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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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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의 위기와 기회
2007-07-20 오후 4:22 조회 4168추천 15   프린트스크랩
  

 필자가 고1 때 학교에서 배웠던 영어 부교재에는 Christmas Present, Last Leaf, Rip van Winkle처럼 주옥같은 단편들이 많이 실려 있었다. 어쩌면 이 작품도 오 헨리(O. Henry) 단편이었지, 아마?


하여튼 고1 때 이 영어교재에서 배웠는데, 김광호 선생님[별명: Della]의 매우 고지식한 명강의 장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선생님은 서울대 영문과 출신으로 우리 동래고등학교 선배님이신 데다가 우리 학급담임이셨기 때문에 더욱 끈끈한 인정을 느끼는 것 같다.

선생님의 별명이 'Della'인 이유는, '오 헨리'의 단편 Christmas Present에 나오는 여주인공 이름이 Della이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지금은 어디에 살고 계시는지? 꼭 한번 만나 뵈었으면 참 좋겠다.


 이 영문단편소설 제목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주인공이 David였던 것 같다. 영문단편소설 'Rip van Winkle'도 그 때 배웠었는데..... 아무튼 너무 오래 되어 그 확실한 내용은 낱낱이 기억하지 못하므로, 요지만 대충 얘기할 것인즉, 원작과 다소간 다르더라도 양해하시기 바란다.



아주 먼 옛날, 미국 동부의 네덜란드계 이민마을에 David이라는 시골청년이 살았었는데, 어느 화창한 봄 날, 그는 보스턴에서 잡화상점을 하는 아저씨의 가게에 취직하러 괴나리봇짐 하나 메고 먼 길을 떠난다. 타고 갈 마차 삯이 없어, 먼지가 풀풀 나는 시골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는데, 따스한 봄볕 때문에 졸음이 밀려와서 길 옆 풀밭에 누워 깊은 잠에 골아 떨어져 버린다.


 얼마 후, 무시무시한 벌 떼들이 날라 와서, 자고 있는 David의 몸과 봇짐에 엉겨 붙고, 어떤 놈들은 얼굴에도 날라 와 앉는다. 한 방 쏘였다 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독침을 가진 악명 높은 미국동부지방의 독침벌이다. 봇짐 속에 넣어 둔 초콜릿의 단 냄새를 맡고 벌 떼들이 습격한 모양인데, 당분이 빨리지 않으니까 벌들은 윙윙거리다가 날라 가 버렸다.


 David이 모르는 사이에 첫 번째 위기는 이렇게 몰래 지나간 셈이다.


 얼마 후, 이번에는 강도전과 3범쯤은 족히 되어 보이는 험상궂은 사내들 세 녀석이 길을 지나가다가, 풀밭에서 자고 있는 David에게 다가왔다. 돈을 뺏으려고 음흉스런 웃음을 지으며 David의 주머니와 온몸을 뒤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샅샅이 다 뒤져 봐도 동전 몇 닢 밖에 나오지 않자, 또 봇짐을 뒤졌다. 이번에도 낡아빠진 헌 옷 몇 벌과 초콜릿 밖에 나오지 않자,


 "재수 더럽게 없네. 첫 탕부터 이게 뭐람! 오늘 영업(?)은 ‘완존히’ 죽 쒔네." 가슴에 품고 있던 시퍼런 칼을 만지작거리며 침을 퇙 뱉는다.


그러자 이번에는 다른 녀석이 "이 봐. 이 녀석 며칠 굶은 거 아냐? 우리보다도 더 불쌍한 놈 같으니까 몇 푼 보태주고 가자. 허 참, 뺏으려다가 오히려 덤터기만 쓰고 가는구먼!"


 이 좀도둑 녀석들 2, 3달러쯤 되어 보이는 지폐를 David의 호주머니에 꾹 찔러 주고는 도망치듯 살아져 버렸다.


 이번에도 또 한번의 위험이 이렇게 자고 있는 David 몰래 지나갔다.


 주위는 여전히 따뜻하고 고요한데, David의 코 고는 소리까지도 평화롭다. 이 때, 멀리서 말 두 필이 끄는 호화스런 풍모의 마차가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고 있었다. 중세 유럽귀족들이나 타던 그런 인상을 풍기는 마차였다. 한참을 달려오더니, David이 자고 있는 풀밭 옆길에서 멈춰 섰다.


