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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18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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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반상 일기(3월 9일) - 백18에 대해서
창을 여니, 안개가 마을을 덮고 있다. 먼 산이야 말해서 뭐하랴. 7시 49분.
나는 항주 西湖의 안개만큼이나 다운 안개를 본 적이 없다. 뭐라 할까. 서호의 새벽. 피어오르는 듯 흩어지는 듯, 호수를 감싼 나지막한 산에 그 산에 안긴 마을에 잠기는 듯 몽롱한 듯, 仙境인 듯 俗世인 듯, 나인 듯 너인 듯 …
안개는 西湖가 있기에 안개가 되고, 西湖를 둘러싼 산은 안개가 있기에 산이 되고, 나는 그 어느 별장에서….
물론 아쉽다. 친구 말에 의하면 1992년에 갔을 때는 4면이 모두 산이었다 한다. 그러나 내가 있을 때는 3면만 산이었다. 남은 한 면은? 빌딩이었다.
아쉬운게 좋다. 누군가 자신의 서재를 求缺齋라고 했다던가. 어제 넥타이를 하나 선물 받았다. 어떠냐고 묻는 분에게, 나의 best choice는 아니라고 했다. 함께 웃었다.
어제는 매우 피곤했다. 일도 일이었지만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그래서 생각했다. 어젯밤 집에 온 직후 찬물에 샤워한 직후, 아, 오늘의 日記를 써버리자. 내일은 쓰지 말고. 어느새 强迫으로 자리 잡은 생활. 강박이라는 단어보다는 obsession이라는 단어가 더 적절한 감을 준다. 하긴 생활이 곧 강박일 듯하다. 시간도 나를 좀 먹는다. 8시 01분.
내가 보기에, 신문에 거의 매일 칼럼을 쓰는 사람들은, 참 딱하다. 그것도 社會나 人物에 대한 評을 써대는 사람들은. 그런 評들은 대단히 가치지향적이기 때문에 그 사람을 지독하게도 疎外시킨다. 내가 보기에 그들의 대부분은 무책임하게 쓴다. 그들은 언젠가 자신도 모르게 만들어진 자기를 잃을까 글을 기계처럼 써댄다. 소외는 그들을 더욱 글쓰기로 몰아간다. 비운 것을 채울 시간도 없이...... 나도 그럴까......
疎外라, 역시 alienation이 좀더 적절하다. 다른 표현도 많지만 나는 alienation을 매우 적절한 개념으로 본다. 심리학에서 얻었던가. 한 때 그 놈의 소외 개념은 나를 꽤 괴롭혔다. 철학서를 읽어도 사회과학서를 읽어도 심리학을 읽어도 심지어 그럴 듯한 포장의 책을 읽어도, 나오는 그 단어. 개념을 잡기란 정말 쉽지 않은 단어.
바둑은 가치중립적인 대상이라 나를 소외시키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시간과 생각이 들어가는 일이니 어찌 소외가 없을 수 있으랴. 어제의 피곤이 아직 풀리지 않은 지금, 나는 이 글을 쓴다. 안 쓴다고 누가 뭐랄 것도 아니고, 쓴다고 뭘 쓸 것이 딱히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이 글을 쓴다.
써도 될까.
바둑에 대한 글, 역시 나를 대단히 疎外시킨다.
어제는 돌아오면서, 이 생각 저 생각이 떠올라 에라 모르겠다. 생각을 하나로 모으자고 했다. 바둑의 덤에 대해서 생각했다.
나의 발견 책을 읽은 분들께 약간은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책에서 나는 덤에 대한 분석을 제대로 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미진한 게 많다. 물론 덤을 다룬 통계학적 모델은 틀리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그 논리를 우리 말로 표현하는데 미숙했다. 한 마디로 나는, 통계의 전문가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통계학적 모델은 맞다.
덤이 6집 반이라는 게 무엇을 뜻하는 걸까.
1) 먼저 두는 흑이 6집 반 정도 유리하다.
2) 덤을 6집 반으로 하면 흑백의 승부가 公正性이라는 기준을 충족시킨다.
1)과 2) 어느 것이 맞는 표현일까.
답은 2)이다.
덤이 6집 반일 때, 그 6집 반은 매우 미묘한 숫자다. 바둑이 끝난 다음 흑과 백의 집차이는 6집이냐 7집이냐 또는 n집이냐, 등등으로 나타나지만, 그 집과 우리가 덤 6집 반이라고 할 때의 집은 다른 값을 지닌다.
이것이 내가 어제 집에 돌아오면서 생각한 것이다. 순간 나는 대여섯 개의 변수를 떠올렸고 곧 가설을 만들었다. 덤에 대한 의문을 풀 수 있는 가설을. 왜 5집 반이나 6집 반일 때 모두가 흑의 승률이 약간 높은가. 그리고 과연 5집 반 덤과 6집 반 덤은 차이가 있는가. 나는 발견에서 덤 5집 반일 때 승부는 공정하다. 덤 5집 반은 적절하다. 그렇게 분석했다. 지금도 나는 내 모델이 맞기에 그 결론은 맞다고 믿는다.
