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영시를 다시 연재하면서

2008년 5월 9일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바둑 영시집 “인생 백년이 한 판의 바둑 같고”란 책이 출판된 날이기 때문이다.

실의에 빠져 있던 중, 마음을 달래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바둑TV의 칼럼 란에 들어가게 되었다.  권경언 프로의 칼럼에 빠져 처음부터 죽 읽어보니 마음이 한결 편해짐을 느낀다. 

거의 한나절을 꼼짝 않고 읽어 내려간다.

그리고는 기쁨과 감격과 놀라움이 교차하며, “한국에 바둑 시가 이렇게 많은데 난 왜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을까 ?” 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고, 또한 나의 무식을 탄식했다.  한국의 교육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대학입시를 위하여 많은 한시를 배우고, 외우고 했는데, 내가 알고 있는 시는 조식의 시 한편 뿐이었다.  그래서 칼럼에 나오는 바둑시를 대부분 복사하여 저장하였다.

그리고 불현듯 바둑시를 영어로 번역해 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도전을 해보자는 용기가 나를 유혹 했다.  그래 한 번 해보자.  20편 정도를 번역해 보았다.  그런데 도대체 내가 잘하고 있는지, 이게 제대로 된 것인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영어도 영어지만 우리말도 문제이다.  도대체 주어, 동사가 안 나온다.  우리말은 거의 주어가 생략되어 있지만, 영어는 반드시 주어가 있어야 문장이 된다.  도대체 주어가 무엇인지 종잡을 수가 없고, 무슨 표현인지 아리송한 것이 너무 많다.  괜한 짓을 한 것이 아닌지 후회가 밀려온다.  어떻게 검증을 해야 되나 ?   그리고 다시 떠오른 생각.  그래 바둑 시니까 바둑 사이트에 올려보는 것이 어떨까 ?

다행히 바둑이 취미라 타이잼과 오로에 예전에 이미 가입된 ID가 살아있었다.  오랜만에 오로에 접속을 하여보니 읽을거리가 꽤 많다.

이청님의 청룡도를 죽 읽어 보았다.  새로운 감흥이 솟구쳤다.  여설하님의 글도 읽어보고, 여기저기 닥치는 대로 읽어 나갔다.

그리고는 나도 작가 코너가 대문짝만하게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그래 바로 여기야.” 망설임 없이 나도 작가 신청을 한다. 그리고 첫사랑 몰래 훔쳐보는 기분으로 살며시 수줍은 시 두 편을 올렸다.  따뜻한 인사말이 댓글로 올라온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 그냥 읽기만 했다.  댓글을 달아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나도 작가 코너의 다른 글들도 다 읽어 본다.  따뜻한 댓글의 향연에 푹 빠져, 현실에 대한 걱정은 사라졌다.

그리고 매일 한 편씩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20편이 좀 넘어서면서 약간의 자신감도 붙었다. 

2007년 12월에 세계3대 조각가로 추앙받는 문신 선생의 일대기 “노예처럼 일하고 신처럼 창조한다”를 출판사 선배와 함께 책을 낸 경험이 있어서 욕심이 생겼다.  현재 문신 박물관은 숙명여대와 마산 두 곳에 있지만 작품 활동만하여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조각가이다.  출판사의 경험을 살려 오로 출판사의 조창삼 사장을 직접 면담했다.  흔쾌히 책을 내는데 동의했다.  사실 조사장은 2004년 무렵 남치영 교수의 저서 “Contemporary Go Terms"라는 영어바둑 사전을 사기위해 직접 출판사를 찾아가서 만난 적이 있으니, 이미 구면이다.

그런데 조사장이 고민을 한다.  영어 시를 어떻게 검증을 하냐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에 있는 아는 바둑인에게 메일로 보내서 검토를 부탁하겠다고 한다.  그렇게 하라고 했다.  거의 한 달이 다 됐는데도 연락이 없다.  시 60편은 이미 2월 말에 다 끝난 상태이다.  먹고 살아야 하는데 무한정 기다릴 수도 없고 정말 대략 난감했다.  그래서 내가 알아보기로 했다.  남치영 교수에게 메일도 보내고, 한상대 교수님은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대학 시절 영문과 교수님도 찾아뵙고 부탁했다.  다들 난감해 했다.  이제 와서 포기 할 수도 없고, 집사람은 도대체 돈 안 벌어 오고 뭐 하러 다니냐고 핀잔이고, 애들은 애들대로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한상대 교수님은 2004년 무렵, 역삼동 영 빌딩 지하에서 바둑영어교실을 연다는 기사를 읽고 한 번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때 Grammar in use 라는 영어책으로 수업을 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그리고 그때 지금 독일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윤영선 프로가 정말 열심히 영어 공부하던 기억도 난다.  그때 총무로 있던 김선기님은 지금 도곡동에서 명지대 바둑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인터넷에 나온 전화로 한상대 교수님에게 전화를 하니 김선기 원장이 전화를 받는다.  그래서 전후 사정을 다 얘기를 하니 한 번 놀러오라 하여 찾아간다.  거기에서 독일에서 바둑유학을 온 다니엘라를 만난다.  다니엘라는 명지대 바둑교실에서 영어로 바둑을 가르치고 있었다.  구세주가 따로 없었다. 다짜고짜로 막무가내로 부탁을 한다.  시는 어려워서 못한다고 손사래를 치는 것을 무조건 좀 해달라고 강압을 한다.  독일어가 영어의 모태이니 독일인은 대부분 영어를 잘한다.

그래서 영어만 보고 오타나 표현이 어색한 것만 좀 잡아달라고 부탁하니 겨우 허락한다.  보고 또 보고 해도 오타가 계속해서 보인다. 문법도 마찬가지이다.  어쨌거나 2008년 5월 9일 책이 나온다.  감개무량이다.  책 내는 것이 애 낳는 것보다 힘들다는 것이 이제야 비로소 이해된다.

그리고 그 일을 계기로 연속해서 윤영선 프로 책과 김성래 프로 책을 영어로 번역을 했다.  아쉬움이 있다면 이창호 국수의 책을 영어로 번역하고 싶었는데...사정도 복잡하고  먹고 사는 일이 더 급해서 이제는 손을 뗀 상태이다.  만약 이세돌 국수의 책이 나온다면 내손으로 영어로 번역을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