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태백의 어느 작은 마을.

벌초를 마치고 장인어른 묘소를 기대고 담배한대를 붙여 올려놓고는 선달이도 담배를

꺼내 물고 비스듬히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며 길게 담배연기를 내뿜는다.

후~~

장인어른  세월이 참 빠르군요.

벌써 40년 전의 일이네요

오늘 머슴하나 들어 왔어요.

하하하하.

갑자기 웃어젖히는 소리에 애들과 부인이 놀래서 돌아본다.

무슨 일이예요?

부인의 의아한 눈을 바라보며 선딜이는 가만히 손을 내민다. 손을 잡으며 옆에 앉은

부인에게 선달이가 만면의 웃음을 머금은 채 이렇게 말한다.

내가 웃은 게 아니라 장인께서 웃은 것이요.

???

아 우리 머슴 들어온 거 장인에게 말했소.

하하하.

그때 사 부인도 함박웃음을 웃으며 애교스럽게 선달이의 어깨를 살짝 두드린다.

40년 전.

태평역.

원래지명은 태백역 이지만 평화로운 곳이라 하여 애칭으로 그리 부른다.

그날따라 제법 많은 사람들이 찾았는데 선달이도 그 틈에 끼여 있었다. 청바지 차림으로.

그리고 바로 천제단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싣고 창밖을 우두커니 바라본다.

내일부터 인생을 걸고 마지막 내기 바둑을 두는 것이다. 그 염원을 빌러간다

프로의 꿈이 좌절되어 전국을 배회하며 내기 바둑으로 전전하던 선달이가 태백에 이르러

백년대계를 꿈꾸며 모종의 계획을 세운다. 태백에 만석지기며 선비로 소문난 이가 있는데

이름하여 선비만석이라는 애칭을 쓰는 이로 바둑이 강 1급 수준이고 내기를 좋아한다는

사람을 찍었던 것이다. 강직 하지만 사람이 좋기로 소문이나 쉽게 공략 하리라 믿었다.

그의 솔이농산 이라는 거대한 농장에 머슴으로 들어가기로 작정을 한 것이다.

그리고 10년을 잡고 그의 재산을 모두 뺏는다는 계획인데 대동강 물 팔아먹는 거 보다야

훨씬 쉽다고 생각했다. 나름 바둑에 자신이 있고 상대는 내기를 좋아하니 선달이로서는

더 이상의 먹잇감이 없었다. 다만 시간이 필요했으니 단 한번으로 인생을 걸었던 것이다.

낮에는 북극곰처럼 우직하게 일을 하고 밤에는 바둑 공부에 그야말로 주경야독을 했다.

바둑 공부라는게 이기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주인 눈에 들려고 하는 것이다.

월급으로 아주 기초부터 한권씩 책을 사 모았고 오랜 시간을 서두르지 않으며 꾸준하게

공부를 하였다 아니 하는 척 했던 것이다

일 년이 지나면서 서서히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자 선달이는 내심 쾌재를 불렀다

“”드디어 물었구나.

밤에 책을 보는데 주인이 들어오면서 선달이방에 들러 물끄러미 바라보고 가는 것이다

그것이면 되는 것이다 서서히 아주 서서히 하려고 했으니까. 관심을 보이면 된 것이다.

그리고 몇 달 후 주인이 부른다는 소리에 안채로 들어가 보니 주인이 빙긋이 웃으며

몇 권의 책을 권하는 것이 아닌가. 바둑책이 아니고 일반 도서였다  꼬인다는 느낌이.

선달이는 내심 실망했지만 그래도 담담하게 임하려 무척 노력했다 아직은 시작이니까.

빈삼각에도 묘가 있다고 했으니 그래도 뭔가 관심이 있으니 그런 것이다. 기다려야 한다.

속으로 다짐에 다짐을 하면서 십 넌 후의 자신을 그리며 꾹 참기로 했다

그렇게 5년을 보낸 후에야 선달이에게 기회가 온다.

늘 사람들을 불러서 바둑을 두고 수담 나누기를 즐겨하더니 그 자리에 자신을 불러

친구가 데려온 아이와 바둑을 둬 보란다. 부끄러워하면서 미천함을 내세워 사양 하였으나

부담 갖지 말고 두라는 권유를 자꾸 버틸 수가 없어서 바둑판 앞에 무릎을 굻고 앉았다

상대의 실력은 선달이에게 서너 점 그래도 기원1~2급 수준이었다.

