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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달의금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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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야스쿠니 정축왜란 3
2022-06-01 오전 10:00 조회 451추천 10   프린트스크랩

이번 수요 집회에도 최선미와 같이 참여한 설민국은 그녀에게 말했다.

집회가 벌써 250회를 훌쩍 넘기고 있어. 참 감동적인 일이야.”

맞아. 처음 시작은 정말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집회구나 하는 정도였는데, 이제는 학생들마저 동참해주고 있어서 미래의 젊은이들에게 참 교육이 되는 것 같아서 뿌듯해.”

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

나는 이 곳이 우리에게 큰 의미가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이곳에서 선미 씨에게 할 말이 있어.”

갑자기 진지해진 그를 그녀가 의아하게 바라보자 그는 주머니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다. 그리고 영화에서 기사가 공주에게 하듯이 한쪽 무릎을 꿇고 그녀에게 손에 든 것을 들어올렸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채는데 짧은 순간이면 충분했고, 그 의미를 깨닫는데도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의 프러포즈 장소와 의미에 만족했다. 그녀는 부끄러운 미소로 그에게 말했다.

나를 선택해줘서 고마워요!”

그는 자세를 유지한 채 그녀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며 말했다.

자기가 동의해준다면 나는 우리 결혼식을 수요일에 하고 싶어. 집회가 300회를 맞는 날에···”

어떻게 그런 생각까지 했어? 정말 뜻깊은 날에 의미 있는 결혼식이 될 것 같아. 나 이렇게 단 한 번에 당신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조차 행복한 생각이 들 만큼 자기에게 고맙고 깊은 마음에 감사해.”

내가 날짜를 계산해봤는데 300회 수요 집회일이 내년 313일이야. 9개월 후니까 우리가 준비하는데도 무리 없을 거 같아. 다만 날씨가 조금 추울 수도 있어서 그게 염려스러워.”

자기가 옆에 있을 테니 나는 아무것도 걱정이 안 돼. 우리끼리는 이렇게 정하고 서로 가족들과 얘기해보자.”

두 사람의 얼굴이 행복에 겨운 밝은 웃음으로 가득했다.

 

최선미가 집에 와보니, 집안의 분위기가 몹시 들떠있었다. 그녀는 그가 가족들에게 전화를 해서 가족들이 미리 알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순간 스쳤다.

집에 무슨 일이 있어? 분위기가 너무 좋네.”

그녀는 짐짓 건너짚듯이 말했다.

아주 기쁜 소식이 있어.”

언니의 말에 고모도 얼굴에 함빡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우리 집에 경사스러운 일이 생겼단다.”

민국 씨가 미리 말해 버렸나봐. 에이 시시해. 내가 놀래 주려고 했는데!”

무슨 말이야?”

두 사람의 표정이 의아해졌다.

두 분이 민국 씨가 전화해줘서 우리 결혼하기로 한 거 아는 거 아니었어? 나는 그래서 집안 분위기가 좋은 줄 알았지.”

그게 정말이야? 야 이거 겹경사네.”

그녀는 당황스러웠다. 두 사람은 그 사실을 몰랐던 거였다. 그런데 겹경사라는 것은 또 무엇이 경사스러운 일이 생겼다는 것인가.

그녀의 표정이 혼란스러워지자 두 사람은 재미있어 하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들은 그녀를 조금 더 놀려주고 싶었다.

맞아! 우리는 네가 날을 잡았다고 해서 축하해주려는 거야.”

그래. 축하해!”

그녀는 그녀들의 표정에서 무엇인가 감추고 있는 것이 있음을 느꼈다.

두 분! 사실대로 말하세요. 나 이제 그만들 놀리시고.”

그제야 최선애가 말했다.

사실은 변호사 사무실에서 연락이 왔어.”

결과가 나왔대? 승소했대? 우리가 이겼대?”

그녀의 쏟아지는 질문에 옆에서 듣고 있던 최윤경이 만면에 가득 웃음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우리가 이겨서 국가로부터 보상을 받게 됐대. 나는 네가 시집을 간대도 이젠 하나도 겁이 안 난다. 네 혼수 고모가 푸짐하게 장만해줄게.”

 

이재길변호사는 한시름을 놓았다.

