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인천에서 직장 생활하던 때였습니다. 제가 인천으로 오기 전까지는 회사에서 가장 바쁜 생활을 했었죠. 야근 수당도 없었는데, 야근을 안하는 날이 별로 없었죠.(혹 야근 안하면 회식) 그러다 보니 어떤 직원은 낮엔 일 안하고 놀다가 밤에만 일하는 직원도 있었죠. 그러나 저는 회식에도 자주 빠질 정도로 정말 일이 많았었지요. 그러다 모두가 선망하는 현장 영업과로 발령을 받고 나니, 정말 180도 상황이 변했죠. 한 달 일이라는게 야근은 커녕 열흘 분량도 안되는 겁니다. 한 달에 두 번, 1박 2일로 출장가서 충청 지방을 훑고, 하루 한 시간 정도 통화하고 오더 내리고 끝.

그러니 출장 나가는 날 빼면 기껏 하루 한 시간, 많아야 두 시간 정도 일하는 셈이었죠. 그렇게 빈둥대는 것도 실은 실력이죠. 표 안나게 빈둥 대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요즘 유행어로 <안 해 봤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

그래서 전 그냥 빈둥 거리느니 그래도 주위 사람들이라도 도와 준답시고 현장도 쫓아 다니고, 은행, 세관 일로 나가는 여직원들에게 기사 노릇 해주는 등 이런 저런 소일 거리를 찾았죠. 그리고 일보고 들어오는 길에 간식도 사오고요.

아 한가지, 여러분 남자가 일을 잘하는 걸 떠나 일에 실수를 예방하는 첩경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자기와 함께 일하는 여직원들과 친하면 됩니다. 내가 깜빡하고 놓치더라도 그 걸 미리 알아서 챙겨 주는 여직원이 있다면, 아마 실수의 반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적어도 전 그런 도움을 많이 받았죠. 다 미리미리 알아서 해주니 사고 날 일이 없겠죠. 아 요놈의 수다~~ 생활의 달인 얘기 한다더니 엉뚱한 사설만... (그래도 제가 그렇게 했기에 그 후의 직장 생활에서도 편했죠)

다시 본론으로요, 제가 여직원들 기사 역을 자청하다 보니 함께 간식을 사러 가는 일이 많아졌죠. 그 때 많이 간 곳 중 하나가 바로 위에서 말한 신포동의 한 김밥집인데, 그 집은 보통 유명 맛집처럼 허름하고, 할머니가 나오는 그런 집이 아니라, 정말 현대적으로 단장한 깨끗하고 젊은 청년이 운영하는 곳이었죠. 아니 커다란 김밥집의 여러 코너중 한 코너를 그 청년이 운영하는 것이었죠.

여기서 하나 여러분 김밥의 꽃(?)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요즘엔 그 꽃만 만들어 파는 곳도 있다던데요. ㅎㅎㅎ바로 꼬다리 아닙니까? 어릴 적 소풍 갈 때 어머니가 김밥 쌀 때, 도시락엔 중간 부분 깨끗한 것만 넣고, 꼬다리는 바로 즉석에서 먹곤 했죠. 아마 많은 분들이 경험하셨을 듯...

그러다 보니 요즘 어 떻게 만들었는지 김밥 꼬다리만 만들어 파는 김밥집도 생겼다는 얘기가 tv에 나온적 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불행히도(?) 신포동 그 청년은 그 김밥의 꽃 꼬다리를 만들지 않는 겁니다. 사실 김밥 꼬다리가 뭡니까. 밥이 제대로 채워지지 않고, 시금치며, 단무지, 햄등등 속들이 삐죽 삐죽 튀어 나온, 김밥을 만들어 썰어 놓으면, 상품으로 치면 불량품 아닙니까.(실은 더 맛있죠)

그런데 그 청년이 만드는 김밥은 밥과 속을 정확한 길이로 정확하게 놓고 김밥을 말기에, 꼬다리 부분도 가운데 부분과 전혀 차이가 나지 않는 겁니다. 그 후로 지금까지 한번도 그렇게 만든 김밥을 보지 못했죠. 지저분하게 보이지 않게 하려고 그렇게 만다더군요.(그러기 위해 얼마나 많는 연습을 했을까요) 맛이요? 김밥 맛의 꽃인 꼬다리가 없어도, 저흰 늘 그 집 그 청년의 김밥을 줄서서 기다렸다가 사다 먹었죠.

