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의 승부 - 승부는 다양하다 - 바둑은 승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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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반상 일기(11월 15일)- 5년간의 승부 - 승부는 다양하다 - 바둑은 승부였다
아침 5시 09분.
술을 얘기하니 떠오르는 연상이 적지 않다.
입단한 직후가 아닌, 여름 날 어느 저녁이었다.
三一빌딩과 한국기원 사이의 골목에 있던 돼지갈비 집에서였다.
강훈 사범과 나, 그리고 몇몇 기사들이 자리를 했다.
고인돌로 유명한 박수동 화백도 자리를 함께 했다.
소주에 갈비. 담배와 석쇠에서 나오는 연기가 적당히 뒤섞이고 이야기에 열기가 한창일 때였다. 내 처음 만나는 박 화백이 한 마디 했다.
관상으로 보건대, 문 군은 승부사라고.
손꼽을 수 있는 승부사라고. 타이틀 얻을 수도 있을 거라고. 그렇지만 승부의 정점에 올라서는 순간 내려올 것이라고. 내려오고 싶어할 것이라고.
웬 말씀!
이리 답했다.
승부를 반상에서만 치러야 한다는 법 있습니까.
그러니까 내 맘에도 승부는 승부로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문제는 그 승부가 나의 희망과 어떻게 오버랩되느냐?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점을 의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박 화백의 말씀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뒷날 생각해보니, 신왕전 우승과 박카스배 준우승을 계기로 나는 바둑의 승부에서 스스로 내려왔으니까 말이다. 그것도 성적이라면.
승부를 주제로 하는 동료들끼리의 대화는 언제나 유쾌했다.
진지하고 깊었다.
생활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면 그건 또 다를지 모르지만, 청춘에게는 일상이라는 것이 그다지 큰 무게로 다가오지 않는 법.
대화 중에는 “오늘 낮에 두었던 바둑의 뒤안길, 승착과 패착 사이의 얘기” 등도 오가지만, 그건 승부를 바라보는 다양한 주제에 파묻히는 경향이 있다.
다소 일반적인 이야기를 했다.
왜 승부의 5년간을 얘기하고자 할 때,
박 화백의 말씀을 떠올렸던 걸까.
내 승부는 아직도 끝나지 않고
반상과 반외를 넘나드는 것을 승부로 보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 승부, 그것은 찾는 사람에게만 승부로 여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기억한다.
내 입단이 결정된 다음 날 아침, 집에서 나눈 얘기.
너, 바둑을 열심히 할 거냐?
아니, 그러지는 못할 거 같아.
그러나 열심히 했다. 분명하다.
책도 많이 보고, 연습대국도 많이 했으며, 프로가 된 다음에도 高段者들의 대국을 기록도 자주 했다. 실력의 차이를 뛰어 넘는 것은 공부 아니 하고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문득 하나 돌아보고 싶다.
내 바둑의 승부에서 박카스배는 내 유일하게 결승에 올라가본 기전.
그 남겨진 대국 하나를 보고 싶다.
1984년 6월 26일의 대국 하나.
(제2기 박카스배에서.)
김수장 당시 六段과의 대국이었는데, 김 사범의 백92가 큰 실수. 93에 두었으면 흑이 무너졌을 것이다. 중앙에서 그렇게나 이득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차이는 불과 3집 반이었다. 열심히 두었었다. 당시는 제한시간이 4시간이었다. 예선전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자연스러웠다.
어제, 시간의 낭비를 말했지만, 사실 그건 시간의 집중을 말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시간에 집중하는 자만이 때로는 시간을 낭비할 수도 있는 것이다.
자벌레가 움츠림은 몸을 펴기 위함이 아니더냐.
가만, 술을 좋아해서 박카스배와 인연이 있었나?
그럴 수도 있다. 하하.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술을 한 모금도 못하는 조훈현 九段도 박카스배에서 우승하지 않던가.
그래도 이런 건 있는 거 같다.
자기와 인연이 잘 맞는 그런 기전.
그래, 나는 바둑을 두었다.
둘 때 열심히 두지 않고서 내가 무엇을, 티끌 하나라도 얻을 수 있을 것이냐.
나는 오늘 삼성화재배 관전을 간다.
1983년의 입단 인연이 아직도 건재하며, 나는 바둑에 여전히 깊은 애착을 갖고 있다.
바둑은 내 승부였고 여전히 승부인 것이다.
아침 5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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