이겨야 되는지 져야 되는지를 내내 갈등하다가 어려운 정석을 선택해 실수하는 듯하면서

바둑을 지는 쪽으로 결정을 하고 그렇게 바둑을 두어 나갔다.

결과를 보고 주인은 환하게 웃으며 “역시 책으로는 한계가 있는 모양이야” 그래도 잘했어

하면서 따님에게 차를 가져 오라고 하신다. “여현아 여기 차 좀 내 오렴.”

선비만석의 외동딸인데 선달이가 들어올 땐 초등학교에 다니다 이듬해 서울로 갔는데

그러고 보니 이제 고등학생이 되었다. 그래 고3이라고 한다.

사복을 입고 차를 들고 나온 그녀는 5년 전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완연한 숙녀로 탈바꿈 하였고 선달이는 그녀를 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자기 방으로 돌아온 선달이는 그날 밤 내내 뒤척였다. 산만한 자신을 돌아보고

안 된다. 여기서 모든 걸 포기 할 수는 없다고 자신의 따귀를 때리며 머리를 벽에다

쥐박으며 정신 차릴 것을 독려했다. 인생을 걸지 않았는가.

문득 선달이는 통장을 꺼내 보았다

푼돈이라 생각하고 지난 세월동안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3천만 원이 들어 있다

먹고 자고 일만 했으니 전혀 지출이 없었고 주인에게 신임을 얻기 위해 모두 맡겨두고

가끔씩 통장정리만 하였던 것이다. 이렇게도 돈이 모이는 구나. 의외였다

그래 이것으로 땅따먹기 밑천을 해야 되겠다.

갑자기 앞이 확 터이고 희망이 봇물처럼 쏟아진다. 얼마 전 농장 모퉁이 포도밭을

내놓았는데 이상하게 팔리지를 않는다. 선달이는 그것을 밑천으로 만들자 싶어

만석이에게로 달려가 모자라는 것은 벌어서 갚을 테니 자신에게 달라고 했다

반신반의 했는데 의외로 쉽게 승낙을 하는 게 아닌가.

모자라는 2천만 원 중 천만 원은 5년간의 퇴직금으로 또 천만 원은 보너스로 계산하여

흔쾌히 넘겨주는 것이다. 내기를 하지 않았는데 땅이 생겼다 계획은 야금야금 도려내어

이 땅을 모두 차지하려고 했는데 5년을 기다려 모퉁이 땅을 그것도 돈을 주고 샀다

미끼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면서도 묘한 기분은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집념으로 보낸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신임을 얻고자 시키는 대로 하면서 주인에게 받아서 읽은 책도 수백 권이 되고 바둑이

아니지만 읽은 책들의 소감을 나누면서 주인과의 신임도도 갈수록 깊어졌다. 이제는

땅을 가지게 되었고 자신이 작은 주인이 되었다는 자부심도 생겼다.

모든 것을 주인에게 맡기고 열심히 일만했다

오직 한판의 바둑으로 모든 걸 차지하겠다는 일념으로. 그리고 3년 뒤 그동안의 소출과

임금으로 또 그만큼의 땅을 할애 받는 날 선달이는 주인에게 한턱내고 싶다고 청한다.

주인이 특별히 키우는 복돼지를 잡겠다고 했던 것이다 그것은 주로 당근을 먹여서 키운

일명 당근돼지로 주인은 복돼지라하고 특별한 날에만 잡는 돼지다.

농장 인근에 한 채뿐인 이웃인 소라네도 초청하여 잔치를 하고 싶다고 청했던 것이다

처음으로 지출을 하는 것이고 그것도 주인에게 유노를 받으려는 것이다.

“그래 .이제는 돌을 거둘 때가 된 것 같으이.

이상한 말을 흘리며 선비만석은 이틀 후로 날을 잡고는 모두에게 알리라 한다.

선달이는 의아했지만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이틀 후

많은 사람들과 동료들 그리고 만석이의 지기들까지 초청하여 즐겁게 놀았고 만석이는

선달이의 성실함을 술좌석 내내 주변에 자랑했다 좀 묘한 기분이 들었지만 선달이도

그리 나쁘게 들리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윽고 모두 돌아가고 선달이도 돌아와 누웠는데

밖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 주무세요?

