오후 3시를 훌쩍 넘긴지 벌써 오래건만, 경남 함양의 2월의 7일에.
반상과 프로들의 대화는 내밀했지만.
대국자야 말할 것도 없지만.
설명은 저 홀로 저 자신의 힘을 갖추기 시작한다.
바로 이 순간이야말로 설명이 저 숨은 힘을 비로소 드러낼 때다.
뭔가 결정된 듯한 반상의 형세와,
알 수 없는 미래와,
설명하고자 하는 해설자가 존재할 때,
설명은 저 자신의 힘을 발휘한다.
그야말로 신화가 등장할 때다.
당연히도 등장한다.
방송의 카메라 앞에 서 본 적이 있는가.
자신도 모르게 방송이 요구하는 어투와 내용을 말하기 시작한다.
데모를 해 본 적이 있는가.
자신도 모르게 군중의 심리에 빠져든다.
맘은 요동치는데, 몸은 말을 듣지 않는다.
반상의 설명에서도
그런 때가 있다.
실전1
바로 지금과 같은 형세일 때, 설명을 재촉 받을 때.
왜 그런가를 설명하는 이론을 나는 몇 개 알지만,
그래도 소용없다.
내가 설명을 재촉 받을 때는.
내가 나를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무엇이냐?
나는 집단이고 사회고 大衆이다.
4월 10일 늦은 오후.
날이 어둡은 기색을 띤다.
좋다.
이럴 때야말로 뭔가 찾을 때다.
火山의 때다.
당연히 오늘 일기는 여기서 멈춘다.
6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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