아니나 다를까, 중세 유럽귀족들 의상 그대로를 입은 중년의 부부가 마차에서 내려 풀밭으로 걸어 들어왔다. 남편은 연미복에 실크 햍을 썼고 구렛나루와 콧수염이 인자한 신사 풍이고, 그의 아내도 갸름하고 상냥스런 얼굴에 금발과 새하얀 드레스가 하얀 피부와 너무 잘 어울려 보인다. 어딘가 교양미가 넘쳐 보이는 숙녀의 풍모가 엿보인다.

이들은 보스턴의 백만장자 대부호인데, 슬하에 자식이 없어 이번에 아들과 딸을 입양시키려고 필라델피아에 갔다가 마땅한 아들딸을 구하지 못한 채, 보스턴으로 되돌아가는 길이었다.


 "당신 두통이 난다면서, 괜찮소? 여기 풀밭에서 좀 쉬었다 갑시다 그려."


 "고마워요. 여기서 좀 쉬었다 가면 괜찮아지겠죠."


 "어? 여기 웬 청년이 자고 있네. 퍽 고단했던 모양이지? 코까지 골고..."


 "그러네요... 어머, 이 젊은이 얼굴 좀 봐요. 여보! 전, 이렇게 잘생기고 고상한 얼굴 처음 봐요. 성격도 퍽 원만하고 두뇌도 명석할거야. 그죠?"


 "음, 그렇군! 보기 드문 미남이로군. 인상과 체격도 좋고..."


 "여보. 우리 이 젊은이, 우리 양자로 맞아들이면 어떨까요? 네?"


 부인의 음성이 가늘게 떨고 있는 게, 거의 애원조다.


 "글쎄, 아무리 그렇더라도, 근본도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아녜요. 겉을 보면 속도 알 수 있다고 했어요... 그럼, 이 청년을 깨워서 이야기라도 좀 나눠 보면 어떨까요? 네?"


 "여보. 나도 당신 마음 충분히 이해하오. 그러나 이런 일은 서둘러서는 그르치기 쉽다오. 세상은 넓고 기회는 마음먹기에 따라 또 만들 수 있는 거라오. 이 청년도 지금 퍽 피곤해 보이고 하니 깨우지 말고, 오늘은 이만 갑시다."


 "네. 알았어요. 허나, 너무 아깝고 아쉽고 허전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부인은 지금이라도 청년이 잠에서 깨어나 이들 부부와 얘기를 나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좋은 일들이 생길 것 같은 예감에, 퍽 아쉬워했다.


 대부호 부부는 서로 말없이 클로버 잎만 만지작거리다가, 얼마 후 마차에 올라타고 보스턴을 향해, 짙은 먼지를 날리며 멀리 사라져 갔다.


 만약 David이 그때 잠에서 깨어나 이들 백만장자 부부와 얘기를 나눴더라면, 그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변했을까? 상식적 논리로 보면, 십중팔 구, 양자로 입양되어 엄청난 부를 누리고 또 재산상속을 받아 호화로운 일생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David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번에는 행운의 여신이 미소만 짓다가 그만 사라져 가버린 것이다.


 이렇게 인생에서 위기와 기회, 악운과 행운은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스쳐 지나간다. 이것이 인생이고 기회의 속성인지도 모른다. 흔히 우리는 위기가 곧 기회라고 말한다. 위기 다음에는 반드시 기회가 온다는 뜻일 게다. 스포츠경기에서도, 위기 다음에는 '찬스'(機會)가 오는 경우가 많다. 바둑에서도 그렇다. David에게도 두 번의 위기 다음에 행운이 찾아왔던 것이다.