적당한 때 나는 이 문제를 다룰 것이다. 어제 가설을 몇 개 만드는 순간, 이미 답은 찾았다. 적절한 표현이 제대로 된 문제를 만들고, 그러면 답은 따라온다. 시간이 약간 걸리느냐, 아니냐의 차이만 남을 뿐이다.
발견-2에서 약간 다룰려고 한다. 바둑의 승부는 대단히 모호한 것이며 설명에 필요한 변수는 매우 다양하다. 그래서 물론! 결론을 내리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것이다.
실전
그렇다. 실전을 보자. 흑17에 대해 백이 어떻게 대응하느냐? 수읽기와 분석은 난해하며 판단은 어렵다. 결단은 더더욱 어렵다.
다음 시간이 그 고통스런 결단의 의미를 전달한다.
백18에,
제2국은 28분 59초
제4국은 0초!
2주의 시간이 흘렀다. 제2국의 백18과 제4국의 백18을 그 2주의 시간이 갈랐다.
실전2
실전2는 제2국, 참고도1은 제4국이다.
참고도1
흑17에 대한 대응으로써 答이 있을까. 答을 찾을 수 있을까. 있다. 答은 찾을 수 있다.
그러나 正答은 없다. 찾을 수 없다. 있더라도 찾을 수 없다.
몇 개의 백18을 보여드린다.
참고도2
참고도2는 얼마 전 오로 대국실에서 본 것이다. 아마도 평상시 연구해둔 백18을 테스트 한 것이리라. 수순 중 백18과 백20은 대단히 훌륭한 맥점이다. 물론 단번에 보았을 것이다. 그 다음이 약간 난해하긴 하지만, 별로 어렵지도 않다. 그러나 여기서 저 수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는 것은 나에게 곤혹스런 일이다. 시간이 꽤 들어간다.
참고도3
참고도3과 4, 5는 김승준 8단의 해설에서 나온 것이다.
참고도3은 백도 둘 만하다.
참고도4
참고도4는 백이 다 죽는다.
참고도5
참고도5는 흑의 반발이 실패하는 것으로, 참고도3과 마찬가지로 백6이 멋진 급소임을 잘 보여준다.
참고도6
참고도6은 지난 LG배 결승에서 이창호 국수와 이세돌 9단과의 대국에서 나온 것으로 백을 잡은 이창호 국수가 나쁜 그림인 것으로 국후 검토되었다.
참고도7
참고도7과 8은 루이 9단의 해설이다.
루이 선생은 실전2 백18을 불만이라 판단했다.
참고도7은 감각적으로 두고 싶은 진행이라 했다. 좋다! 나도 찬성하는 감각이다. 2단젖힘! 탄력이 공보다 더하다.
참고도8
참고도8은 앞서 나왔지만, 루이는 탐탁해하지 않았다. 먼저 공격당하는 것이 싫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이렇게 깊이 들어가서 공격당하지 않을 재주가 있을까. 누구라도? 흑이 돌을 7개나 투자한 상변이다.
어느 수가 좋으냐? 실전2의 백18 이하에 대해서는 약간 엇갈린 판단이 있었다. 백이 좀 나쁘다고 보는 것이 있으며, 당사자인 이창호 국수는 그렇게도 많이 두지 않나요, 했다. 나는 어떤 의견일까. 내일이나 얘기할까. 좀더 생각의 여유가 필요한 문제다. 어렵다. 아주 어렵다.
답을 찾는 노력은 있되, 정답은 없다.
참고도9
어제 나는 바둑을 졌다. 어떻게 졌느냐? 대마가 잡혀서 졌다. 어떻게 잡혔느냐? 다음 참고도10이 보여준다. 재밌는 것은, 참고도9처럼 되면 얼마나 좋으랴만은 - 흑3은 소위 鎭神頭의 妙手라고 부르는 그 문제에서 나오는 맥점이다. 물론 흑3이 鎭神頭의 妙手는 아니다. 그냥 평범한 장문의 맥일 뿐이다. - 참고도10으로 흑이 다 잡혔다.
대마를 잡혀 지는 것은 그래도 유쾌한 패배에 속한다. 물론 누가 지는 것에 웃을 수 있으랴만. 적어도 5분은 맘이 편찮다.
참고도10
지난 밤에 꿈을 많이 만들었다. 정신이 노는 곳이 꿈이라 하니, 내 어찌 놀지 않을소냐.
아침이 밝았다. 아침이니, 역시 나는 놀아야겠다. 8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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