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현재 모습, 그것은 사람마다 살아 가며 만나는 수 많은 사람들로 부터 좋은 면이든 나쁜 면이든 영향을 받고, 또 그 영향을 나름대로 해석해 가면서, 각자의 자아가 생성되고 자라나 현재의 그 모습이 만들어진 것이겠지요.

그리고 그 주위 중 가장 중심에 있는 사람이, 누구도 아닌 부모형제 일테고, 그 중에도 어머니의 역할이 가장 클 겁니다.(아버지들의 분발이 필요하겠죠) 저 역시 지금의 이런 모습은 저도 모르게 어머님의 모습이 가장 크게 담겨있겠죠. 그리 생각해 보면 사실 말 한 마디 할 때도 조심스러워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먼저 글에서 제가 살아오며 어머니한테 딱 한 번 혼난 적이 있다고 했는데, 그 사건은 지금도 기억이 나고, 제 삶에 커다란 영향을 준 일이었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큰 일이 아닐 수도 있는 거였죠. 제가 문제를 일으킨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그러한 것을 알 만큼 나이가 먹은 상태도 아니었으니까요.

제가 국민학교 가기 직전, 어떻게 해서 밤중에 신작로에서 돈을 주워(당시 최고 금액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님께 신작로에서 주웠다며 드렸죠.

그런데 어머니는 저를 혼내시며, "니가 도둑놈이냐. 왜 남의 돈을 가지고 오느냐.." 제가 훔친게 아니라 주운 것이라 해도, 어머님이 "그 돈 잃어 버린 사람이 얼마나 속이 상하겠느냐. 그리고 그 돈 잃어 버린 사람이 잃어 버린데로 찾으러 올 것 아니냐 . 그리고 네가 주워 오지 않았으면 그 사람이 찾아 갈 수 있었을 텐데, 네가 주워 가지고 오는 바람에 그 사람이 돈을 못 찾게 되는 것 아니냐."

그리고 그 돈을 바로 파출소에 갔다 줬었죠. 저는 그것이 엄청난 범죄인 줄 알았죠.

그 뒤로 돈을 한 번 더 주은 적이 있죠. 고1 때 새벽에 어머니 심부름으로 두부 한모 사러 가게 가다가 골목길에 떨어져 있는 대봉투를 하나를 본거죠. 버린게 아닌 듯하여 주워 와 식구들과 함께 열어보니, 갖은 서류와 함께 무려 현금 50만원(다음해 봄에 저희가 서울 우이동에 대지 40평, 건평 23평 짜리 집을 짓는데 430만원 들었죠), 서류를 보다 보니 어디서 본 듯한 이름이라, 나가 보니, 아닌게 아니라 앞집 문패의 이름이더군요.

초인종을 누르니 저보다 한살 적은 그 집 애( 우연이라고, 나중 그 녀석은 그 동네에서 유일한 제 고교 후배가 됐죠) 가 나오더라구요. 봉투 주은 얘길 하니, 그 친구 부모님이 뛰쳐 나오는 겁니다.

아침에 봉투를 잃어버린 걸 알았다는데, 돈도 돈이지만 그 서류가 너무 중요한 서류인데, 간밤에 술에 취해 잃어버려, 어디서 잃은 건지도 모르겠고, 또 거금이 들어 있는지라, 서류를 못 찾을 것 같아 전전긍긍하던 차 였답니다.

감사의 뜻으로 돈을 좀 주려는 앞집 부부에 대해서도 어머님은 단호히 no를 하셨죠. 저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믿었고요. 제가 주워 온 것은 단지 찾아주기 위한 것이었으니까요. 그 날 저녁 스웨터 서너벌 선물 받았죠. 그 분이 스웨터 공장을 하시고 계셨답니다. 공장에서 가지고 온 거라며 극구 권하시어 어머님도 그건 받아 주셨죠.

선거 철이 되면 어머님이 종종 하시던 말씀이 기억납니다. 제가 겨우 세살 때라 기억은 못하지만 소위 3.15부정선거 때, 선거 다음 날 낮에 천안에 사시던 외할아버지께서 영월에 사는 딸네 집까지 오신 겁니다. 새벽 기차를 타고 오셨답니다.

