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의 승부 - 관철동의 주변 - 활기차게 변하던 시절
|
|
|
|
|
나의 반상 일기(12월 30일) - 5년간의 승부 - 관철동의 주변 - 활기차게 변하던 시절
오전 11시 05분.
학교는 시끄러웠다.
1987년 6월에 대통령 직선제 시민항쟁이 있었으니 불과 그 2년 전.
나는 방관자였다.
어느 정도 방관자였나?
데모가 한창인 어느 날,
정문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학교 뒷담을 타고 내려갔다. 그러나 아차!
담이 높아 몸을 던졌더니, 아래는 시멘트 바닥. 내 구두와 시멘트는 내 몸의 무게를 흡수하지 못하고 충격으로 되돌려 주었다. 발 뒤꿈치에 쪼개지는 아픔이 왔고,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부은 발로 하룻밤 내내 열에 앓다가 다음 날 아침 부랴부랴 한의원에 갔더니, 부황을 떠 주는 것이 아닌가. 하! 신기하게도 당장 걸을 수 있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다음 날 한 번 더 오라고 하는 한의원의 말을 듣지 않았던 것인데….
그 다음부터 겨울만 되면, 뒷꿈치가 시리다. 양말을 하나 더 껴 신어야만 시린 발이 그런대로 견딜 만하다. 역시 전문가의 말을 믿고 들었어야 했다. 하하.
종로 2가 관철동 한국기원 주변에는 변화가 적지 않았다.
종로코아 건물이 새로 세워진 것은 아마도 1984년 경 이겠다. 이 건물은 지금도 여전히 종로코아라고 적혀있는 것을 얼마 전 지나치다가 보았다.
주변은 완연한 대학생들의 거리로 변해갔다.
다방 대신 커피솝이 한국기원 1층의 유전 有田 다방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주변을 에워쌌다.
생맥주 집이 일어섰다 무너졌다 했다.
설렁탕 집과 분식집 중간 정도의 가벼운 음식점들도 한 자리를 차지했다.
그 오랜 중국집 중원장이 점차 시야에서 사라져갔다.
12시를 넘는 늦은 밤엔 종로서적과 YMCA 앞 거리에 젊은이들로 메워졌다. 버스를 기다리고 택시를 잡아타려는 인파로 북적 북적.
주변 환경이 그리 변하는 것이 한국기원 오랜 출입자들에겐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
그건 내 모르겠다. 그러나 뭔가 신선한 기운이 바둑계와 사회에 흐르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느끼고 있었으리. 어떤 좌담회에서 그런 활기를 반영한 희망의 말이 나온 것을 기억한다.
잠깐 얘기 하나 끼워 넣고 싶다. 암울한 군사독재 하에서 무슨 그런 신선함이라든가 활기라든가 그런 말을 하느냐? 그런 질책 나올까도 싶어서….
민주화 투쟁의 시대라고?
하하. 누가 그런 말을 쉽게 쓸 수 있는가?
특정 주제를 가진 논문에서나 쓸 수 있는 말로 세상의 일상 日常을 단순화하면 곤란하다.
‘대통령 직선제’라는 민주화가 실현된 것은 경제성장의 결과로 얻어진 자연스런 흐름이었다.
경제가 성장하면 사회가 복잡해진다. 사회가 복잡해지면, 군인은 자신의 수준으로는 세상을 통제할 수 없다. 힘에 부친다. 군인은 병영으로 복귀할 수밖에 없다.
그래, 한국기원은 민주화에 목마른 사람들과는 아무런 직접적 연계가 없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다. 그런 것이다. 정치인들의 민주화 투쟁과 우리 보통 사람들의 민주화 이해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이 진실에 가깝다.
다시 돌아가자.
실로 어떤 동네에 사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굳이 맹모삼천지교 孟母三遷之敎를 떠올릴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한국기원 관철동 건물은 예와 다름없지만, 이제는 엉망이다. 주변엔 날림으로 만든 술집들로 꽉 차 있는데 장사도 잘 안 되는지 어둡고도 저속한 간판들로 거리를 채우고 있다. 장사가 잘 되면, 당연히 좀 더 밝은 분위기를 연출할 터.
다행히 청계천에 물이 다시 흐르니, 그 밝은 힘이 뒷골목에까지 미치리라. 관철동 건물 값도 좀 올랐겠거니 하는데, 가치가 오르면 그에 걸맞는 거리가 형성될 것은 자명한 이치.
나뿐만 아니라 동료 기사들도 가벼운 커피솝을 애용하기 시작했다. 아마 도토루, 그렇게 상호 商號 붙인 당시로서는 새로운 타입의 커피 매장이 기원 바로 앞에 있었는데 점심 후 들리곤 했었다. 넓은 유리창으로 거리를 면한 커피솝은 20대의 취향에 잘 어울렸다.
기원 1층 유전 다방은 40대 선배들이 주로 드나드는 곳이었다.
有田 茶房.
85년인가 86년인가의 가을에 민병산 閔丙山 선생을 다방 앞에서 만났다. 인사 드렸더니 별 말씀 없이 다방으로 나를 이끌었다. 자리에 앉자 점퍼 안주머니에서 두루마리를 꺼내시더니 두 장을 찾아 건네주시었다. A4 용지 비슷한 크기의 한지 韓紙에 그 분 특유의 붓글씨와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步步光明 …
山河大地 …
친구가 첫 장을 가져갔고,
두 번째는 내 석사 마치고 아담하게 표구해서 가르쳐주신 선생에게 드렸다.
민병산 선생의 글은 월간 바둑이나 중앙일보 분수대에서 접하기도 했는데, 지금 우리가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은 철학의 즐거움(新丘文化社, 1990)이다. 질박한 문체, 간절한 심정.
당시 주변 환경이 일부 그랬다.
한 번 그려보고 싶은 그 시간.
세밑에 바짝 다가섰다.
지난 1년 감사!
오전 11시 57분.
그저 그런 얘기를 하는 듯하다.
읽는 분께 아쉬움을 드리지나 않을지?
(나의 창작 하나)
시간이 있다면 묘수풀이 하나 만나보지 않으시련지?
동료들의 주머니에서 3천원 가져온 문제다. 물론 제한시간이 짧았다.
흑이 먼저 두어서 패를 낸다.
(나의 창작 - 틀린 답)
(나의 창작 - 맞는 답)
|
|
|
|
|
|
|
|
|
|
|
|
|
|
|
.gif){kind=logo}
무등산아래
문용직
chos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