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의 승부 - 입학 언저리에서 -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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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반상 일기(12월 19일) - 5년간의 승부 - 입학 언저리에서 - 돌아본다
아침 9시 55분.
감기 기운이 만만찮다.
며칠 전 송년 모임이 있었는데, 술은 과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추위 속의 술은 위험한 것.
몸살로 만족한다.
몸살은 내 무관심의 대가.
언제나처럼 의문이 다시 한 번 돌아온다.
왜 나는 대학원에 진학했을까.
청년, 목표가 어정쩡한 청년의 활로 찾기?
그 정도였을까. 만약에 그것이 유일한 근거였다면, 그 증거로 나는 입학해서도 그리 학업에 몰두하지 않았던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바둑도 여전히 두었으며, 특히 승단대회에서는 집중했다.
물론 1985년 입학 이후의 생활에 대해서 뚜렷한 기억은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있다면, 다행히도 술을 적게 하게 된 정도랄까. 생활을 둘로 나누면 남는 시간은 줄어든다. 줄어드는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시간이 줄어들면 그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싶기 때문이다. 시간의 가치가 높아지기에 그러하다. 부족한 것이 귀한 것.
시간의 가치가 커지면 자신의 하는 일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효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모호한 결정의 여파를 느끼지는 못했다.
내 결정의 의미를 알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여전히 프로기사였다.
그러나 의문은 남고, 아쉬움은 피할 수 없다.
그것은 당시 한국 바둑계가 활발하고 융성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때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력의 편차가 프로세계에서 여실히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두 가지 점에서 프로 개인은 더욱 노력을 해볼 만하지 않았을까.
왜 나는 프로 외의 다른 나를 꿈꾸었을까.
한국 바둑계는 새로운 기운 속에 살고 있었다. 세상 모든 것에 활기찬 때가 있고 정체되는 때가 있는 법인데, 1984년 경은 활기를 얻고 있던 때라고 할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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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단 3명
8단 2명
7단 6명
6단 15명
5단 9명
4단 21명
3단 14명
2단 9명
초단 8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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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이 끝나고 1985년이 시작되었을 때의 한국기원 기사 분포다.
다이아몬드 형태를 띤다.
활기가 돋아날 수 있는, 불안정한 구조.
그 속에 들어간 개인, 노력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구조이다.
일본에서는 다께미야가 조치훈에게 棋聖戰 도전을 했다. 오늘과 다른 기풍이 당시에는 살아있음을 알겠다. 다께미야 개인의 기풍도 기풍이지만, 이틀걸이 대국에서는 세력도 살려볼 만한 취향이다. 바둑은 넓은 것. 요즘의 천편일률적인 바둑 흐름과는 다른 시대였다. 이는 중요한 동기가 될 수 있다. 개인의 성취동기에 있어서.
호기심 이상, 상징 이상으로 당시 의미 있었던 것을 하나 들 필요도 있겠다. 일본에서는 조치훈이 山城宏 八段 등 일본 신예(?)들과 치수고치기를 두고 있었다. 호선으로 시작해서 두 판이면 치수를 고친다. 두점으로 내려갔다. 조치훈이 4연승한 것이다. 그 때가 1984년 5월.
승부는 무서운 것이다.
까딱하면 호선 바둑도 두점으로 내려갈 수 있다. 그것이 승부판을 만났을 때 적지 않게 드러나는 심리적 탄력성이다. 승부기질이 약하다면 승부의 중압감을 이겨내기란 매우 어렵다.
우리 나라에서도 그 이후 몇 개의 치수고치기 승부를 기획했다. 1985년 이후
조훈현과 도전5강의 태풍대결
조훈현과 신예 3인의 위험대결
프로정예와 아마최강의 오픈토너
인기 프로 10인과 아마 10강의 대결은 그 전부터 있었던 것.
왜 그런 치수고치기 승부를 기획했을까?
프로의 실력이 오늘날과 같이 평준화되지 않았던 점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프로세계의 실력 편차가 적지 않았기에 제기되었던 의문, 그에 대한 답을 알고자 한 것이다. 실력의 편차가 작지 않았기에 단위 段位의 권위가 살아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일본과의 격차를 좁혀야 한다는 암묵적인 합의가 바둑계에 널리 확산되었기에 가능했던 기획. 지난 번에 말했듯이 조훈현이 일본의 정상에 밀리지 않는다는 인식의 확산.
조훈현의 실력에 대한 믿음은 곧 일본 바둑 정상의 실력을 우리가 직접 한국에서 만나고 있다는 사실감을 현실화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알고 싶었을 것이다.
우리 나라 중견의 실력은 어떤가?
우리의 신예 실력은 어떤가?
그런 현실인식을 불어넣어준 사건이 또 하나 있었다. 놓칠 수 없는 것인데, 당시 충암고 2년생이던 유창혁의 제6회 세계 아마추어 바둑 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이었다.
월간 바둑 6월호(1984)의 표현에 의하면,
“아깝게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그 실력은 전세계 바둑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세계대회 참가 이래 초유 初有의 쾌거이다.”
그 바둑 한 번 보자. 유창혁의 그 이후, 기풍과 재능이 그대로 살아있는 대국.
白: 유창혁 5단
黑: 平田博則 7단
1984년 4월 12일 백172 이하 줄임. 백 7집반 승.
(화려한 유창혁)
유창혁의 활발한 운석 運石, 그러니까 감각이 화려하다.
전체 국면을 내다보는 안목이 자신감으로 그대로 결부되고 있음도 여실하다.
좌변 백54 이하 백64, 특히 백64가 경쾌한 감각이다. 자신감 서린 감각.
백102를 둘 때는 승리를 확신했다는 유창혁의 국후감이 있다.
그 후 서로 간에 아쉬운 점이 없지 않았지만, 시원시원하게 대국적 大局的으로 반면을 이끌어간 백이 내용으로 자신할 수 있는 1국이다.
세계 아마추어 대회에서의 성적은 그 때까지 일본 우승 1회, 중국 5회였다.
세상이 변하고 있었다. 그 변화를 그 내부에서 안다는 것은 매우 힘들지만.
오전 11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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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릿글 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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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직모를뿐 |
｜ 2005-12-21 오후 6:48:00 [동감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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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의견에 한마디 |
그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소재와 여유로운 뭔가가 항상 묻어나는 문사범님 글을 잘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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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일기가 고맙습니다. 저의 일상을 일부 지탱해 줍니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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