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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심호흡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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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반상 일기(3월 21일) - 처음으로 심호흡을
시간.
말씀은 알지만 - 오는 것과 가는 것의 구별이란 우리가 붙잡은 인식일 뿐이라는 말씀은 들었지만.
자유로울 듯한 프로들에게도 시간이란 게 있다. 엄연히 있다.
아침과 저녁은 구별되며, 월요일과 일요일도 구별된다.
토너먼트 승부를 지면 다음 대국이 없다.
예선전은 모든 기전이 토너먼트.
실력이 부족하면 첫판으로 끝난다. 다음 대국이 없고 동시에 시간표가 사라진다.
남는 것은 자신이 메꾸어야 할 시간. 대국이 있다면 상대와 내가 함께 메울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
예전엔 - 그러니까 1970년대와 1980년대 - 시간이 지금과 달랐다.
아마도 내가 경험하지 않았던 1960년대와 1950년대는 또 달랐으리.
바둑을 지면, 아마추어 때나 프로일 때나 남는 것은 시간. 공부도 한 때지, 언제나 공부할 수는 없는 노릇. 뭘로 때웠을까.
프로기사라는 직업은 견디기가 쉽지 않은 업종일 것이다. 스스로 시간을 메꿔가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라는 것은, 봉급장이들은 잘 모를 것이다.
물론 프로는 봉급장이들의 어려움을 알 수 없다. 이해는 제한적이다.
반상에서 프로들은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른다. 생각이 이어지면 반상에서 시간은 멈추는 것.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의식되지는 않는다. 누구나 일에 집중하면 그렇게 되듯이.
그러나 어깨를 펴고 숨을 돌릴 때가 있다. 반상의 한 고비가 넘어갈 때.
대국자가 반상을 크게 둘러볼 때가 적어도 한 번은 온다.
바로 그 때 비로소 어깨를 펴고 숨을 돌린다. 자신이 호흡하고 있음을 비로소 안다. 아니다. 호흡하고 있음은 의식되지 않는다. 호흡한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는 한 호흡은 감지되지 않는다.
실전1
실전 백50의 순간에 최철한은 대국 시작 후 처음으로 허리를 한 번 펴지 않았을까.
비로소 귓가에 난방의 소음이 들려오지 않았을까.
백50이 놓여지기 전에, 과연 한 번이라도 허리를 펼 때가 있었을까. 호흡을 가다듬을 때가 있었을까.
없었을 것이다. 한 번도 없었을 것이다.
결단과 결단의 연속선 위에서는, 호흡이란 게 대국자를 조인다. 짧은 호흡만이 긴장을 견뎌낸다.
참고도1
참고도1과 2, 3은 실전 백50까지 올라오는 동안 최철한 6단이 한 번은 마주쳐야 했던, 결단해야 했던 순간들이다.
그 모든 때는, 최철한에게 있어 결단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 때는, 그 모든 백1에 대해서 흑2를 결단해야 될 순간들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참고도2
참고도3
참고도4
참고도2가 그 순간?
참고도4의 흑1의 착점이 더욱 결정적인 장면이 아닐까?
참고도2 흑2는 평범하고 참고도4 흑1은 그야말로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수.
생각을 하더라도 결단은 어려운 수.
그러나 아니다. 분명히 아닐 것이다.
참고도2 흑2를 둘 때 이미 참고도4 흑1은 결정되어 있었다. 예정되고 있었다.
참고도5
참고도5 흑1의 선택이라면 참고도4 흑1은 없다.
참고도5는 우변과 하변에 걸쳐 백의 두터움과 세력을 키워만 주는 구도이다.
결단의 시간에, 온통 반상의 공간만이 의식을 지배할 때,
허리를 펼 승부사는 없다. 그런 여유를 부릴 승부사는 없다.
그러나 실전에 이르러서…
백50을 이창호 국수가 착점하였을 때…
그 때는 몸을 한 번 펼 수 있다.
반상의 큰 그림이 드디어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숱한 밑그림을 거쳐서, 거치고 거쳐서…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 半身.
참고도6
실전의 백48은 부득이하다.
참고도6은 백이 실속이 없다.
흑을 싸발랐지만 실전보다 오히려 엷다.
참고도7
안개를 걷어낸 참고도7에서 明暗을 뚜렷이 구별할 수 있다.
黑과 白 모두가 陽刻이지만, 상변과 우하귀의 집을 좌변과 하변이 당해낼 수 없다. 우변 백의 삶이 불안하다.
그 불안의 여파를 우리는 백이 엷다고 표현한다.
참고도8
다시 한 번 보자.
실전에서 수순을 지운 다음의 그림인 참고도8.
과연 그렇다. 한 호흡 들이켜서 자신을 돌아봐야 할 때다. 뚜렷하다.
안 보아도 보인다.
허리를 펴고 고개를 움직이며 어깨를 가볍게 했다. 그리고 호흡을 깊디 깊게 끌어당겼다. 그 긴 숨소리가 고막을 크게 울렸으리라.
눈에 환하게 보인다.
일요일 밤 8시 24분.
일주일이 지나가고 월요일이 다가온다.
내일 아침, 시간을 자르듯이 黑이 반상에 금을 하나 선명하게도 그을 것이다.
저 반상을 앞에 두고, 몸과 맘을 다해 돌 하나 찍지 않을 기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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