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그 첫 번 째로 나를 웃게 만든(물론 당한 이의 입장에선 울었겠지만) 얘기를 해볼까 한다. 이 얘기를 하면서 갑자기 생각 난 것이 50년을 넘게 살아 오면서 가장 보람된 일도, 가장 절묘한 일도 모두 목포에서 살던 1년 반동안 일어났다는 것이다. 좋든 나쁘든 그 곳과 뭔 인연이 있는게 아닐까 생각한다.

마산에서 일을 마치고 서울로 복귀하기 몇 달전, 목포에서 불미스런 문제가 터졌다. 어떻게 하느냐, 정석 니가 한번만 더 지방에서 근무해 달라고 서울에서 부탁하여(실은 지방 소장이 가장 선호되는 자리였지만, 나는 서울에서 조금 더 하다 해외 지사로 갈 예정이었다) 하는 수 없이 목포에서 일하게 됐다.

그리고 몇 달 후 일도 대충 정리되고, 어떻하면 매출을 늘릴까를 생각하고 있던 시점이었다. 그 때는 이미 거래처도 몇 번씩 다 방문하여 얼굴도 익숙해지고, 어디가 좋은 거래처이고 어디가 조심해야할 거래처인지도 어느 정도는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 때 내린 첫 번째 조치가 영업소 거래처중 특A급 거래처 3개 중 하나로 꼽히는 갑사에 대한 조처였다. 직원을 보내 통보를 한 것이 <나산 그룹 어음은 더 이상 안 받겠다. 나산 어음으로 결제를 한다면 더 이상 출하를 못하겠다.>고 통보했다. 당연히 갑사 사장이 흥분하여 곧 바로 내려왔다.

<아니 나산 어음을 안 받는다니, 설마 나산이 부도 날거라고 생각합니까? 지금 정석 소장이 서울에서 내려와 잘 모르는 모양인데 이 바닥에선 나산 어음이 삼성, 현대 어음과 같은 취급을 받는다는 거 모릅니까? 그리고 내가 여기 아니면 물건 살 때가 없어서 그러는 줄 아나 본데, 그래도 몇 년간 계속 거래를 해왔기에 그 동안의 정으로 그나마 내가 이렇게 와서 얘기하는 거요. 지금 당신 큰 실수 하는 거요.>

물론 내가 그런 결정을 내리자 이미 직원들도 똑 같은 식으로 얘길 했었다. 특A 거래처에 특A급 어음으로 결재하는데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게 아니냐고. 그 때 내가 대답했다. <누가 뭐래도 제 생각엔, 나산은 문제가 있습니다. 사장님도 나산하고의 거래 관계를 잘 생각해서 하십시오. 저는 나산 어음을 좋게 보지 않습니다.>라고. 그러나 나산 회장하고 동향으로 형님 아우 한다는 그 분에게 왜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지에 대해 꼬치꼬치 얘기 할 수는 없었다.

사실 그런 결정을 하게 된 동기가 있었다. 광주 전남을 내가 어떻게 잘 알겠는가. 그래서 직원들에게 이것 저것 대화를 하는 와중에 나산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그 전에 나산 이란 이름은  나산 꼼빠니아란 의류 브렌드와 나산 플라망스란 농구단 이름 뿐이었다.

그런데 나산에 대해 새로 자세한 예길 듣고 보니 어디선가 언듯 들어 본 듯한 나산 종합건설, 광주 MBC인가 전일방송인가 하여튼 방송 신문등 언론사를 비롯해서 그야말로 문어발이었고, 그 발전(?) 속도 또한 그야말로 광속도였다.

내가 목포로 내려가던 시점이 95년 후반 이었는데, 96년 한해 동안 지방의 어느 중소 도시에 있던 1군 건설 업체 11개중 9개가 부도 났다고 하던 그 때였다.

그리고 나산의 초고속 성장 얘기를 듣고 머리에 스친 것이, 명성, 율산, 제세. 특히 제세 산업의 성장과 몰락에 대한 얘기를 책에서 본 기억이 났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그 정도의 아이템을 가진 그 기업이 그러한 초고속 성장이 가능한가에 대한 생각을 해 보았다.

결론은 <절대 불가>였다. 마이크로소프트 처럼 어떤 획기적인 기술을 가졌다거나, 6-70년대 처럼 정부에서 전폭적인 밀어 주기를 하던 시기라면 또 모르겠다. 그러나 그 때만 해도 소위 내가 이미 올린 글 내용 처럼 <사회적 분산>이 그 정도로 큰 상황은 지나, 그래도 어느 정도 안정된 사회라 판단했다. 그럼 답은 뻔하다.

