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에서 일본의 참상에 대해 브리핑을 마친 민설홍은 곧바로 오키나와에 돌아왔다.
오키나와에 있던 그린피스 동료 대원들과 현지인들이 설홍에게 축하와 감사를 보냈다.
그렇지만 설홍에게는 오키나와의 참혹한 현장만 눈에 들어왔다.
상황이 더 나빠져 있었다.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천명한 류쿠민주공화국은 새로운 질서를 찾느라 안간힘을 쏟고 있었다.
하지만 일주일에 한번 꼴로 들이닥치는 강력한 태풍은 모든 시도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살아남았다.
사람보다 더 적응력이 뛰어난 생명체는 없을 것 같았다.
그나마 창궐하던 전염병은 그린피스 대원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진정되었다.
태풍에 집이 날아가면 날아가는 대로 사람들은 다시 각자가 살 곳을 정하고 그 곳을 발판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해 나갔다.
류쿠인들이 일본 국채를 팔아치우고 그 돈으로 류쿠민주공화국 국채를 매입해준 것은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류쿠인들은 수백년만에 되찾은 독립의 기쁨에 들떠 조금씩이나마 활력을 되찾고 있었다.
그들은 머나먼 타국에 와서 같이 고생하며 자신들을 돕고 있는 그린피스 대원들을 영웅으로 떠받들고 있었다.
고맙게도 그들은 가장 좋은 잠자리와 가장 좋은 음식은 항상 그린피스 대원들의 몫으로 챙겨주고는 했다.
그러나 그린피스 대원들은 늘 그들의 마음만 받고, 좋은 잠자리와 음식을 어린이와 노약자들에게 양보를 했다.
류쿠인들에게 특히나 민설홍은 존경의 대상이었다.
유엔에서의 연설로 류쿠인들에게 특별한 존재로 부각되기 시작한 민설홍은 그녀 특유의 부지런함과 상냥함으로 모든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는 열정으로 재해 난민들을 보살피는 모습은 같은 그린피스 대원들에게도 큰 용기를 주었다.
어느덧 민설홍은 류쿠인들에게 우상이 되어갔다.
과거 오키나와의 상징이었던 시샤 대신에 민설홍의 인형을 만들어 놓아두는 이들이 생겨날 정도였다.
선하고 순박하던 과거 류쿠왕국 시절의 사람들로 되돌아간 것 같은 모습들이었다.
그런 류쿠인들의 심성이 설홍은 너무나도 감사했다.
민설홍은 어제부터 미야코섬에 머무르고 있었다.
기상 예보는 강력한 태풍 한라가 내일 밤쯤 미야코 제도에 상륙할 것이라고 하였다.
아직 재해 상처가 남아있는 지역이라서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대원 2명과 함께 태풍에 대비하며, 지역 주민들을 보살피고 있었다.
현웅은 아침을 거르고 미야코섬행 비행기에 올랐다.
태풍 한라가 북상중이라는 뉴스가 있어 서둘러야 했다.
과거에는 강력한 태풍도 최대풍속이 45m 정도에 시간당 100mm 정도의 강우량을 기록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요즘에 북상하는 태풍은 최대풍속이 100m에 육박했고 강우량도 시간당 150mm를 훌쩍 넘었다.
더구나 예보와는 달리 태풍의 진행속도는 일정하지 않았다.
자칫 위험해질 수 있으므로 이런 메가톤급 태풍이 닥치기 전에 일을 마쳐야 했다.
미야코 공항에 도착해보니 원래 작은 공항이었지만 지금은 공항의 기능이 있기나 한지 의문스러울 정도였다.
그나마 하루에 한편이 운행되고 있는게 신기할 만큼 열악한 상황이었다.
서둘러 차를 렌트하고 목적지인 히가시헨나자키해변으로 향했다.
해변으로 가는 중간에 오키나와현 천연기념물인 풍충지 특유의 식물 군락을 살펴보았으나 이미 흔적조차 없어진 뒤였다.
현웅은 쿠로시오 해류의 흐름을 확인하고 산호초 식생 현황을 점검해야 했다.
기상 재해로 쿠로시오 해류의 흐름이 달라지거나 없어질 수 있었다.
지구상에서 모든 해류의 흐름은 육지의 자연 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쿠로시오 해류 또한 한국의 남해안까지 영향을 미치던 해류였다.
바다수온의 상승으로 산호초는 모두 괴멸되었을 것이다.
예상대로 해변의 곳곳에 커다란 산호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다.
해변으로 떠밀려 온 조각들이 이정도라면 바닷속은 완전히 파괴되었다고 판단해야 했다.
현웅은 망가진 산호초와 해류의 흐름에 대한 좀 더 면밀한 정보를 얻고 싶은 욕심에 자꾸만 바다쪽으로 발길이 향했다.
얼마쯤 걸었을까.
바다만 보며 걷던 현웅은 커다란 산호초 덩어리에 걸려 넘어졌다.
‘악’하는 비명소리가 저절로 나올 만큼 아팠다.
다리를 움직일 수 없었다.
산호초 덩어리의 날카로운 부분에 다리가 찢겨 나갔다.
게다가 넘어진 채로 바라본 하늘에는 어느새 먹구름이 가득했다.
저녁 늦게나 상륙할 것이라는 기상 예보와 달리 태풍 한라가 육지에 접근한 것이다.
해변 주위는 갑자기 어두워졌다.
다리를 다쳐 움직일 수도 없는데 초특급 태풍은 곧 들이닥칠 기세다.
급하게 윗옷으로 상처를 동여매 응급 지혈을 한 현웅은 어디엔가 구조를 요청해야 했다.
하지만 드넓은 해변에는 인기척 하나 없었다.
바람과 파도소리에 묻혀 소리를 지른들 누군가에게 들릴리도 없었다.
급히 휴대전화를 꺼내들어 봤지만 서비스지역을 벗어났는지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
이대로 있으면 자신은 이곳에서 살아날 수가 없다.
현웅은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휴대전화의 손전등을 켰다.
육지쪽을 향해 모스부호를 보내 구조 요청을 할 계획이었다.
어두워진 하늘 덕분에 불빛은 제법 멀리 나갔다.
현웅이 살아남을 방법은 이것밖에 없었다.
누구든 현웅의 구조 요청 신호를 보고 와줘야만 했다.
절박함으로 다리의 통증도 잊은 채 현웅은 끊임없이 모스부호를 보냈다.
‘제발,,,,누군가 봐주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