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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의 어느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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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반상 일기(3월 27일) - 1970년대의 어느 봄날
1970년대 말.
나는 바둑을 전문으로 하겠다는 생각은 접었지만, 바둑계와 완전히 멀어진 것은 아니었다.
관철동 한국기원은 놀러갈 만한 곳이었다. 물론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가 기사실에 자주 드나드는 것은 그다지 모양새가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지금은 어언 중견이 된 임선근과 강만우 등 친구들이 있어서 별로 어색하진 않았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는, 바둑계가 그다지 넓은 곳이 아니라 서로가 다 서로를 알 만한 곳이기에 관철동 한국기원은 市內로 나올 때마다 들리는 곳이었다.
가끔 記錄을 맡기도 했다.
雲堂旅館.
흥선 대원군의 운현궁 뒤편 골목에 있던 그 운당여관은 운치가 남아있던 곳으로, 도전기의 주 무대가 되었던 곳이다. 이름도 좋다. 운당이라. 구름이 머문다는 뜻 아닌가.
운당여관에 대해서는 쓰고 싶은 것도 많지만, 그러고 보니 또 모르겠다. 뭘 알까. 일부러 하루를 자기도 했다. 나 홀로. 바둑 때문은 아니었고 그냥 자고 싶었다. 이름이 맘에 들어서 그랬던 것 같다.
최고위전인가, 다른 기전인가, 어느 봄 날 나는 김인 국수와 조훈현 도전자의 도전기를 기록했다. 지금은 작고하신 朴在森 先生이 옆에 계셨다.
도전기의 치열한 맛은 그다지 없었다. 없었을까, 아니면 천성적으로 승부와는 그다지 가까이하지 못할 나의 태도 때문인가. 그렇게 심각하게 반상이 다가오지는 않았다. 자연히 記錄도 편했고.
김인 국수의 태도 때문인 듯도 하다. 그 때 그 분은 넉넉하게 승부를 대하는 느낌을 주셨다. 그건 그 날의 점심 때 나온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다. 운당여관 앞 생태찌개 실비집에서 점심을 했던 듯하다.
따뜻한 햇살이 내려앉는 한가한 점심의 한때.
대화가 있었다.
있었으나, 대화라 할 만한 게 아무 것도 없었다!
그냥 이 얘기, 저 얘기. 너무나 가벼운 語調로 박재삼 선생과 김인 국수가 대화를 나누기에 아무런 내용이 없었던 것이 분명했다.
편안했다. 그러기에 나도 몇 마디 했었다.
승부를 다투면서도 떠나지 않는 김인 국수의 그 평온한 語調와 顔色이라니!
박재삼 선생의 ‘그 고운’ ‘말씀의 어투’라니!
프로들이 대국 날의 점심시간을 언제나 그렇게 보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어느 봄날, 1970년대 말의 그 어느 날, 雲堂旅館 앞 그 점심의 자리에 靑山은 없었다.
靑山이라니!
靑山으로 말할 거 같으면, 어찌 구름과 같으랴!
그런 시간도 있었다. 그 날의 주인은 내가 아니었지만, 그 날의 점심에는 그저 대화 뿐이었다. 내용이 선명하지 않은 그런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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