필자의 경우에도, 위기를 슬기롭게 겪고 나면 반드시 기회가 찾아왔다. 매섭게 추웠던 겨울이 가면 꽃피고 새 우는 따뜻한 봄이 오듯이. 인생이란 이렇듯 위기와 기회가 번갈아 왔다 갔다가 하면서, 마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급한 일로 택시를 잡으러 뛰어다닐 때, 빈 택시는 반대편에서만 나타난다. 그래서 그 쪽으로 건너가면 이번에도 역시 택시는 그 반대쪽에만 자주 나타난다. 이렇듯, 기회란 제 마음대로는 잘 잡아지지 않는 모양이다. 기차나 비행기를 놓쳤다고 자책하거나 후회하지 말라. 이미 지나간 일이다. 그 기차나 비행기를 놓치지 않고 탔더라면, 행운을 맞을 수도 있겠지만, 무슨 불행을 당했을지 모르는 일 아닌가? 그래서, 세상만사 塞翁之馬(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어떤 사람들은 별다른 노력을 특별히 많이 하지 않는 것 같은 데도 잘 먹고 잘 사는데 반해서, 많은 사람들은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 잘살기 위해서, 출세와 성공을 위해서, 아등바등 악착스럽게 뛰는데도, 뭔가 별로 이뤄지지 않은 채 그럭저럭 사는 사람들도 많다. 물론, 열심히 많이 뛰면, 그렇지 않았던 사람들보다는 잘 살게 되는 것은 분명하고 확실하나, 문제는 노력과 결과라는 두 변수 사이에 함수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필자도 장년시절에는 꽤 열심히 뛰며 일했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처지인데도 별달리 큰 소득은 없는 것 같았다. 알맞은 미끼의 낚싯대를 포인트 좋은 곳에 던져 놓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지, 물고기가 싫어하는 포인트(場所) 이곳저곳에 엉뚱한 미끼의 낚싯대만 많이 담구어 놓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 남 보기에는 좋으나, 이것은 어리석고 미련한 짓이었다. 게다가, 물고기가 당장 낚이지 않는다고 이리저리 자리를 너무 자주 옮겨 다니는 것은 더욱 우매한 짓이다. 이것은 좋은 기회를 일부러 피해 다니는 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생에서 성공하지 못하고 출세하지 못했다고 해서 자책할 필요도, 후회할 이유도 없다. 성공과 출세보다는, '사람답게' '사내답게' 떳떳하고 성실하게, 남에게 폐해 끼치지 않고 자기 주관대로 부지런히 열심히 살았으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훌륭한 인생인 것이다.


 누구에게나 평생에 3번의 대운은 찾아온다는데, 과연 그런 것인가?

 독자 여러분들과 나의 악운과 행운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지금까지 얼마나 많이 스쳐 지나갔을까? 또 앞으로는 얼마나 많이?



- 2006년 2월, 찔레꽃12


┃꼬릿글 쓰기
헛된소리 |  2007-07-20 오후 6:23: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장문의 글이네요^^  
헛된소리 |  2007-07-20 오후 6:25: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어떤분이 예전에 (위기)란 단어 자체가 (위험과 기회)라고 한 말씀이 생각나네요^^

어서오세요^^
반갑습니다.
작가님이 또 한분 느셧네요^^  
헛된소리 |  2007-07-20 오후 6:30: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그러나 인생에서 성공하지 못하고 출세하지 못했다고 해서 자책할 필요도, 후회할 이유도 없다. 성공과 출세보다는, 사람답게,사내답게, 떳떳하고 성실하게, 남에게 폐해 끼치지 않고 자기 주관대로 부지런히 열심히 살았으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훌륭한 인생인 것이다.>
좋네요^^
근디 조위에 <사내답게>는 여성분에게는 모라하죠?  
治遇 |  2007-07-20 오후 6:47: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찔레꽃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늘, 즐거운 시간 되세욤^^  
愚公^^移山 |  2007-07-20 오후 7:36: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좋은 내용 머리에 새깁니다.
고맙습니다.  
별天地 |  2007-07-20 오후 9:29: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찔레꽃 ! 휘엉청 달 밝은날 시골 토담가에 피어있는 하이얀 찔레꽃은 아름답다기 보단
우수를 간직한 것 같은 ,, 예쁜 필명의 작가가 여기 옴에 무척 반가웠다.
앞으로 자주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  
은빛하늘 |  2007-07-21 오후 1:55: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필명이 예쁘네요.. 반갑습니다 ^^  
맥점구사 |  2007-07-21 오후 3:12: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세번째를 행운이라고 하시는데
알수 없는게 사람 일인데
보통 댓가를 지불하지않은 부는 희생이 따른다고 뉴스에서 많이 보아 왔는데
 
callme |  2007-07-21 오후 11:33: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동래고를 나오셨다구요? 전 68회인데 아마 저보다 선배시겠네요. 올리시는 글을 더 관심있게 보게 되겠네요.  
마음의여정 |  2007-07-23 오전 9:52: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좋은 글 감사합니다. 건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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