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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의 기원에 대하여 (1) | 나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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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의 기원에 대하여 (1)
2015-04-08 오후 2:56 조회 3138추천 7   프린트스크랩
▲ Wang Hongli 王弘力 (1927–), 古代風俗百圖 (100 pictures of ancient customs) No.86 : 六博 (Liubo)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오늘날과 같은 대명(大明)세상에 아직도 이러한 신화가 버
젓이 유포되고 있으니 말이다. 그것은 바로 바둑의 기원 문제이다. 그 내용이란 ‘바둑은 기
원전 수천년 전에 중국에서 만들어졌다’라는 명제이다. 그리고 그것이 삼국시대가 되어서
야 비로소 한반도에 유입되었다는 것이다.

한번 생각해보자. 만약 17세기 아메리카라는 신대륙을 향해 신천지를 개척하러 간 유럽인이 체스라는 게임을 모르고 생활하였다면 말이 되겠는가? 유럽에 이미 체스가 있었는데, 아메리카에 체스가 없다는 것이 말이 되겠는가? 시대를 조금 바꾸어서 한반도의 고조선 시기에 중국에서 이미 기원전 수천년전부터 바둑이 존재하였는데, 상호 문화를 공유한 한반도에 바둑이 없었다는 게 말이 되겠는가? 만약 당시 한반도에 바둑이 없었다면, 중국에도 바둑이 없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한반도에 바둑 관련 기록이 없어서 몇 백년의 시차는 설혹 인정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몇 천년의 시차는 애시당초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 아닐까?

한반도에서 삼국시대에 가서야 비로소 바둑이 사실(史實)로서 기록되어 나타난다면(5C, 백제, 개로왕), 중국 또한 아무리 빨라도 기원전후 무렵에나 바둑이 성립되었다고 보는 것이 적당할 것이다.

오늘날 인터넷의 발달로 우리는 수많은 지식을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있다. 따라서 바둑의 기원 관련한 유용한 지식들 또한 쉽게 검색할 수가 있다. 이러한 지식들을 단순히 나열만 하더라도 우리는 바둑의 기원 관련하여 새로운 이해를 확보할 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둑의 기원전 수천년전 기원설이 쉽사리 수정되지 않고 있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바로 이것 때문이 아니었을까?

子曰 飽食終日 無所用心 難矣哉 不有博奕者乎 爲之猶賢乎已
(자왈 포식종일 무소용심 난의재 불유박혁자호 위지유현호이)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종일 배불리 먹고 마음 쓸 데가 없다는 것은 어려운 노릇이다. 박혁이라는 게 있지 않느냐? 그런 것이라도 하는 게 그래도 나을 것이다.' (논어 17장 양화 22절)

註: 박혁은 장기 · 바둑 따위 (차주환역, 동양의 지혜) 
 
누대로 우리가 금과옥조로 외우고 익혔던 공자님의 말씀(곧 진리)에 이렇게 턱하니 바둑이 표현되고 있으니, 더이상 무슨 논증이 필요하였겠는가? 일단, 공자가(이하 존칭 생략) 생존했던 기원전 6~5세기에는 당연히 바둑이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또한 그시대에 이미 공자가 일상언어 속에 편하게 거론할 정도라면, 바둑은 하나의 문화로서 그 시대보다는 훨씬 더 오래전에 실재하였으리라고 하는 막연한 공감이 진실로서 우리의 관념에 깊이 뿌리 박히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관념은 김달수님의 논문 [바둑의 기원과 관련된 박혁의 의미에 대한 문헌연구 및 고찰, 2005]이 발표된 이후에는 검증이 요구되는 신화적 관념이 되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논문에서 김달수는(이하 존칭 생략) 공자가 거론한 박혁(博奕)은 우리가 현재 그렇게 알고 있는 장기의 박(博)과 바둑의 혁(奕)을 함께 거론하는 것이 아니라, 육박(六博, 陸博, Liubo)의 일종인 박혁(博奕)이라는 단일 게임이라고 논증(추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육박(六博)이라는 것은 게임의 분류 측면에서는 경주게임(racing game)이다. 경주게임이란, 우리의 윷놀이와 같이 정해진 수의 말을 경주시켜 그 승부를 가름하는 놀이로서, 기물(말)의 행마는 주사위와 같은 보조도구를 (윷놀이에서는 윷가락) 사용하여 결정하였다. 따라서 운(주사위)이 작용하는 요소가 많으므로, 운이 배제된 바둑이나 장기를 전략게임이라고 하는데 반하여, 이를 경주게임이라고 정의하여 따로 구별하는 것이다.

김달수에 따르면, 선진(先秦)시대(진나라 이전)에는 박(博)이란 육박(六博)을 지칭하는 것으로 기본적으로는 저(箸, 젓가락)를 던져 박국(博局, 놀이판)에 배치된 말을 움직이면서 상대의 말을 잡는 경기이다. 그런데 여기서 박(博)은 어느 쪽의 말이 도착지점에 빨리 돌아오는가에 의해 승부가 결정되지만, 박혁(博奕)이라는 박(博)의 변형된 게임에서는 정해진 수의 말 즉, 6개의 말을 누가 먼저 다 잡느냐에 의해 승부가 결정된다고 추정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논문에 동의할 때, 공자는 논어에서 바둑에 대해 아무것도 얘기하지 않은 것이 된다. 김달수는 바둑을 공자로부터 해방시켜준 것이다.(동일한 어휘를 쓰는 맹자로부터도) 그렇다면, 우리는 바둑이 언제부터 성립되었는지? 다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바둑의 기원에 대해 우리는 문헌과 고고학을 통해 사실(事實)을 확인해볼 수 있다. 또한 다양한 역사적, 맥락적 이해를 통해 해당 사실에 대해서 종합적으로 접근해볼 수 있다.

