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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 - 이창호 바둑을 중심으로

삼성화재배를 바라보며

[삼성화재배 32강/16강전]

사이버오로 2002-09-03 오후 2:08 [프린트｜스크랩]

모든 대국은 평가가 뒤따라야 그 의미를 많은 사람들이 알 수가 있다. 삼성화재배는 LG배 세계기왕전과 함께 한국 프로바둑은 물론 세계바둑계의 중추를 이루고 있는 핵심적인 프로기전일 것이다. 8월 30일 삼성화재 유성연수원에서 진행된 제7회 삼성화재배 16강전은 당연히 많은 평가와 말들이 뒤따랐다. 그중 현장에서 직접 바둑을 관전하거나 진행한 사람들의 핵심을 파고 드는 몇가지 말들과 에피소드를 소개 해 본다.

◈ 최강 이창호 九단의 패배를 바라보면서.

이창호 9단의 바둑은 누구와 두던 관심사이다. 또한 지는 것이 더 큰 뉴스가 되기도 하는 것이 이창호 9단인지라 16강전의 패배에도 많은 평가들이 줄을 이었다. 만약 이창호 9단이 승리를 해서 총 3명이 8강에 진출했다면. 한국 현상유지라는 뉴스 타이틀이 붙었을지 모를 정도로 바둑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므로 이창호 9단의 대국을 중심으로 한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 보자.

○..."옛날 같으면 이런 판은 무조건 이창호가 이긴다고 했는데..요즘은 신예들이 모두 만만치가 않아."

- 이창호 9단이 '신산'으로 한창 이름을 떨치기 시작할 무렵에는 약간 불리하더라도 이창호 9단이 끝내기에서 역전하리라는 강한 믿음이 있었고 실제로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현재도 그 믿음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지만 16강전에서 중국의 후야오위 7단에게 이 9단이 중반들어 중앙전투에서 밀리면서 불리한 모습을 보이자, 삼성화재배 관전필자인 박치문 위원이 달라진 주변환경에 대해 한마디.

지금은 다들 이창호 9단의 기보를 워낙 열심히 연구하고 있기 때문에, 예전에 비해 이창호 9단과 같은 정상급 기사들도 1승을 얻어내는 것이 그만큼 힘들어진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이 전반적인 분위기인 것.

●..."이런, 거꾸로 후야오위가 닦고 있잖아"

- 삼성화재배 이창호 9단과 후야오위 7단의 대국을 중계진행하던 농심배 관전필자 손종수씨. 이창호 9단의 가장큰 장기인, 유리한 바둑의 '완벽 마무리 전술'을 중국의후야오위가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면서.

이창호 9단 특유의 장기인 '완벽 마무리'를 다른 신예강자들이 때에 따라서는 자신의 전술적 방안으로 적절히 채택하고 있는 것. 이창호 9단과 대국할 때에도 이 현상은 예외가 아닐 것이다. 상대가 자신과 같은 스타일로 두어 올 때 이창호 9단의 생각은 어떨지 궁금하다.

○..." 애국심의 발로로는...종반의 마술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 중반전이후 이창호 9단이 불리한 상황에서 별다른 변화의 여지가 점차 없어지자, 인터넷 중계 진행자인 손종수씨가 이창호 9단의 완벽한 끝내기를 기대하면서 해설창에 한마디.

●.... "원래 불리한 판을 뒤집는 것은 조훈현 9단의 특기이다. 이창호 9단보다는 조훈현 9단을 믿어야 될 듯하다."

- 중반전이 끝나가면서 이창호 9단도 자신의 불리한 바둑에 대해 변화를 구하기 시작했다. 이창호 9단의 승부수가 작열하는 가운데 이 9단의 기풍과 조 9단의 기풍차이에 대해 지나가는 말로 이런 말을 던졌다. 손종수씨의 예언대로 이창호 9단은 졌지만 조훈현 9단은 불리한 바둑을 역전하고 8강진출에 성공.

○... "다 떨어지겠는 걸"

- 이창호 9단과 후야오위 7단의 중계 해설자는 김승준 7단, 해설판은 물론 다른판에도 관심을 보이던 김7단이 검토실을 둘러보고는 한국기사들이 유리한 판이 한판도 없는 것 같다면서 한마디해 주위를 긴장시켰다.

특히 김승준 7단은 양건 6단과 2002년 1년동안 다승(多勝)내기를 걸어 서로의 선전을 다짐하고 의욕을 새롭게 하는 등, 두사람 모두 청년강호로써 선전을 하고 있었는데, 이날 양건 6단이 뤄시허 9단과 치열한 난타전끝에 점점 더 불리해지자 안타까운 시선으로 모니터를 응시하면서.

●... "이창호 9단이 1년 반동안이나 세계대회 판맛을 보지 못했는데.. 이제 먹을 때도 됐는데...쩝쩝.."

