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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산에 진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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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반상 일기(4월 7일) - 먼 산에 진달래
어제 우리 두 國手의 기성전 제3국을 감상했다.
나의 눈이 멈춘 곳은 흑3과 백4.
참고도1
참고도2
왜 나의 눈이 멈췄는가.
<참고도2>와의 차이 때문이다.
무슨 차이가 있을까.
참고도2는 최근 줄기차게 나타났던 두 기사의 기백. 목진석 8단도 그 기백의 흐름에 참가했다. 이론의 검증에 참가했다.
참고도3
흑5를 달리하는 가상의 참고도3을 볼까. 이 구도는 참고도2와 다르다. 어디에서 다른가.
둘 다 흑5의 배경이 백2 화점인 것은 같지만 참고도3에서 흑5는 우하귀가 비어 있다. 우상귀 흑1은 멀다.
참고도2 흑5는 우하귀로 백을 몰아간다. 우하귀에는 누가 있는가. 친구이자 아군인 흑이 기다리고 있다.
참고도1, 그러니까 어제의 실전이 백에게는 참고도2보다 싸우기에 편하다.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포석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결국 나는 분석으로 돌아오고 말았구나.
나는 왜 설명을 하는 걸까.
나는 그런 머리를 타고 난 걸까, 아니면 훈련 때문일까.
편하다. 다음과 같이 말하면. 둘 다.
감상에 분석이 필요한가.
자, 저 멀리 진달래가 피어있다. 멀리도 아니다. 그냥 앞 산에.
그런데 내 집 앞 길섶에도 진달래가 피어있다.
저 먼 산의 진달래는 흐릿하다.
내 집 앞의 진달래는 붉고도 선명하다.
흑선필승의 神話라…
우리는 눈앞에 드러난 것을 크게 선명하게 기억하고 무게를 두는 경향이 있다.
그게 인간의 보편적인 심리이다.
나도 그 속에 속한다. 지극히 당연하게도!
그렇다. 神話란 그런 거다.
굳이 C. Jung이나 P. Ricoeur, M. Eliade를 들먹이지 않아도 된다.
우리가 우리를 만드는 데 관여하는 조건의 구성을 神話라고 정의해도 된다.
참고도4
어라?
이게 뭐야!
나는 참고도4가 어제의 실전인 줄 알았다.
하!
백2가 화점이 아니구나.
참고도5
참고도5가 실전이구나.
하하. 이런 거다. 이런 거도 있다.
나에게 벌써 mind set이 되어 버렸구나. 그 동안 이창호와 목진석, 최철한이 나눈 그 대화 속에 나는 잠겨 있었구나.
아니, 이거야말로 말해주는 좋은 증거구나.
나는 내 앞의 진달래를 모든 진달래의 표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구나.
음, 단순히 slip이라고 치부해서 넘어가지 말자.
아니, 그저 slip이 맞을 거다.
하하하. 정말 즐겁다.
나는 참고도5 흑7과 백10을 볼 때마다 몸에 서리가 내리는 듯 느낀다.
저 한간높은협공이 주는 감각 - 피부가 사각거리는 감촉을 어떻게 벗어난다?
나는 그래서 저 한간높은협공을 두지 않는다. 거의 두지 않는다.
무서운 프로들이다. 저 한간높은협공을 둘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대단한 훈련을 쌓은 전문가라는 것을 나는 안다.
나는 안다.
오해일 수도, 나만의 상자일 수도 있지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저 수를 볼 때마다 나에게는 무서운 감촉이 서걱거린다. 지나가지 않는다. 서걱거린다.
하늘에 서걱대고 지나가는 시간도 여기서는 무용지물이다.
아, 다행히 날은 밝고, 꿈은 산만하지 않다.
그래도 어제 밤은 꽤 괴로웠다.
참고도6
참고도6의 모양이 머릿속을 헤맸던 것이다.
아, 글쎄, 백1이 오면 梅花六宮이 되는 걸로 꿈 속에선 자꾸만 자꾸만 인식했던 것이다.
그 참! 앞산의 진달래, 먼산의 진달래, 그 감상이 이렇게 한심해서야…
물론!
물론 나는 아주 정상적인 인간이다.
나는 그것도 안다.
자, 이제 다시 즐겨볼까. 감상을 애써 벗어나보자. 그 정도야 할 수 있다.
창문도 열고…,
아니다. 화장실 먼저 다녀오자.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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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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