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백년이 한판의 바둑 같고

2008년 10월 무렵 우연히 인터넷 글을 검색하다, 삼성동 무역회관에서 세계번역가 대회를 개최한다는 공고를 봤다.

바둑 시를 영어로 번역하면서, 너무 힘들고 어렵고, 번역 또한 허접하기 짝이 없어 마음속으로는 심한 번민에 휩싸여 있었기 때문에 회심의 미소를 머금는다.

이제야 한 수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왔구나.

짬을 내서 가보니, 세계의 유명한 번역가들이 많이 참석해서 훌륭한 강연을 펼치고 있다.

팜플렛을 보니 유독 한 분이 눈에 띈다.  케빈 오룩 경희대 교수님이었다. 

김삿갓 시 영어번역을 계획하고 있다는 글이 눈에 띈다.

아니, 벽안의 외국인이 한시를 영어로 번역을 하다니, 너무 반가웠다. 

그것도 난해하고, 풍류와 해학이 넘쳐흐르는 김삿갓의 시를 영어로 번역하겠다니 가희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래 다짜고짜로 한국번역원 직원에게 내 소개를 하고, 케빈오룩 교수님의 연락처를 받았다.  메일로 내 소개를 하고 한번 뵙고 쉽다고 하니 흔쾌히 오라고 하신다. 지금은 중국 출장을 가니 귀국하면 찾아오라고 하신다.  찾아올 때, 절대 선물 이런 것 가져오지 말라고 당부를 한다.  하나라도 배울 것이 있다면 천리를 마다하지 않고 가겠다는 옛 성현의 말씀이 불현듯 떠오른다. 

귀국 날짜에 맞추어 메일로 약속 날짜를 정한다.  케빈 교수님을 찾아뵙고 자초지종을 말씀드리며 “인생 백년이 한 판의 바둑 같고”란 책을 드린다.  교정을 다 보려면 한 달 정도는 족히 걸린다고 하신다.  그리고 한 달 후, 메일로 교정본을 받으니 감격 그 자체다.  내 번역과 교수님의 번역을 비교해보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오로 출판사 조창삼 사장과 만나서 책의 재판을 의논을 한다.  난색을 표명한다. 재고가 400여권 남아서 좀 힘들다고.  2009년 5월 책 발행 1주년이 돼서 다시 한 번 재판에 대해 의논했다.  또 다시 난색을 표명한다.  여전히 재고가 400여권이 남았다고 한다.  씁쓸히 돌아섰다.  그리고 결심했다.  다시는 쓸데없는 짓 하지 않겠다고. 처 자식 힘들게 하지 않겠다고.

직장 생활의 스트레스와 온라인 분란(똥파리와 동물론)에 휘말리면서 면역성이 급격히 떨어지니 급기야 대상포진이라는 희귀한 병에 걸리고 만다.  삼성병원 응급실에 두 번이나 갔다.  그리고 나작과 광장의 글을 찾아 모조리 삭제하기 시작했다.  두 번 다시 쓸데없는 짓은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병 관리에만 힘썼다. 한 달이 지나니 조금씩 회복이 되었다. 인생 다시 사는 기분이다. 얼굴엔 아직도 그때의 상처가 흔적처럼 남아 있지만, 그것도 삶의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재판을 내지 못한다면 사이버 오로 나작 코너에라도 옮겨 놓아야겠다.  사람의 일이란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아무도 모르지 않는가.  문게판에서만 보던 배추님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나라로 가셨다고 하니, 세상이 너무 허무하고 허탈하다.

내가 다시 나작에 올 수 있도록 깨달음을 주신 배추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편안한 영면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