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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한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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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날은 따분하다.
아마도 20세기의 초에, 20세기 초의 혼돈을 지난 시점에서, 철학자들은 그런 식으로 얘기를 진행했을 듯하다.
그러지 않겠는가. 그들이 나날을 따분하게 여기지 않았다면 왜 不條理니 實存이니 했겠는가.
반상은 어떨까.
사실 나는 많은 애기가들의 기대에 反하는 얘기를, 오늘 해야할 듯하다.
바둑은 건조한 것이다.
반상은 건조한 지대이다.
바둑의 한 수 한 수를 지탱해가는 프로들에게 목은 항상 마르다.
이창호 國手는 물을 많이 마시는 편인데 - 세수도 자주 하는 편이고 - 사실 그 점에서 다른 기사들도 다를 바 없다.
반상이 건조한 공간이 아니라면 왜 물을 마시겠는가.
반상이 따분한 시간이 아니라면 왜 차를 마시러 일어서겠는가.
반상의 한 수 한 수가 힘든 旅程을 이루는 기다란 線分이 아니라면 왜 点과 点들로 반상이 채워지겠는가.
물론 線分은 点이 이루어져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또, 点들이 모여서 線分을 이룬다고 생각한다해도 그렇게 틀린 것도 아니다. 아, 물론 틀렸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해도 꽤 괜찮은 발견을 낳을 수도 있다. 歷史에서는 틀린 starting point에서 출발했지만 의외로 그럴 듯한, 그래서 표면적인 결과는 다를 바 없는 結論을 이끌어낸 경우를 많이 보지 않는가.
이미 나는 비유를 말하고 있다.
그래서 이미 건조한 들판을 더욱 건조하게 할 수도 있으며, 또 쉽게 증발될 정도의 비가 내리는 논밭 - 다소나마 위안이 되는 -을 假像으로 만들었을 수도 있다.
실전
실전이다.
이 국수와 최철한 도전자의 실전이다. 도전2국 백68부터 흑73까지이다.
이미 점심시간이 지난지도 오래. 2시에 하려던 해설과 다면기를 기다려 대국실 옆 해설장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러나 벌써 2시도 넘어가려 한다.
3시에 해설과 다면기 모두를 함께 진행하자.
유창혁 9단과 박성수 3단, 박승문 5단, 김찬우 3단, 이상훈 4단, 그리고 내가 그렇게 결정했다. 그렇게 결정한지도 오래다.
반상은 여전히 안개에 덮여있고, 대국자에게 행여나 해설의 소리가 들릴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물론 이미 검증해 두었다. 점심시간에. 그리고 그 후에도. 대국장에서는 바로 옆의 해설장 마이크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래도 약간의 웅성거림도 낮추자. 두 대국자의 흐름을 좀 더 엿보도록 하자.
그렇게 계산했다. 오후엔 다시 긴장감이 높아지리. 그 때 하자. 해설도 다면기도.
돌이켜보면, … 그 모든 게 무관했다.아니, 무관했다고 여겨진다.
지난 것이 확신에 보다 큰 힘을 실어주는 법.
아니, 우리는 지난 일에 항상 확신을 갖는 법.
거 봐. 그렇게 말하는 법.
자, 다시 실전이다. 盤外야 여하튼 어차피 盤內는 딴 세상이다.
내가 그 반내에 들어가 보았을 때를 떠올린다.
무슨 소리가 들리더냐?
들리지 않는다.
무슨 소리가 들리지 않더냐?
들린다.
어떻더냐?
모르겠다. 그저 그렇더라.
빛과 소리에 불쾌할 때도 있지만, 그건 잠깐이고
상대의 손놀림이 거슬릴 때도 있지만 그것도 잠깐이다.
더욱이, 우린 짧은 제한시간 - 그러니까 하루만에 끝나는 시간을 가진다.
형식에는 더더욱 얽매이지 않는다.
우리가 일본 명인전 전집 등을 읽고 배운 그런 세계는 우리의 세계가 아니다.
사실 그 일본 명인전 전집의 세계는 그 속의 세계일 뿐이다.
나는 그 너머와 그 아래와 그 밖과 그 안의 차이를 짐작한다.
물론 형식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일본 바둑계를 지난 100년간 먹여살린 糧食이 무엇이더냐?
바로 그들이 만든 그들의 imagery가 아니더냐.
그게 뭐더냐?
그게 바둑이라는 財貨의 시장경제 값이 아니더냐?