이창호 9단은 2001년과 2002년 동안에도 농심배 주장으로서의 대활약, 국내프로기전에서의 타이틀전 방어, TV아시아 속기전에서의 우승등 아주 뛰어난 활약을 보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메이저급 세계대회에서는 2001년의 제5회 LG배 세계기왕전 우승이후 큰 성과는 없었다. 이에 진행자인 손종수 필자가 이창호 9단이 메이져급 프로대회에서 아주 드물게도 1년이 넘도록 우승맛을 보지 못했다며, 이제 슬슬 기지개를 켤 때가 되지 않았냐는 소감을 피력,

○... 이창호 9단의 포커페이스

- 이창호 9단은 대국 중간,중간 혹은 대국이 끝난 후에라도 세수를 많이하는 편이다. 부동심의 일인자라고 하지만 상당히 많은 열이 나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날 패배에서도 이창호 9단은 오히려 승자로 보일만큼 역시 계속해서 같은 표정과 자세를 유지했다. 오히려 옆에서 제3자가 보면 승자인 후야오위 7단의 대국모습이 마치 수세에 몰린 것 같이 보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아무튼 후야오위로써는 평생 기억에 남을 승리였을 것이다.

◈ 8강진출자 확정시.

○..." (최명훈 8단이..)땡 잡았다.!!"

- 조훈현 9단의 승리이후, 16강전의 마지막 판으로 최명훈 8단이 승리를 거두고 8강진출을 확정지었다. 이에 김영삼 5단이 최8단의 승리에 대해 최명훈 8단이 아주 좋은 기회를 잡은 것이라며.

우승 후보들인 이창호,유창혁,이세돌등이 탈락했고, 조훈현 9단 밖에 남지 않았으므로, 한국팀이 전체적으로는 저조한 승률을 올렸지만. 오히려 우승을 목표로 삼는다면 최명훈 8단으로서는 아주 좋은 기회를 맞이한 것이라는 것이 김영삼 5단의 의견, 실제로 최명훈 8단은 국내기전인 5회 LG정유배 프로기전에서도 이창호 9단이 탈락했을 때 우승을 일궈낸 전력이 있고, 14기 후지쯔배에서는 조훈현 9단과 겨룬끝에 준우승한 전력이 있다. 이창호 9단의 동갑 라이벌인 최명훈 8단의 활약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 창하오의 자신감.

" (창하오)유창혁 9단은 진폭이 심해 두렵지 않고 조훈현 9단은 나이 때문에라도 이제 두렵지 않다. 두려운 것은 역시 이창호와 이세돌.

8월 30일 유창혁 9단을 꺾고 가장먼저 8강행을 확정지은 창하오 9단이 여러 인터뷰에서 밝혔던 내용이라고 한다.

○... 사진기자의 아쉬움

"이세돌 3단의 사진을 찍는 것이 재미있는데..."

- 월간바둑 이주배 사진기자, 이세돌 3단도 다른 프로기사들과 마찬가지로 대국시에 손으로 턱을 괴거나 얼굴을 가리고 있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복기할 때나 그밖의 상황에서는 대화하는 사람과 뚜렷하게 눈을 맞추며 이야기 하고, 표정이 아주 풍부하기 때문에 좋은 사진이 많이 나온다며. (사진기자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이세돌 3단은 32강전에서 중국의 중견 차오다위안 9단에게 패배해 하차)

◈개막식전의 아찔했던 상황

- 고속도로 노변에서 심장마비 상태로 발견된 운전기사 아저씨.

(재)한국기원 사업부에서는 외부에서 큰 행사가 있을 경우 많은 기물들을 택배업체등에 부탁해 행사장소까지 옮기곤 한다. 8월 27일 32강전이 시작하기 전날 삼성화재 유성 연수원에 도착한 사업부 직원들은 평소와 같이 짐을 풀고 대국실과 삼성화재배 개막식과 추첨식 일정등을 살피고 당일 정오쯤에 도착하기로 약속된 기물들을 기다렸다.

27일 오후 2시, 짐이 도착하지 않아 궁금증이 들기 시작할 무렵, 트럭을 몰던 기사 아저씨로부터 전화연락이 왔다. 몸이 아파서 휴게소에서 잠깐 쉬고 있는데, 약속보다 늦어 미안하다는 이야기였다. 몸이 나쁘면 휴게소에서 쉬고(짐은 휴게소로 찾으로 갈테니.) 근처 병원에 먼저 가보라는 직원들의 말에 유성은 금방이라며 곧 도착할 수 있다고 하며 출발을 알렸다.

오후 4시, 도착할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짐을 실은 트럭은 도착하지 않았다. 이상한 생각이 든 직원들이 여기저기 연락을 취해보고 고속도록 순찰대에도 트럭을 수배하도록 신고 조치를 취했다. 오후 8시가 넘을 무렵 고속도록 노변에 주차된 트럭과 한구의 시신이 고속도록 순찰대에 의해 발견되었다. 기사 아저씨가 도로변에 차를 주차시킨 채 사망한 것이다. 사인은 심장마비.

사업부 직원들이 사고 현장으로 직접달려가 짐을 확인하고 다시 물품을 찾고 하느라 시간이 지체되어, 삼성화재배 32강전의 대국준비는 새벽동안 계속되었다. 하마터면 행사자체가 엉망이 될 수도 있는 아찔한 경우였는데, 32강전과 16강전은 아무튼 큰 무리없이 잘 진행이 되었다. (짐을 운송해주는 기사 아저씨가 갑자기 숨을 거둔 일은 지금까지 없었던 일이라서. 이 사건은 듣는 사람 모두에게 많은 당혹감과 황당함을 안겨주었다.)

마지막까지 약속을 지키려 하다가 숨을 거둔, 기사 아저씨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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