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의 승부 - 술 마시던 시절 - 반상은 낙관파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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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반상 일기(12월 15일) - 5년간의 승부 - 술 마시던 시절 - 반상은 낙관파였지만
오후 12시 52분.
늦은 하루가 시작된다.
지난 밤의 술기운에 밀려서 지금에야 겨우 일어났다.
1984년 가을과 겨울.
나는 거의 매일같이 술을 마셨다. 1차, 2차, 3차. 그러나 아침부터 마시지는 않았다. 그 정도는 훗날 한두 번 했을 뿐이다.
웬 술을 그다지도 마셨을까. 아침의 그 쓰린 속풀이를 매일 같이 경험하면서도. 다시는! 그런 말을 되풀이 하면서도.
나는 명인이 될 수 없다는 그런 이해 때문에? 아니다.
무의미한 일상을 의식하기 시작해서? 아니다.
술을 좋아해서? 아니다.
여하튼 마셨다.
술 친구로는 고등학교, 대학 동창과 기사들.
동창들도 취직을 해서 주머니에 여유가 있을 때였고, 기사 동료들도 성적이 괜찮을 때라 술값 걱정은 없었다. 일례로 임선근의 25연승은 훌륭한 자금줄이었던 것이다.
1차는 소주. 2차는 맥주. 그 다음은 되는 대로.
뭔 이야기를 그리도 하고 싶어 했을까.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뭔가 탈출하고픈 욕구가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나 어디로?
나는 그 구체적인 행로를 찾지는 못하고 있었다.
여름부터 활동을 시작한 나에게 대국은 그리 많지 않았다.
늦겨울과 봄이 대부분 기전의 출발점.
1985년 2월까지의 내 성적은 25승 6패. 80%를 약간 넘었다. 출전한 기전으로는 박카스배와 KBS바둑왕전, MBC제왕전, 국수전, 기왕전. 승단대회는 9승 3패로 二段으로 승단했다. 본선토너먼트에 올라간 것은 박카스배, 바둑왕전, 제왕전. 속기의 성적이 괜찮았다고 하겠다.
성적이 좋은 기사들은 대국이 많았다.
서봉수 八段은 48승 27패로 75국. 김수장 六段은 37승 26패로 63국. 강훈 五段은 44승 21패로 65국. 임선근 四段은 47승 23패로 70국. 수도승과 같은 자세로 대국에 임한 김종범 三段은 39승 15패로 54국.
나는 반상에 대해서는 낙관파였다.
형세가 엇비슷하면 나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편이었다. 낙관파였기 때문에 언제나 바둑은 속기. 초읽기에 몰려본 것은 1년에 한 번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러나 반상에서의 낙관에도 불구하고 나는, 현실에서의 나는, 그리 밝게 세상을 바라보지 못했다. 비관하는 타입도 물론 아니었다. 단지 세상을 약간 시니컬하게 바라보는 성향을 가진 정도라고나 할까. 그런 자평 自評이 무난하겠다.
그래서 어쩌란 말이야?
과연 그럴까?
내 마음 속에서 가끔 묻어나오는 질문들이었다. 결론이었다.
바둑을 둔다?
왜 두지?
과연 재밌나?
과연 뭐가 남지?
그런 식의 내 질문에 대해서 친구들은 매우 관대하게 대해주었다.
야야, 용직아. 뭘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니? 술이나 마시고 세상을 좀 편하게 살아봐. 하하. 짜식, 생각을 바꿔봐. 자, 한 잔 받아.
너는 안 그러니? 그냥 넘겨. 술 마실 때는 좀 즐겁게 마시는 거야.
뭔가 미진했다.
묘수를 찾아내고 싶었다.
내 만족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서.
물론 나는 불만으로 살지는 않았다. 지금도 나는 현재의 나를 그다지 불만스럽게 돌아보지 않는다. 우여곡절이 없지 않았고, 또 고통도 없지 않았던 지난 시간을 잊지 않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누구에게나 어려운 시간이란 거의 비슷하게 주어지지 않겠는가. 인간사, 그 속내를 벗어나서 태연하게 자족 自足할 수 있는 인간이 어디에 있겠는가.
(묘수 하나)
그래도
가끔 묘수는 필요한 법이다.
그렇지 않겠는가?
오후 1시 46분.
책장을 넘기다보니, 묘수가 하나 눈에 잡힌다.
1984년 7월 6일 임선근 三段이 백성호 六段과의 대왕전 본선에서 얻은 것이다.
흑1에 대해 백2 백4가 묘수. 삶을 확보했다.
오후 1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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