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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28     프린트스크랩
나의 반상 일기(2월 28일) - 나는 프로인가보다


문을 가까스로 닫고 나왔다.
대국장 앞 복도 건너편 벽에 글이 하나 큼직하게 붙어 있다.

정숙

그러나 오른쪽 복도 끝에서 뭔가 웅성거리는 소리가 여운처럼 들려온다. 그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나는 입회인. 대국을 원만하게 진행시킬 의무가 있다. 의무를 다하기 위해선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

군청에서 나온 바둑 관계자 분께 주의를 요청한다. 바둑이 좋아 모인 분들의 말씀을 막을 수는 없지만, 목소리를 조금만 낮추어 달라고. 다니면서 주의를 환기시켜달라고.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뜨고 알았노라고 말하는 그 분의 표정이 정말로 놀라 나온 듯하다. 그리곤 빠르게 걸음을 옮긴다. 안경을 쓰고 갸름한 얼굴의 그 분. 선량함이 묻어나오는 그 분의 이름이 뭐더라? 모르겠다. 좌우간 감사!

아! 그런데 대국장 밖에서는 분명히 그렇게 소음이 들렸지. 대국장 안에서는 밖의 웅성거림이 어떻게 들렸더라? 두 대국자의 얼굴만 보고, 반상의 돌만 쳐다보고, 그리고 난 뭐했지? 무의식적으로 반상을 들여다보고 입회인의 의무에 대해서는 잠깐이지만 까맣게 잊었던 나. 방을 나선 후에야 대국장의 정숙에 신경을 쓴 나. 이거 어떡하나? 다시 들어가서 소음 측정을 해보아야 하나?

겨울이다. 눈 내린 적막한 겨울이다.
아까부터 들려오던 배수관의 물소리가 새삼 크게 울려온다. 추우니까 난방 하는 것을 어떡하나? 내가 그 난방 스위치를 꺼달라고 해도 되나? 군청엔 직원들만 해도 수십 명일 것이고, 바둑을 보고 싶어 멀리 부산에서 온 분들만 해도 몇 명인가.

모르겠다. 에라 모르겠다는 아니지만, 모르겠다. 잠시 생각해보자. 의논을 해보자.

밤차로 늦게 올라온 동아일보의 서정보 기자가 저기 있구나. 그 옆엔 김승준 8단이 사이버오로의 실시간 해설을 하고 있구나. 저 친군 재능과 실력이 있지. 깨끗하게 반상을 이해하고 정리할 줄 아는 재주. 그것이 10년도 넘었구나. 김8단이 입단할 때 반상 앞에서 보인 그 차분한 태도. 그에 감탄한 내가 그를 몇 번이나 보고 또 보고 또 쳐다보았던가. 착수하는 손길은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았었지. 행마는 힘이 있었고 수읽기는 명료했었지. 옆에서 지켜만 보아도 알 수 있었지.

그의 표정은 그 때와 다름이 없다. 천성이 맑은 소년이 청년을 지나고 30을 넘어선다.



실전보

오후에 다면기와 해설을 겸할 대강당이다. 200평은 될 듯한 대강당의 앞 쪽에는 폐쇄회로 TV가 놓여져 있다. 화면엔 노란 바둑판 하나. 그대로다. 어제 놓였던 백6까지만 돌이 놓여져 있다. 아까 내가 대국장을 나설 때도 그랬지. 시계의 분침은 57분을 가르키고 있다. 9시 57분. 손길이 잡힌다. 보나마나 최6단의 손이리라. 검은 돌 하나 흑7. 그 돌이 반상에 놓인다. 12분 05초의 장고가 낳은 결론. 평범한 결론.










서정보 기자에게 다가갔다. 어떡하죠? 여기 모인 분들의 목소리 합창이 만만치 않은데요.

그러나 소음 측정을 위해 대국장에 들어가긴 싫다. 입회인의 의무 이전에 대국자의 신경을 건드릴까 두렵다. 조금이라도 그건 두렵다.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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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바스챤 |  2004-02-28 오후 7:25: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입회인에대한 안좋은 추억이 있었나..? 입회인은 저정도는 되야한다고 생각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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