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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고난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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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참 바쁘게 보냈다.
아침 10시에 집을 나가 밤 11시 20분에 집에 왔으니 말이다.
하하
그런데 대학동문전 녹화 한 편을 떠올리고 나니 아무 것도 없다. 하하
물론 사람들과의 만남이 다 일이었지만, 그래서 즐겁고도 유쾌한 시간도 많이 가졌지만, 일로 떠오르는 건 녹화 한편이 고작이다.
시간은 그렇게 지나가는 것.
참 많은 사람과 만났다.
정수현 9단, 임선근 9단, 김학수 7단을 비롯, 대략 10여 분과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누고, 저녁을 두 번이나 먹었으니 내가 생각해도 대단하고 대견하다. 점심은 버스 안의 떡이었다. 호박떡과 두텁떡이었는데, 내가 좋아한다. 언제부턴가 점심을 버스 안에서 해결하곤 했다. 시간관념이 투철하고 아까워서 그런 건 아닌데, 점심시간을 묘하게도 지나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집에서 10분만 일찍 나서도 해결 되는데 말이다.
사실 많은 사람과 만난 건 그렇게 피곤하지 않다.
피곤의 원인은, 말을 많이 한다는 데 있다.
심지어는,
오후 6시 가까운 시간에,
한국기원을 막 나서려는 때 이상훈 8단이 뒤로 지나갔다. 우리는 앞 문으로 그는 뒷문으로. 그는 차를 기원 뒤 주차장에 세워 두었고, 우린 기원 앞 식당으로 가는 참이었다.
어? 이 사범!
막 1층 좁은 회랑으로 사라지려는 그의 2차원 평면을 붙잡았다.
바둑 끝났어? 어찌 됐지? 이겼나?
고개를 흔드는 그.
이런! 묻지 말 것을!
버릇처럼 묻게 된다. 이겼어?
1차 예선날엔 많은 기사들이 2층 예선 대국실에서 내려온다. 주로 오후가 된다. 난 왔다 갔다 하다가 마주치는 기사들에게 묻는다. 끝났나요? 이겼어요?
질문을 받는 기사들은 대부분 내 또래.
이상훈 8단은 반칙으로 졌다. 패를 따낼 차례가 아니데 따낸 것이다. 하! 그참!
참고도1
내가 1시 30분 경 본선대국실에 들렀을 때, 반상 두 개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참고도1과 2가 바로 그들이다. 대국자와 기록계는 점심을 하러 나간 참이었는데, 내가 기록할 때와 다른 풍경 하나는 기록에 노트북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물론 종이에도 기록한다.
참고도2
뭐, 그렇게 쓸쓸하거나 아쉬움을 자아낼 그런 풍경은 아니다.
노트북과 같은 도구는 문화생활의 일부.
자동차가 우리의 발의 연장선이듯,
수저가 우리 손의 연장선이듯,
우리는 우리의 연장을 하나 더 가진 것이다. 그것을 文化라 불러도 좋다.
문화에 대한 定義가 150개를 헤아리는 오늘 편하고 간단한 정의를 맘 속에 접어넣는 것도 지혜다.
참고도3
참고도3은 내가 흑이라면 두었을 그 진행. 흑3이 강하다.
점심 후 재개된 첫 수에서 백대현 5단은 A로 뛰어 들었다.
참고도4
참고도4 백1은 내가 백이라면 무심코 두었을 그 한 수.
물론 느슨해서, 그리 두어서는 이길 수 없다.
참고도5
참고도5 백1 이하가 김승준 8단의 선택. 흑을 사활이 걸려 있기에 A로 끊을 틈이 없다.
대국자와 관전자의 눈은 차이가 있는 법.
대국자가 더 적극적인 발상을 하기도 하지만 - 아마도 이게 보편적일 게다
관전자가 더 적극적 태도를 주장할 때도 있다.
승부를 업으로 삼고 있으면, 비록 관전자라도 나처럼 느긋한 태도를 반상에 그릴 수가 없다. 그들은 다르다. 당연히 달라야 한다.
그들은 다르다.
나도 한 때는 그들이었다.
실전1
흑73 끊음은 맥이고, 흑75로 단수했을 때가 문제.
참고도6
하긴 문제랄 것도 없다.
참고도6이 성립되지 않으니 말이다. 좌변 패는 중앙 흑A 쌍립을 끊자는 패감이 있어 백이 안 된다.
실전2
실전2 백76 흑77일 때가 문제다.
문제는 무슨 문제!
그저 단 한 수지.
백78 끊는 수 외에 다른 수가 있나?
없다.
생각할 필요도 없다.
참고도7
참고도7을 검토했을까?
참고도8
스쳐지나갔겠지만, 검토까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참고도8이 엄연히 눈을 부라리고 있지 않은가.
생각할 필요도 없는 것이라면,
그 생각은 잘라내는 것이 현명하다.
생각을 그칠 수 있는 훈련이 진짜 훈련이다.
나는 물론 그런 수준이 아니지만,
뛰어난 학자는 단순하게 생각을 밀고 나가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야 한다.
그래야 논리적이 되고, 사물의 관념적 재구성력이 뛰어나게 된다.
참고도8에서 흑A 먹여치는 수가 남아있는 것이 참으로 백에게는 억울한 일이다.
참고도8의 수순은 앞으로 두고 두고 이창호 국수를 괴롭힌 바로 그 수순.
참고도9
역시 이 국수의 독백처럼, 실전의 백70은 참고도9가 온당했나….
늦은 밤에 김종열 씨가 집 앞까지 바래다주었다.
물이라도 한 잔 하고 보내야 했는데, 참 미안하다.
문 앞에 누가 다녀간 흔적이 있다.
amazon.com
참 반가운 손님이다.
an introduction to mathematics
the principles of mathematics
Godel's proof
내가 무모한 건가.
이 나이에 저걸 소화할 수 있을까.
맛이라도 볼 수 있을까.
한 장을 여니, 글씨가 바래 있다.
다행이다. 읽을 만하겠다.
수열만큼 초보자를 괴롭히는 분야가 없다는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a.n.whitehead 선생님, 참 친절하시군요.
영혼의 불멸성을 증명한 mendelssohn을 논박할 때 kant가 맘에 가졌던 그 zero가 바로 이 zero란다. 음, 난해한 b. russell 선생님.
godel's proof은 깊은 수학적 훈련이 없으면 읽지 못한다 하는군. 포기할까. 그러나 제한된 수학적 지식만 좀 공부하면 그 함의는 이해할 수 있다고 알려주는군. 천재 뒤에는 천재에 못지 않은 빼어난 안목과 성실한 강사가 있다. 그래야 천재의 업적이 알려진다.
없다면?
없다면!
그것도 운이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요인의 집합을 운이라고 정의하면 어떨까.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났구나.
9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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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러쉬2
斯文亂賊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