정말 이겨야 했고, 이기고 싶은 재판에 좋은 결과를 얻었다.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부족했던 판례자료와, 의뢰인에게 도움을 받기도 어려운 상황들까지 겹쳐, 소장의 문구 하나까지도 어렵고 외로운 도전이었기에 내심으로 결과를 장담하지 못했었다. 다만 한 가지, 독립운동가를 돕겠다는 투철한 목표의식만이 그를 지탱해주었다. 그분들에게 진 빚을 만분의 하나라도 갚은 만족스러움이 그를 모처럼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사무실 소파에 비스듬히 기댄 그는 한영운 동지가 보낸 서류를 집어 들었다. 비록 정치를 멀리했고, 이제 문외한이 되어 버렸지만, 이렇듯 엄중하게 국가가 위험에 처해 있는데도, 정부는 갈피조차 제대로 잡지 못한 채, 아무런 대책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게 이상했다.

조선시대를 관통했던 당파정치가 민주주의 사회인 현재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것은 매우 한탄할 일이었다. 한영운 동지의 표현처럼 일본학파가 현실에서 크게 대두되어 있음이 문제인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국내외를 가리지 말고 정보망을 총 동원해서 일본의 움직임을 파악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가 가진 정보망도 매우 촘촘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상황이 몹시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듯하다. 자신이 가진 인맥이나 정보력은 그에 비해서 매우 보잘 것 없었지만, 각기 다른 전문적인 분야가 있을 수 있으니 가능한 한 정보력을 총 집결시켜 도움이 될 방법을 찾아볼 계획이다.

 

송준병은 환율방어를 주장했다. 그에게는 이 방법만이 조국과 국민들을 살리는 길이었다. 정부와 국민이 더 이상 일본에 비판적이지 않고, 일본의 정책들에 적극 호응하는 나라를 만들어서, ‘대동합방론의 기초를 놓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만이 목표였다. 그리고 우리나라와 중국은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일본이 리더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잘 협조하는 것이었다.

그가 가진 정보망을 통해 이번에 닥칠 금융위기를 기회를 일본이 어떻게 이용하려고 하는지 의도를 이미 파악됐다. 더구나 이번에 동남아에 닥친 위기는 어떤 세력에 의한 의도성이 있지 않은가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하는 정황이 여러 군데에서 여실하게 느껴졌다. 그만큼 미국의 공격적인 자금들과 일본의 지하자금들의 움직임은 노골적이었다.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와 다를 바 없는 이런 자금들의 행태를 잠시 망각한 나라들이 문제인 것이다. 그들에게는 자비란 없는 법이다. 경제 시스템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한 동남아의 여러 나라들은 외부의 투기 자금들 앞에 무장해제를 당한 채, 자국의 부가 송두리째 빼앗기고 있는 것을 눈뜨고 바라보고만 있었다.

 

한국을 외국의 투기자본들 앞에 그렇게 당하게 두면 안 된다. 그래서 일본의 요구를 들어주어야만 일본의 도움으로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

일본에게 자비를 구하는 것이 이 시점에서의 살아날 유일한 탈출구임을 송준병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여러분! 우리는 조국과 민족 앞에 닥칠 앞날에 대해 염려하고 정부에 대책을 요구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는 일본 유학파들이 모인 일본유학동문회를 소집하고 단상에 올라 말문을 열었다. 이 자리에 모인 동문들은 일본의 문화과학성에서 국비로 출연한 장학재단을 통해 선발한 전국의 우수한 인재들로, 장학재단의 도움으로 학비와 생활비 등 모든 경비를 지원받고 일본의 유수한 대학을 졸업한 인재들이다. 이들로 구성된 일본학파는 한국에서 모든 분야를 주도하는 엘리트 그룹이다. 이들은 지금 한국의 여론을 주도하며, 정책을 주도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미 동남아의 금융 사태를 목도했습니다. 지금의 상황으로 본다면 불행히도 다음은 한국이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이에 우리는 정부가 조속히 일본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이 위기를 타개 할 수 있도록 촉구하는 건의문을 작성하고자 합니다.”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박수로 동의하며 건의문에 서명하고자 하였다. 한국 정부에 이 모임의 서명을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음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정부는 필사적으로 환율을 방어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과 대적하는 해외의 투기자본들은 점점 불어났다. 폭발적인 경제성장을 이룬 한국에는 신흥국임에도 매력적인 먹잇감이 꽤 많았기 때문이다. 연 초부터 시작된 대기업의 부도사태가 시간이 지날수록 제조, 건설, 유통업까지 번져나갔다. 자칫 대응시기를 놓치면 금융권까지 번질 태세였다.