외할아버지께서 하시는 말씀이, <세상에 어떻게 그런 선거가 있을 수 있나. 3인조, 5인조로 들어가서 투표를 하라니, 세상이 망하려고 그러나, 이 더런 놈의 세상, 내 조박사 찍고 도망쳐 온 거야.>

실은 저의 외가가 그 동네에서 그래도 양반가로 유지라, 이런 저런 압력이 많았었나 봅니다. 그리고 그 선거 전 저희 어머니도 비슷한 일을 당하셨답니다. 그래도 영월은 군수가 줏대가 있는 사람이라 3인조, 5인조는 안했답니다.

그렇지만 소위 동네의 이장 반장들의 앞잡이 노릇은 똑 같았다네요. 이웃에 사는 반장은 어머님을 굉장히 어려워 했답니다. 그래서 돌아다니며 막걸리며, 고무신도 돌리고, 이승만, 이기붕 안 찍으면 큰 일 날 듯이 갖은 공갈 협박을 하고 다니면서도, 감히 저의 어머님께는 그런 짓을 못했답니다.

한번은 “정석이 어머니는 천주교이니 장면이를 찍겠죠? 그런데 조박사는 죽었으니 어쩌나...”하며 비아냥 대는 반장에게, 그야말로 연약 그 자체인 어머님이 그 반장에게 “내가 천주교인 것 하고, 장면 선생 찍는 것 하고 무슨 상관이냐. 그리고 누굴 찍든 말든 다 그 사람들 맘대로 하는 것이지 당신이 뭔데 누굴 찍으라 말라 하면서, 별별 소릴 다 하고 다니느냐.” 이렇게 대차게 야단을 치니

“아 정석이 어머니 제가 뭐라 했습니까?”하며 대번에 꼬리를 내리고 도망치듯 사라지더랍니다. 여하튼 저희가 영월에 사는 동안 선거 때마다 다른 집엔 다 주는 고무신을 우리 집엔 한 번도 없었죠. 그런 피가 이어졌는지, 적어도 무관심한 저의 큰형님을 빼곤 정치적인 문제에  어느 쪽으로건 냉철하게 반응하죠. (그 덕에 저는 이 동네에서 안티가 좀 있죠)

어머님은 어쩌면 그 연배에선 찾기 어려운 면이 많으신 분이었죠. <남자도 설거지 할 줄 알아야한다.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왜 안되나> 당연히 이불 빨래등 밟아 빠는 것은 제 몫이었죠. 부모님이 다 돌아가셨지만, 명절 때 큰 형님 댁에 모두 모여있을 때도, 형수니, 제수니 가리지 않고, 시장 같이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음식 만들 때 남자라도 도울 일 있으면 돕고, 함께 청소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 되었죠. 어머님이 계실 때도 마찬가지였죠. 오히려 안하면 한마디 하시죠. <그건 니가 해라>

그래 그런지 저희 집에선 비록 가끔이지만 그래도 딸내미 보다 아들 녀석에게 더 설거지를 자주 시키죠. 청소는 누구, 설거지 누구하고 나누는 것도 보통 있는 일이고요.

제가 그렇게 커서 그런지, <남자도 청소하고 설거지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믿거든요. 막말로 집에서 그거 한다고 나가서 큰 일을 못합니까? 뭐 떨어집니까? 제 생각은 오히려 그 반대죠. 화목한 부부 생활은 화목한 가정을 만들고, 밖에 나가서도 큰 일을 할 수 있다고 보거든요.

저는 소위 修身齊家治國平天下 가운데 제일 어려운 일이 齊家라 생각하는 사람이죠. 보십시오. 한 나라의 원수인 대통령들(비단 우리나라뿐 아니고요) 요즘 세상에 平天下의 의미는 좀 달리 생각해 봐야 하니 별개로 친다면 최고 경지인 治國은 잘하면서 齊家를 잘하는 사람은 오히려 드문 듯 하니 말입니다. 우스운 얘기일지 모르지만 齊家의 시작을 설거지에서 부터 찾으면 어떨까요.

오늘도 횔설 수설 하다 보니 기대 안했던 말로 끝나는 것 같군요. <하하하 뭐, 아니면 말고>입니다.

제목을 붙이긴 붙여야 하는데 마땅한 제목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