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 땅 위에서 살아가며, 가장 짜증나는 것이 우리네 골이 비어서인지, 아님, 너무나 한많은 역사를 품은 민족이라, 잊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기에 <망각>이라는 것이 유전자에 박혀서인지, 너무나 어제의 일, 3초전의 일을 잊는다는 것입니다. 미국엔 가보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각종 매체를 통해서 들어보면 그곳은 기억이 너무 좋아 탈인 듯 하던데, 아고고... 어찌됐든 너무 과하면 안된다는 말이 진리이긴 한 듯 합니다.(찔리는 구석이 많네요. 제가 가장 지적을 많이 받는 말인지라)

제가 정치적인 문제가 나올 때 마다 꼭 던지는 말이 <기억력을 가다듬자>라는 말인데, 사람이 백번을 잘하다가도 한 두번 실수는 할 수 있는 일 아니겠습니까. 하니 어느 정도는 이해를 하고 넘어가 주더라도 결정적인 것이나, 또 그 잘못이 얼마나 잦느냐는 것엔 항상 염두에 두어야하는게 아닐지요.

사실 제가 정치적인 것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국민학교인지 중학교인지 다닐 때였던 것 같습니다. 국회의원 선거 전, 후보 등록을 마친 다음날, 신문에 전국의 선거구별 후보지 명단이 실린 것입니다. 그리고 노트에 그것을 기록했죠. 선거구 별로 공화당 누구, 신민당, 통일당, 무소속 누구누구로. 그리고 선거가 끝나고 다다음날 그 개표 결과가 또 신문에 나왔죠. 단단위 까지는 기록을 할 수 없어, 천 단위까지 다 기록했었죠.

당시 송원영 신민당 의원이 동대문에서 30만표 이상을 얻어 전국 최다 득표를 했고, 김광수 공화당 의원이 무주, 진안, (장수?)에서 2만여표로 당선되어 최소 득표로 의원이 됐었다고 기억합니다. 그짓 거리를 몇 번 하고, 매일 신문 기사를 보다 보니 전국의 국회의원을 거의 다 알게 되었었죠. 어쩌면 그 때부터 통계를 전공할 팔자였는지 모르겠군요.

여하튼 모든 국민들이 (저야 그게 취미이니 그헐지만) 그런 정도의 과한 기억을 하실 필요는 없겠지요. 그러나 최소한은 기억해야 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여기서 하나, 야합의 원조가 누군지 아십니까?

40대 기수론으로 김영삼이 등장했죠. 아니 그는 이미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또 최연소 원내 총무로 잘나가는 스타였죠. 그리고 당시 당을 이끌던 유진산 당총재를 비롯 고흥문, 유치송, 김재광, 신도환등등을 밀어내고 40개 기수론의 깃발로 대통령 후보가 되기 직전이었죠. 그리고 그를 뒤 이어 따라 나온 사람이 바로 김대중과 이철승이었고요.

그런데 김영삼은 1차 투표에서 과반에 약간 모자란 1등이었죠. 사실 그 후의 들리는 뒷 얘기론 당의 분열을 염려한 고흥문이 신세대 3인을 모아 약속을 시켰답니다. 2차 투표까지 안가기로. 1차에서 이긴 사람에게 결선 투표전에 모두 승복 하고 단합하겠다는 거였죠. 당시엔 정당에서 전당 대회를 하면 종로의 여관이나 여인숙을 모두 잡아서 지방에서 올라온 대의원들을 숙박하게 하였었죠. 당연히 김영삼은 자신이 대선 후보가 된걸로 알고 밤중에 수락 연설문을 가다듬고 있었다죠.

그런데 그날 밤 일이 터진 겁니다. 바로 2위 김대중과 3위 이철승의 그야말로 야합이었죠. (참 이 더러운 행태의 야합의 전통이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으니 정말 짜증납니다.) 밤새 두 사람은 이철승을 지지한 대의원들이 자고 있는 종로의 여관을 훑었죠. 다음날 그리곤 김영삼은 생각도 못한 결선 투표가 행해졌고, 마지막 밤까지 최선을 다한 김대중이 역전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었죠.

그 결과는 대선에선 김대중이 졌지만, 그는 한국의 독재에 항거하는 민주주의 세력의 대표로 세계에 공인된 셈이 되었죠. 해외로 망명 생활을 하면서, 국내에서 김영삼이 피땀으로 투쟁하며 얻은 열매를 국제적으로 인정된 대표성 하나 만으로, 손가락 하나 까딱 안하고도 동등 지분을 가져갔죠.

허긴 외국에서야 뒤에 숨은 이야기까지 관심 가질 필요가 없었을테니까요.

그런데 우리나라 국민들도 그 뒷 얘기에 관심을 버려야하는 걸까요? 어쩌면 그런 것에도 관심을 갖자라고 한다면, 너무 과하다고 할 지는 모르겠지만, 역사를 승자의 관점에서만 본다면 과연 그것이 정의라 할 수 있을까요? 허긴 그렇기 때문에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려고만 하는게 세테일지 모르겠네요.

80년의 봄에 김대중의 행태는 당시 제가 군 복무 중이라 잘 모르겠네요. 하지만 86년 서울의 봄 땐 분명히 기억하죠. 민추협을 만들고 투쟁을 한 김영삼, 단일화 하자고 목매는 김영삼을 뒤로 하고 광주에 가서 “누가 대선 후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까?” 하고 외친 김대중. 솔직히 당시엔 누가 뭐래도 ‘이번엔 김영삼’이란게 맞는 말 아니었나요? 결과는 문민 민주주의 탄생의 5년 유예였죠. 이런거 다 잊어야 하나요?

사실 제가 가끔 엄청 격할 때가 있는데,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말하는 사람들을 볼 때죠. 망각은 사람이 사는데에 건강상 꼭 필요하다고 하죠. 그러나 최소한 기억 해야 할 것은 잊지 말아야하는게 아닐까요? 저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안하는게 아니라 하다보면 살 수가 없어서 너무 기억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믿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군요. <그래도 기억합시다.>

너무 길어지니 다음에 또 계속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