이익잉여금에 의한 성장이 아닌, 부채에 의한 성장, 그런데 주력인 건설은 업계가 이미 바닥으로 가고 있다. 그럼 부도 밖에 더 남나. 그래서 직원에겐 <나산은 오래 가지 못한다. 그러니 매출 감소가 문제가 아니다. 다른 무명 중소 업체의 어음을 받을지 언정 나산 어음은 받지마라.> 고 지시를 한 상태였다.

그 다음 달부터 아무리 애를 써도 매출이 매월 전년대비 마이너스 2억, 사고난 것 수습하고 영업 정상화 시키라고 내려 보냈는데 오히려 현저하게 줄어 버렸으니 서울에서도 난리다. 다행히 지방 영업을 총괄하던 부서가 내 뿌리였기에 그나마도 넘어 갈 수 있었다.

그리고 6개월 후, 내가 입금 시켰던 나산 어음은 이제 한 장도 남질 않았고, 거래를 지속 했더라면 그 동안 들어왔을 최소 15억 이상의 나산 어음은 대부분 현대로 들어가 있었다.

사실 나는 나산 어음이 다 떨어질 때까지 (물론 충분히 할 말은 있었지만) 조마조마 했었다. 다 떨어진 날 시원하게 직원들하고 회식까지 했다.

그런데 회식하고 보름 만에 나산이 부도가 났고, 나는 영업 부서로서 전년 대비 매출이 현저하게 줄었음에도 사장 표창을 받게 되었다.(히이유~~ 다음에 얘기가 되겠지만 이 표창은 실은 불행한 일이었다)

현대는 십수억을 고스란히 날렸고... 아무리 경쟁 관계라도 남의 불행을 나의 행복이라 하면 안되겠지만, 여하튼 그 일 하나가 그 해의 양사 관련 사업소의 실적을 극명하게 대비 시켜준 사건이 되었다.

언제나 생각하는 것이 있다. 배운 것은 배운 것으로 끝내지 말고, 안 것으로 끝내지 말고, 실생활에 이용하라고. 맥가이버는 그로서 위기를 넘기지 않는가. 배우는 이유가 뭔가. 그냥 많이 알려고? 퀴즈 정답 맞추려고? 남에게 지식 자랑하려고? 물론 퀴즈 정답 잘 맞춰서 대회 나가 상 타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엄밀히 말하면 아는 걸 실 생활에 써 먹은 것이다.

<수학공부, 물리학 공부 왜 하는지 모르겠다.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만 알면 되지...> 보통 하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왜 배운 수학을 물리학을 이용 안하는지 모르겠다.> 라고 바꿔 얘길 한다. 만약 32 X 32 을 하라 하면 헤멘다. 펜과 종이 없이 할 수 있나? 그런데 다들 인수 분해 안 배웠나? (30 + 2) **2를 전개하면 훨신 쉽게 암산이 되는 것 아닌가? 자릿수가  아주 큰 숫자를 대충 계산 할 땐 로그를 써보라.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네이피어가 로그를 발견함으로써 천문학자들의 수명을 늘려줬다.> 삽질 하나 곡괭이질 하나 하더라도 힘의 원리를 한번 생각해 보라.

학교에서 국가 교육 정책으로 수학 물리학을 비롯 여러가지 학문을 선택하여 가르치는게, 불필요한 것이지만 시간이 남아, 또 단지 시험을 치기 위해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다 필요해서 가르치는 것이다. 단지 그 사용법을 제대로 안가르치는게 문제이고, 또 배운 것을 써 먹으려는 의식이 없음이 문제인 것이다.

여하튼 제세산업, 율산등의 성장과 몰락 과정을 보고, 또 당시 상황을 감안하고, 기본적인 경제 원칙을 바탕에 깔고 생각한 결과 나산이 부도 날 거라고 예언(?)을 했고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그러나 정작 내가 여기서 예언을 맞췄다고 얘기하는 것은 그 자체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진심으로 하고픈 얘기는 모든 사람들이 배운 것을 써 먹자는, 써 먹어 보자는 것이다. 써 먹지 못할 거라면, 또 않을 거라면 뭐하러 시간들여 돈들여 배우겠는가. 답답시려워서 하는 말이다.

사족 : 다 쓰고 나니 한가지 염려가 되는군요. 배운걸 잘 써 먹어야죠. 배운걸 가장 못되게 써먹는 자들 중 대표적인 자들이, 사깃꾼, 협잡꾼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