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보 (1168~1241) : 고려시대 문신.  호는 백운거사

바둑은 강적을 만나야 기쁘다

조나라 기를 빼앗고

붉은 기를 세우려 하네

그대 두려워하고 위축되어

오래도록 오지 않는데

부질없이 죽창아래

등불만 밝혀 놓았네

In playing Baduk I love a strong adversary.

I try to take the Zhao flag,

to set up the red flag instead.

You have been fearful and constrained ;

you have not come for a long time.

To no purpose the lamp shines

under the bamboo window.

이규보는 많은 바둑 시를 남긴 고려시대 문인이다.

케빈 오룩 교수님은 이규보의 시를 중국의 이태백, 두보와 견줄 수 있을 만큼

훌륭하다고 평했다.

난 그저 바둑 시만 봤기에 그다지 마음에 와 닿지는 안았지만...

바둑 둘 때 당연 강적을 만나야 기쁘다.

왜 ?  한 수 배울 수 있으니까. 

인생을 살면서 강력한 라이벌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인생인가 !

삼국지의 유비, 조조, 손권이 그랬고...

초한지의 유방과 항우가 그랬고..

히틀러와 처칠,  모택동과 장개석, 박정희와 김대중.....

일일이 다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역사에서 강력한 라이벌이 없다면, 자신의 존재 자체도 희미해진다. 

빛과 그림자, 높은 산과 깊은 계곡, 하늘과 땅...

역사는 항상 정반합으로 균형을 잡으면서 발전한다는 헤겔의 변증법 철학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인생에서도 강력한 라이벌을 만들고 그를 경외하고 스스로 다짐하면서

노력한다면 역사에 살아온 흔적 정도는 남기지 않을까 ?

백운거사는 죽창에 등불을 켜놓고 오지 않는 바둑 친구를 하염없이 기다린다.

그리곤 생각한다.  어제 내가 너무했나.

만방, 아니 축방으로 이겨버려, 자존심이 상했나. 

아님, 무슨 일이 있나.  내가 섭섭하게 대한 점이 있나.

만약 누군가가 갑자기 연락을 끊고 오지 않는다면...

나 역시 죽창에 불을 켜 놓은 채 기다릴 뿐...

초겨울 문턱에서 싸늘한 바람에 휘날리는 노란 은행잎을 맞으며, 밟고 걸어간다. 

뒷모습이 초라해지지 않으려 목덜미에 깃을 세운다. 

사각 사각 사각...떨어지는 은행잎이 뺨을 때린다.

퍽, 퍽, 퍽...임마 정신 차려, 정신 차리라니까.  인생, 그거 쉽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