山寺의 寂寂
山寺의 寂寂을
그 山寺의 寂寂으로 만든 노력이 바로 그들의 바둑이 아니더냐?
우린 여전히 열등감을 간직하고 있다.
열등감을 갖지 않는다?
그것도 이상하다. 열등감을 갖지 않기 위해서는 - 음, 소위 불휘기픈나ㅁ가 되어야한다.
그게 쉬운가?
천만의 말씀.
자,
지났다.
지나고 있다.
지날 것이다.
자,
반상에 그 모든 것이 쏟아진다.
우리를 만든 그 모든 것이 쏟아진다. 우리를 우리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우린 좀 복잡한 우리들의 작은 집합이다.
별밤이 따로 있더냐.
아름다움만 별밤이더냐.
실전
실전이다.
이 실전을 본 나는 그런 생각에 빠진다.
그럴 듯하게 풀이하면 아무런 말씀이 없는 자리에 온 것일 게다. 지금 이 순간이.
이 國手가 나중에 獨白처럼 말했다.
백70이 좀 이상했던 듯…, 그런가요…
그냥 그것뿐이다.
반상에 다른 바람이 불었을까?
나는 그런 바람은 없었다고 보고 싶다.
그냥 건조한 반상이다.
중반의 이 시기에 건조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이상하다.
물론 다음과 같을 때엔 다르다.
저번 양재호 9단이 역삼동에 연구실을 열었을 때, 그 문을 연 날에,
김승준 8단이 나의 손을 끌었다.
손님을 대접하는 줄 알았다.
참고도1
참고도1이 등장했다. 나의 흑번. 백이 둘 차례. 백이 백3으로 A에 이었다면 나는 또 한 번 김 8단의 차량 유지비를 보태야 할 판이다.
1만원을 걸지 않았던가. 물론 나는 그마저도 고맙다. 실력이 저 아래인 나와 기분좋게 두어줄 후배들도 그리 많지 않은 것이 현실. 양재호 9단, 최규병 9단, 유창혁 9단, … 모두가 좋은 후배들이지만, … 음, …음, 그러니까 한 판도 안 둬준다.
그러니까 요약하면, 김승준 8단이 제일 훌륭한 후배다. 10국에 1판 정도 내가 이기는 게 좀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김 8단이 의뭉스럽다거나 뭐, 그런 친구는 아니다.
참고도2
자, 그의 욕심이 참고도2다. 그는 싹싹한 성품을 욕심낸다.
자, 찬스다. 내가 소리를 불렀다. 옆에 누가 있었더라? 양건 사범, 이상훈 8단? 맞다. 그 친구들이 있었다.
이봐! 사진! 찬스다. 이제 안 둔다. 난 이 판으로 끝이다. 이 판 이겨서 이제 김 8단과의 그 오랜 승부 다리기에서 완승으로 마침표를 찍을란다. 자, 사진을!
참고도3
참고도3 흑1,3이 나의 멋진 맥점이다.
실전과 같은 수순.
이 밝은 오후에,
나는,
즐거움을 바둑을 아는 모든 분과 함께 하고 싶다.
1. 나는 최철한 도전자와 비슷한 실력이다.
2. 이 국수는 김 8단과 비슷한 실력이다.
3. 나는 고로, 이 국수에게 이길 정도의 비슷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
두 번째 즐거움은,
내가 1만원을 벌었다는 사실이다. 그 날 김 8단은 못내 아쉬운 듯 지갑을 열었다. 아! 그의 지갑, 그 내부를 살펴보는게 그 얼마 만인가.
증인은 증인의 의무를 다하라.
양건 사범!
이상훈 사범!
그 날 누가 이겼지?
그 바둑이 한 수 5초의 초속기로 진행되었음도 언급해달라.
나는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
왜냐?
약하니까!
나는 열등하지 않다.
왜냐?
내가 약한 이유를 알고 있으니까.
아까 오로에서 생중계를 잠깐 봤다.
참고도4
이영구 3단과 안조영 8단의 대국.
이 3단의 백18을 난 처음 본다.
흑15는 유명한 맥점.
백18에 감탄했다.
감탄한 기분이 들었을 때,
그 오후에 그냥 글을 쓰고 싶었다.
4월 8일자 일기를 4월 7일 하루 앞당겨 쓴들 무슨 문제 있으랴.
즐겁기만 하다.
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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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러쉬2 |
｜ 2004-04-10 오전 11:01:00 [동감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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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의견에 한마디 |
반상위의 별 밤 지기.. 문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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