군에 있을 때 제 조수로 있는 친구에게 들은 말이죠. 그 친구는 사회에서 전축의 드럼을 만드는 곳에서 일했었다 하더군요. 저는 전혀 모르는 일이지만 그 드럼을 만들 때, 평평하게 깎아야하는가 봅니다. 그런데 그 평평하게 깎는 기술, 그것은 얼마나 평평도가 높으냐가 기술의 척도인데, 기계로 깎는 것 보다 사람이 깎는 것이 더 평평도가 높다고 하더라구요. 몇십만 분의 일은 기계로 깎는데, 장인은 몇백만 분의 일로 깎는다고 하더군요.

제가 그런 얘길 저의 형님께 말하니, 형님도 그러더라구요. 모든 기계에는 열을 식히기 위해 팬이 들어가는데, 그 팬이 돌아 감에 따라 소리가 나게 된다. 그런데 그 팬 돌아가는 소리는 팬의 균형 상태에 따라 좌우 되는데, 진짜 거의 소리가 안 나는 센터가 딱 맞는 팬을 만드는게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라고요. 형님도 그 곳 단골 손님 중에 한명인데. 그 사람이 팬을 만드는 걸 보면,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팬을 가지고 만드는데 시간도 많이 걸리지 않고 망치질도 많지 않답니다. 그저 들어서 한번 쓱 보고, 몇 군데 망치로 몇 번 퉁퉁 친답니다. 그러면 바로 옆에서 그 팬이 돌아가도 소리가 안 들릴 정도의 팬으로 변한다는 거죠.

카오스란 책을 보니 이런 얘기가 나오더군요. 일본의 신일본 제철에서 철강을 만들 때 코크스를 넣는답니다. 그리고 그 양에 의해 철강의 품질이 좌우 된답니다. 그런데 그걸 장인 한 사람이 눈대중으로 한답니다. 그런데 기계화된 고로에서 나오는 철강보다 훨신 좋은 품질의 철강이 나온다고 하더군요.

음식 맛은 손 맛이라며, 뭐 그냥 대충 소금치고 참기름, 고춧가루 뿌려서 만든 그 음식이 계량컵에 1g, 2g 하며 양을 정확히 넣은 음식보다 더 맛있는 것도 바로 그런 원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실은 제가 어제 김밥을 말았습니다. 물론 저는 꼬다리를 만듭니다.  집사람이 <오늘 저녁 정석씨가 좀 해봐> 하길래 <그럼 김밥해 먹을까?> 하니 밥과 시금치만 자기가 데쳐 준다고 하더군요. (저희는 아직도 여보 당신 안하고 바로 상대 이름 부릅니다.) 

집사람이 밥 하고 시금치 데치는 동안 깻잎 손질하여 물에 잘 씻어 놓고, 단무지는 적당한 굵기로 자르고, 햄은 적당한 굵기로 잘라  살짝 굽고, 당근은 채 썰어 소금으로 간하여 볶고, 계란은 세개 정도 풀어서 역시 소금 간하여 두텁게 부치고, 한김 나간후 알맞게 잘라 놓죠.(저의 집은 사각팬을 사용하기에 저절로 사각으로 되죠) 어묵은 간장으로 양념하여 조리고 참치와 마요네즈를 섞어 비벼 놓고, 김을 살짝 구우면 준비 끝이죠.  맛살은 반조각 내고요, 흐 시금치는 집사람이 무쳐주네요. 참 약간 고드밥으로 지은 밥은  한 김 나간 후 참기름, 소금, 식초 약간 넣어 비벼주죠.

김밥용 김이 아니기에 한장 깔고, 밥이 올려질 부분에 반장을 덧 깔죠. 밥을 한 주먹 정도의 양을 떼어내 잘 펴준 후, 깻잎 두장을 편 밥 위에 깔고, 단무지와 햄을 약간 사이가 뜨게 올려 놓고, 그 사이를 준비한 참치로 채우고, 그 위에 준비한 시금치, 당근, 어묵, 계란, 맛살을 나란히 올려 놓고 말죠. 그런데 저는 김발은 사용 못하겠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손으로 말죠. 집사람이 말면 속이 한쪽으로 치우치는데, 제가 말면 가운데 쏙 들어갑니다. 잘 드는 칼로 살짝 물 한번 적신 후, 톱질 하듯 자르면 터지지 않죠. 넣는 것도 만드는 사람도 같으니 항상 똑 같은 맛이죠. 여섯 줄을 만들면 저의 식구 네 명이 먹기에 충분한 양이죠. 그리고 남은 속은 간식으로 한번 정도 더 해 먹고, 나머지는 제 볶음밥 재료가 되죠.

얘기 하다 보니 생활의 달인에서, 저의 김밥까지 왔네요. (달인하곤 거리가 먼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