먼저 문헌적 증거부터 살펴보자. 문헌적 증거로는 구글에서 ‘圍棋文獻’(위기문헌)이라고 하여 검색하면, 중국의 역대 바둑 관련 모든 문헌자료를 집대성한 표를 볼 수 있다. 그 표에서 한(漢) 시대 이후는 생략하고 소위 선진(先秦)시대에 대해서만 가져온 것이 아래 목록이다.

 代

作者

文獻/出處 

 

 春秋 左丘明(約前556~451)
孔丘(前551~479)
《左傳.襄公二十五年》
《論語.陽貨第十七》
哲理:擧棋不定必輸 
哲理:博弈比無所用心好
 戰國 佚名
佚名
孟軻(約前372~289) 
《世本》
《山海經.中山經》
《孟子.離婁下第三十章》
《孟子.告子上第八章》
人物:堯造圍棋 
典故:帝台之棋 
影響:沈迷博弈乃不孝
哲理:弈秋也要專心 

 周

尹喜

尹文
《關尹子.一宇》

文選李善注引《尹文子》
哲理:習弈不可以一息得
哲理:二人對弈,可見勝負  
哲理:弈以智力求

일단 한눈에 보아도, 그 전거가 매우 부실하다는 느낌을 받는데, 이 느낌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주와 춘추전국의 오랜 시기에 생산된 수많은 문헌자료와 비추어 볼 때, 바둑 관련 전거가 매우 적다.
2) 저자가 전해지지 않음과 동시에 설화에 불과하거나(세본, 산해경), 저자가 있더라도 후세의 위작으로 판명된(관윤자) 자료가 반수이다(4/9).
3) 바둑을 직접적으로 기술한 것이 아니라, 바둑 관련 어휘(棋, 博, 奕)를 사용한 비유적 문장들이다. 이 문장들에서 그 비유의 원관념이 반드시 바둑이라고 단정할 근거가 충분치 않다. 사실, 바둑이 아닌 다른 게임(예를 들면, 육박)으로 생각하여 이해하여도 전혀 무리가 없다.(즉, 바둑의 존재 근거로는 합당치 않다.)

이상과 같은 정도가 바둑의 누천년 기원설의 근거이다. 그것도 있는 것 없는 것 몽땅 다 털어서 정리한 것이다.(전설까지 넣었다). 이런 사실 앞에서, 우리의 기분은 어떠한가? 한마디로 '털렸다!' 정도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상기표의 서두를 장식하는 좌전(左傳)의 ‘거기부정(擧棋不定)’은 통상 바둑 관련 최초의 기록이라고 언제나 거론되는 것이다. 그런데 기(棋)라는 말 자체가 '바둑'의 용례로 특정되기 전에는 그냥 보드게임을 뜻하는 일반명사(전칭)라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또한 기(棋)는 일반 보드게임에 쓰이는 기물(말)을 뜻하기도 하였음을 알 필요가 있다. 어쩌면 이것은 당시에 유행하였던 육박의 기물일 수도 있다. 즉 논지는 여기서 표현된 ‘기(棋)’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가 충분히 검토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전의 거기부정이 바둑의 최초 기록이라고 버젓이 통용되고 있는 것에 대해 오랫동안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은 것은 무엇때문인가? 그것은 그 시대에 이미 바둑이 당연히 실재하였으리라고 하는 상식이 전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즉 바둑의 누천년 기원설은 좌전의 거기부정이 보증하고, 좌전의 거기부정은 바둑의 누천년 기원설이 해석하는 이상한 순환논리가 토톨로지(tautology, 동어반복)로서 우리의 눈과 귀를 철통같이 봉쇄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으로 고고학적 증거를 살펴보기로 하자.(다음편에 계속)

(그런데 이글을 쓰면서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깜짝 놀랐다. 필자가 평소 애독하는 작가인 이청님의 ‘바둑이냐 박혁이냐’(사이버오로, 2014.09.24)라는 칼럼글 중에 필자의 블로그 글 ‘박혁(博奕)과 장기의 기원’(쓰지 않는 배, 2010.01.13) 의 일부가 표절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너무나 익숙한 글이어서 금방 알아보았다. 그것은 김달수의 논문을 필자가 요약 인용한 것인데, 한 단락이 거의 정확하게 가감없이 복사되어 있었다. 아무런 출처 소개도 없이 본인의 문장인 양 T.T, 인터넷 세상에서 문장의 저작권 또는 저작 윤리는 설 자리를 잃은 것인가? 개탄해 마지 않는다.)
┃꼬릿글 쓰기
팔공선달 |  2015-04-08 오후 3:29:17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반갑고 환영합니다. 건필하시길....  
돌잠 |  2015-04-08 오후 4:10:1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감사합니다.  
youngpan |  2015-04-18 오후 11:49:1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잼있군요~ 혹시 달님 제가 만나본 구면인 분이신가요? 이분은~~  
돌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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