아니 이목소리는 여현의 목소리가 아닌가. 화들짝 놀라 옷을 추스르고 대답한다

“ 아. 아이요. 무슨 일로?

“아버님이 건너오시래요.

주섬주섬 챙기고 따라 나서는 선달이는 의문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여현이가 언제

왔으며 이 시간에 왜 나를 부르며 그리고 여현 이를 왜 보냈을까.

여러 지난 일들을 얘기하며 술잔을 나누던 만석이가 대뜸 선달이에게 묻는다.

“ 자네 어저께 나에게 잔치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 내가 한말 기억 하는가?

그때 사 무심코 흘린 말이 떠올랐다.

“ 저는 그저 무심히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이어지는 만석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선달이는 지옥을 왔다 갔다 했다.

만석이는 바둑 친구로부터 선달이의 정채를 미리 알았고 모르는 체 지난 8년간을

지켜보았으며 바둑책이 아닌 다른 책들을 권한 것도 그런 이유며 자신은 선달이와

인생을 건 바둑을 두어 왔다는 것이다.

선달이는 눈물을 흘리며 사죄를 했고 만석이는 어께를 두드리며 술잔을 권했다

그리고 여현이에게 따르라 명한다. 황급히 사양 했으나 여현이는 이미 선달이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고개 들어 바라보니 미소 띤 얼굴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다.

그리고 만석이의 말이 이어진다.

“ 나는 말이야 자네가 못해낼 줄 알았거든.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

“ 이제는 내가 돌을 거두어야 할 것 같아 자네가 이겼어 계가로 갈 바둑이 아니야.

“ 그리고 나 얼마 못살아. 암이래. 그래서 10년을 채우지 못하는 거야

“ 내가 시간패 한거지...허허허.

“ 우리여현이 잘 부탁하네. 이제는 자네가 생각만 바꾸면 모든 것이 달라져 있을 거야.

“ 자 이제 나에게 약속한다는 술 한 잔 따르게.

아까부터 흐느끼는 여현이와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선달이는 엉엉 울면서 술을 따른다.

술잔이 넘치는 데도 계속 따뤘고 만석이도 그렇게 잔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선달이는 엎어져 통곡을 한다,

“ 어르신 저를 죽여주십시오.

만석이는 일어나라 하고는 여현 이를 불러 손을 맞잡게 하고는

“ 어미 없이 자랐지만 너무 고맙게도 이렇게 예쁘게  자라주어서 너무 고마울 뿐이야

이제는 자네가 책임져 주게.

산달이는 자리를 박차고 나와서 정신없이 달렸다 넘어지고 또 넘어 지면서 그리고 어디를 들어갔는지 모르고 만취가 되어 일어 나보니 낯선 술집바닥 이었다 농장으로 돌아갈 용기가 나지 않아 터벅터벅 걷다보니 천제단이 떠올랐다. 한숨에 달려가 엎드렸다

“ 내 다시는 바둑을 두지 않겠소. 인생 바둑만 두겠소. 그러니 어르신 돌려주시오.

“ 앞에서 빌었던 것 전부 거짓이요 내 이렇게 간곡히 빌테니 모두 돌려주시오.

통곡을 하며 절을 하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돌아보니 여현이 바라보고 있었다.

“ 아버님이 여기 계실 거라고 했어요.

“ 혼자는 오지 말라고 했어요.

그리고 일 년 뒤 장인은 돌아 가셨고 가시기전에 나에게 귓속말을 하였다.

“ 니눔도 딸 낳으면 너 같은 놈 만날 거야.

그놈이 들어 온 것이다. 그래서 장인에게 보고 하러 온 것이다.

여보.

돌아보는 여현이 에게 선달이는 말한다.

“저놈 처음엔 뺑뺑이 좀 돌려야 되겠지

“저놈도 천제단에 갔다 왔을까.

여현이 선달이의 옆구리를 꼬집는다.

아야야. 말이 그렇다는게지

하하하하. 호호호호.

두 사람의 유쾌한 웃음이 누런 황금 들녘을 가로 지른다.

천제단 바둑대회 참관 기념으로 글쓰기를 함 해봤는데 미숙하더라도 양해 바라며

거론된 대명은 이날 참석하실 예정인 분들로 나름 기념하기위해 억지로 끼워 넣었습니다.

글쓰기의 어려움을 통감 하면서.

                                               2009年 9月 28日 팔공선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