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엄마를 가리키는 말은 세계적으로 ‘마’ 자가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가하면 신을 가리키는 말로는 ‘야’ ‘아’ ‘우’ 와 같이 길게 울리는 모음이 주로 쓰인다. 엄마를 가리키는 ‘마’는 가장 쉽게 소리 낼 수 있는 모음인 ‘아’를 바탕으로 하여 가장 쉽게 소리 낼 수 있는 자음인 ‘므’가 처음 조합 사용되면서 나는 소리이다. 신생아가 울거나 웃거나 옹알이를 하는 걸 넘어서 처음으로 자의식을 실어서 표출할 때 내는 소리가 ‘마’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신을 가리키는 단어는 대개 발음이 어렵고 웅장하며 길게 울리는 성향을 보인다. ‘제우스’ ‘시바’ ‘갇’ ‘듀’ ‘알라’ ‘야훼’ 그리고 우리나라의 ‘환웅’ ‘신’ 까지, 결코 만만하게 들리는 발음은 아니다. 자연적이고 쉬운 소리로 신을 표현하기보다는 인위적이며 부르기 어려운 소리를 사용하여 특별한 존재로서의 구분을 확실케 하기 위한 결정과 배려가 엿보인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부모나 신 못지않게 중요한 의미인 ‘사랑’을 가리키는 표현에도 세계적인 공통점은 존재한다. 동아시아에서는 ‘愛’ 라는 한자에서 비롯되어 중국에서는 ‘아이니’로 한국에서는 ‘애’로 일본에서는 ‘아이’로 부른다. 그 밖에 라틴어에서 비롯된 사랑은 ‘아모레’에서 시작되어 ‘아모르’와 ‘아무르’ 등으로 변화하는데, 동아시아와 서유럽이라는 지리적으로 정 반대에 위치한 나라와 민족들이 단모음 ‘아’를 사랑이라는 단어에 공통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인간의 삶의 형태는 생각보다 훨씬 다양하며 존재가치 역시 복잡하고 오묘하다. 한 인간의 생명이 전 우주 못지않게 고귀하다는 표현은 겉멋 들린 영장류들이 거만하게 짖어대는 소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인간만이 종족 보존 본능을 넘어선 사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며 아무리 낮은 곳에 처한 불행하고 불쌍한 개인이라 할지라도 사랑의 인자는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 존재가치를 측량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랑은 진리이며 새삼 중요성을 강조할 이유도 없으며 다양한 표현을 동원하여 새롭게 규정하려 노력할 필요도 없다. 누구나 생각을 할 줄 알면 사랑을 할 줄 알기 마련이다. 어느 누가 되었건 물리를 기반으로 육체에 얹혀 존재하는 이상 파괴가 부질없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중요하면서도 너무나 당연하기에 신경 쓸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데 남녀 간의 사랑 곧 ‘애정’이 사랑이라는 단어와 혼용하여 사용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애정은 사랑과 관련하여 새삼 화두를 던질 수 있는 유일한 소재이다. 애정은 유한적이며 지독한 환상이며 환멸로써 끝날 수밖에 없는 감정적 소모품이다. 닳아 없어지는 것이다. 중요한 일은 애정을 애정이라 불러야 함에도 불구하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랑’으로 부르는 데에 있다. 애정에서 시작되어 사랑으로 발전하는 것은 당연한 순리이며, 인류가 드디어 철이 들어 아무리 고귀한 사랑을 이루고 실천할 수 있다고 하여도 애정이 없으면 멸종에 이를 수밖에 없다. 애정은 가벼운 소재인 듯하면서도 접근하다보면 결코 가볍지만도 않다. 그리고 애정을 말함에 있어서 가볍게 접근하지 않는다면 문제는 계속 추가될 수밖에 없다. 이성 간의 애정은 유한하여야 하는 게 당연하며 무한했다가는 엄청난 에너지의 소모를 감당할 수가 없게 된다. 자칫하다가는 자식들이 초등학교에 진학하는 것도 못 보고 비쩍 말라서 죽어버리 게 아버지의 운명이 될 수도 있다. 부모 자식 사이에 있어서도 사랑의 중심에서 벗어난 애정이 문제가 되곤 한다. 오늘날 중동 문제도 알고 보면 아브라함 일족이 외도를 하거나 근친상간을 저지른 실수 때문에 비롯되었으며 프로이드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팔아서 유명해질 수 있었을 만큼 중대한 문제로 인정되고 있다. 또한 부모들은 깨물어서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다고 말하지만 때로는 편애를 하는 실수를 저질러 요셉의 일화를 만들어 내기도 하고, 때로는 괜히 결혼을 반대해서 자식들로 하여금 로미오와 줄리엣 콤플렉스로 몰아가기도 하는 등 애정의 부작용의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사랑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는 애정은 사랑은 사랑이되 어찌 보면 지독히도 비 사랑적이다. 애정은 아름다울 수도 있지만 어찌 보면 짜증 제대로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전 인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평균 이하의 외모를 가진 남녀에게 있어서 애정의 완성은 신기루일 뿐이며 자신들의 소박하고 빈한한 애정을 애써 태연한 체하며 선남선녀들의 사랑 못지않다고 위로하다가 지쳐버리고 말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가령 위의 예에 적합한 두 젊은 커플이 자주 모임을 갖고 네 사람이 평생 친구로 지낼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단 1프로라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독히 현실감각이 없거나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감성 기능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을 지도 모르겠다.

 비록 애정에서 와전된 사랑이기는 하지만 ‘사랑타령’은 해 볼만 한 이야기이다. 통계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외모 등급과 비슷한 외모 수준의 상대를 배우자로 얻는다고 한다. 그렇지만 누구나 심정적으로 자신의 수준 이상의 상대를 원하거나 갈망하기 마련이다. 그러다보니 외모가 충족되면 돈이 없다거나 돈이 많으면 인간미가 부족한 식의 상대적인 부조화가 발생한다. 그리고 그럼으로 인해서 세상이 복잡하게 돌아가며 희로애락이 발생한다. 또한 외모등급 9로 짝지어진 젊은 커플과 외모등급5로 짝지어진 젊은 커플이 만나 친구가 되어 자주 어울리는 일이 존재할 수 없는 게 말이 된다.

 인간사회는 규모가 커지는 만큼 안으로도 세분화되기 마련이다. 세상엔 인스턴트 음식이 넘쳐나는 만큼 인스턴트 사랑이 흔하다. 차마 거론하기조차 멋쩍은 말이지만 ‘진실한 사랑’이라는 단어의 조합은 정말이지 대단한 환상이다. 애정은 사랑으로 도달하기 위해 이어진 장도의 길목이다. 사랑은 사람으로 태어나 전 생애를 바쳐서 공부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어려운 숙제인 것이다. 그리고 사랑은 우리가 운이 좋아서 생각할 줄 아는 부류에 속하게 되고 깨달음에 이르렀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실천할 수 있을 만큼 용감하지 못하면 쟁취할 수 없는 궁극적인 ‘성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