더 큰 문제는 공포심이었다. 한때 우리가 머잖아 일본을 넘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던 국민들의 마음에 역시 안 되는 것인가.’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자리를 하고, 동남아와 같은 경제적인 어려움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사회가 혼란스러워질 수 있었다.

정부의 노력에도 환율이 치솟았다. 세계가 한국 경제에 대해 우려를 보내고 있는 신호다. 문제는 환율을 방어하는 목적이었다. 경제 논리가 아닌 정치 논리가 우선하는 정책에 부정적인 시각은 점점 확산되고 있었다.

┃꼬릿글 쓰기
엽부 |  2022-06-01 오전 10:51:3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지금 전 세계가 고유가와 인플레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유가야 그렇다고 쳐도, 인플레는 이미 예견된 것 아닙니까?
돈이란 생산의 대가입니다.

그런데 코로나가 터지고, 각 나라는 생산 없는 천문학적인 돈을 풀었습니다.

그 결과 주가는 폭락 후에, 유레가 없는 V자 반등을 하여, 최고가를 경신하였고,
그 이후에 작년부터 눌러왔던 인플레의 태풍속으로 들어가게 된 겁니다.

역대 주가나 한 나라의 흥망을 볼 때, 토네이도처럼 갑자기 오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극단적인 위험은 항상 전조 증상이 있게 마련입니다.

다만 위정자들이나 국민들 모두, 본인들 이득을 위한 다수의 눈치보기 미룸으로 인하여
그 위험이 자기 옆구리 칼날처럼 다가와도 못 봤을 뿐입니다.

요즘 주식이 하락장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저는 3000포인트가 하단으로 뚫었을 때, 인버스를 사서 저번 주에 모두 팔고,
낙폭과대 우량주들로 모두 채웠습니다.

인플레와 금리인상 그리고 우크라이나 사태 그리고 고유가 상황 속에서,
2년 전의 코로나 이후에 『V자 반등의 추억』을 가지고 있던 몽상가들은
레버리지를 가지고 아마 작살들이 났을 겁니다.
국가라면 이미 파산상태?

바둑 뿐아니라 모든 스포츠 그리고 주식 등에서도 우리는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고 없는 위기는 없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신인 제 생각에도 낙폭 큰 우량주를 담을 시기로 여겨집니다.
자금도 생각도 매우 풍요로워지시기를,,,,,^^
꼬릿글에 감사드립니다!💚💛💚
엽부 코로나 때처럼 단기 급락은 아니지만,
장기간의 V자 반등 후에, 장기간의 필요한 조정의 하락이었기에
거의 모든 종목이 낙폭과대의 상태입니다.
코로나 이후에 겪었어야 할 횡보장이 지금 시작이 된 것 아닌가도 싶습니다.

다만 아시안 게임을 앞둔 중국의 코로나 봉쇄가 풀리면 유가가 다시 더 오를 것이 걱정이 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90달러 초반에 사 놓은 “레버리지 원유 ETN”이 있어서 큰 걱정은 없으나..)
우크라이나 사태 역시 진행중이고요..^^.
영포인트 |  2022-06-02 오전 7:49:3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1997년 12월이었습니다.
아버님을 모시고 집사람과 아이들을 데리고
제주시에서 제법 이름이 알려진 고기 집을 갔더랬습니다.
테이블이 삼십 여개 있는 꽤 큰 고기 집이었는데
예년의 연말이라면 상당히 북적이고
예약을 해야 하는 곳인데 그날은 연말이 코앞인데도
손님이 있는 좌석은 부부로 보이는 두 분과 우리 식구들뿐이었습니다.

공무원이었던 저의 생활에 IMF는 거의 영향을 주지 않았지만
그 식당의 분위기에서
IMF라 해도 봉급 꼬박꼬박 잘 나온다 해서
외식을 해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더랬습니다.
크고 작은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 모두에게 아픈 기억입니다.  
⊙신인 선배님의 기억처럼 그랬던 시절이었습니다.
저는 그 시절을 이용하고 조장한 것이 일본이라고 설정하고 그것을 경제적인 침
탈인 '정축년의 왜란'이라고 컨셉을 잡아본 것입니다. 일본입장에서는 조금 억울
한 측면이,,,
그 시기를 기점으로 우리나라 경제는 체질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힘겨운 변화였지만, 우리 국민들께서는 그 또한 이겨내시고 지금 이렇게 선진국
으로 성장하였습니다.
민족의 저력에 감사드리면서 글을 적어봅니다.
늘 제게 힘을 주시는 선배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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