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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운 관전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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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반상 일기(3월 29일) - 괴로운 관전자들
점심시간. 프로들의 점심시간.
예선전을 치를 때 프로들은 삼삼오오 점심을 하러 나간다. 대국 상대자와 함께 가기도 한다.
본선의 경우는 다르다. 본선 대국은 하루에 많은 대국이 없으며, 있어봐야 서너 국 정도만 한국기원 4층의 본선대국실에서 함께 한다.
당연히 점심의 풍경이 다르다. 대국자가 함께 점심 자리를 갖는 것은 드물다. 얼굴을 마주하는 것도 서로 피하는게 자연스러운 것이 그 날인데 하물며 점심에서까지 얼굴을 대하는 어색함이야 피해야하지 않겠는가. 친한 동료라도 그 날은 거북하다.
도전기? 그건 또 다르다. 전혀 다르다.
본선과 달리 도전기에는 입회인이 있다. 기록을 맡은 기록자가 있고, 신문에 관전기를 쓰는 관전필자가 있다. 신문사의 바둑담당 기자도 있으며, 대국을 준비하는 기원 사무국 직원도 있다. 최근엔 인터넷 생중계도 있어 인터넷 해설자와 진행자도 있다.
이들이 함께 있다.
이들 모두가 함께 점심을 하러 가기도 하지만, 그러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입회인과 대국자, 기록자와 신문기자, 관전필자는 대체로 자리를 함께 한다. 대국자가 따로 점심을 하겠다는 의사표시를 하지 않는 한.
2월의 7일에. 그 날의 12시 30분에.
눈 덮힌 함양의 고즈넉한 읍내 풍경에.
우리는 그 곳에 있었다.
입회인인 나는, 이창호 국수와 최철한 도전자와 함께 있었다.
두 대국자는, 따로 점심을 할 수도 있었지만, 그 날은 곤란했다.
호의를 가진 함양의 관계자 분들과 점심을 함께 해야 했다. 그 분들은 대국의 긴장을 깊이 이해하지는 못하는 분들이다. 당연하다. 또 그래야 한다.
점심은 대국장 가까운 생선쌈밥집. 함양은 지리적으로 바다와 가까워 음식재료에 해물이 적지 않게 들어간다.
20명 정도 함께 갔을까.
나는 입회인.
아! 말이야 정말이지, 지옥이 따로 없다.
두 대국자는 서로 얼굴을 마주하지 않았다. 다행이다. 2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함께 했으니, 자연스럽게 한 방에 몰리지 않을 수 있었으며, 또 하나의 테이블에 앉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긴장이 어디 가랴!
누군가가 두 대국자에게 식사를 많이 하라, 생선 맛이 어떠냐, 그런 얘기를 했던 거 같기도 하다.
그러나 점심에 와서는, 고마운 호의를 가진 함양의 관계자 분들도 자리의 거북함을 느꼈던 듯하다. 아니, 훨씬 이전에 느꼈겠지만, 그래도 점심 자리에서 감지되는 것은 또 다를 것이다.
내 옆에는 최철한이 앉았는데, 내가 어찌 말을 붙일 수가 있으랴! 말을 붙였는지 여부도 지금은 기억에 희미하다. 한두 마디는 했을 법한데….
두 대국자의 식사량은 유심히 보았다. 한 공기 밥은 다 비우지 않았을까 싶다. 세 가지 생선 - 꽁치는 알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거니까 -을 야채에 싸서 여러 가지 소스를 얹어 먹는 맛은 별미였는데, 두 대국자가 그 맛을 즐겼는지는 의문이다.
그 후, 그러니까 2주 쯤 후인가, 국수전 도전 제5국 마지막 대국에서 나는 루이 9단을 선생으로 모시고 - 나이는 내가 많지만 실력은 루이가 낫다 - 오로의 생중계를 진행했다. 진행은 보통 프로가 맡지 않는데 그 5국은 꼭 하고 싶었다. 그래서 부탁했다, 진행을.
그 날도 점심은 곤혹스러웠다. 어쩌다 보니까 함께 자리를 하게 되었는데, 한국기원 옆 생선집 ‘다원’에 10명 정도 함께 자리를 했다. 내 앞에 누가 앉았는가! 두 대국자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아! 이런! 그런!
그래, 점심시간은 落穗꺼리로도 다루기가 어렵다. 아주 난처하다. 뭔가 묘사하려면 기억을 떠올려야 하는 법. 그러나 그 기억은 떠올리기 싫다.
점심시간의 吳越同舟는 바라만 보아도 난감하다.
모르지, 두 대국자는 흔쾌하게 느낄지, 그건 모르지.
여하튼 분명하다. 그 어느 날이어도 도전기의 점심시간에 나누는 대화는 뜻이 모호하다. 그저 대화를 나누지 않으면 안 될 그런 강박이 대국을 관전하고 진행을 맡은 주변 사람들에게 온다. 뻔하다. 대화는 떠다닌다. 한 올의 무게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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