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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력 수담만필手談漫筆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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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이야기
2009-05-03 오전 12:42 조회 4375추천 15   프린트스크랩
 

 정선, 하면 옛날부터 그저 기분이 좋고, 마음이 푸근했다.

 그곳 사람들의 인심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도시사람들처럼 반들거리지도 않았고, 아득바득 다투지도 않았으며, 찾아오는 사람은 옛 손처럼 귀하게만 대했다. 이런 사람들을 좋아하다 보니 아예 정선이 좋아진 것이다. 산도 좋고, 물도 좋고, 하늘도 좋았다.

 

 색시가 예쁘면 처가의 말뚝보고도 절한다고 했던가? 그래서인지 옛날 현직에 있을 때, 지역을 선택해 출장 갈 때에는 교통은 불편해도 정선을 택했다. 그 뿐이 아니다. 사무관(事務官) 보직을 받아 나갈 때에도 유독 정선군을 다투어 희망했다. 다른 시군과 달리 응시자들이 보직받은 자와는 경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게 정선의 일반적인 정서였다. 그래서 오다가다 지나는 출장길에 정선 땅에만 들어서면 마음이 푸근하고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이십 여 년이나 지난 얼마 전 문우들과 정선을 방문했다.

 오랜 세월로 바래버린 옛 기억들을 반추해 가면서 한 나들이는 또 다른 눈을 틔어주었다. 이번엔 자연풍광이 눈에 들어왔고, 역사가 보였으며, 주민들의 애성도 눈에 띄었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정선은 부지런하고 착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요, 가서 살고 싶은 곳이구나 싶었다. 그런데 정말 놀란 것은 자연의 아름다운 정취가 아니라 이곳 사람들의 변하지 않은 숨결에 있었다. 다 변하는 세상에, 이곳의 인심은 어찌 그대로 있을까?. 그래서 이곳에만 오면 고향에 온 듯한 푸근한 기분을 맛보는가 보다.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어쩌면 이들의 가슴속에 변하지 않고 흐르는, 정선 아리랑에 스며 있는 충정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리랑의 시작은 가락이 아니라 충정이라 했다. 그래서 세상이 다 변해도 이 충정만은 변할 수가 없었든가 보다. 아니, 변하지 않는 게 옳은지도 모른다.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 든다”며 피를 토한 칠현(정선에 은둔하며 불사 이군한 고려충신 일곱 분)들의 충정이 바로 그것이라 했다.


 그래서 정선에는 아리랑의 얼이 살아있다.

 가락에나 장단에 있지 아니하고 정서 속에 살아있다. 두고 온 임금이 그리워 부른 충정의 노래가 세월에 씻기면서, 지역민들의 그립고 고달픈 삶의 애환으로 이어져, 그들의 가슴 가슴에 소리 없이 흘러들었기 때문이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게 싸리 골 올 동백이 다 떨어진다” 고 애태운 아우라지 처녀처럼 말이다. 그래서 아리랑의 정서는 충정과 애환으로 굳어져 있다. 누구나 반가워하는 마음씨도, 뚜가리 보다 장맛이 나은 것도, 무뚝뚝은 해도 구수한 말소리까지, 이 모두가 다 아리랑의 정서 때문에 변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정선에는 인간미 넘치는 애사도 많다. 

칠현들로 하여금 시작은 되었으나 그 후 정선 인들의 애환으로 흘러들게 한 아리랑의 발상지가 그 첫째다. 우국충정의 한이 서민들의 애환으로 점차 바뀌게 된 것이, 한양 천리 길로 가는 뗏목의 출발점이 바로 이곳 아우라지였기 때문이다.

 

 유명한 실크로드의 출발점이 중국의 장안이듯이 말이다. 얼마나 많은 여인들이 멀고먼 물길에 마음을 졸였을까? 한 달이 될지 일 년이 될지 기약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게다. 정선 인들의 애환이 강물 속에 녹아 흐르는 이 아우라지는 그 이름에까지 사연과 역사가 배어있다.

 

 오대산에서 발원된 송천과, 한강 발원지(태백 검용소)에서 흘러온 골지천이 합류하여 서로 어우러지는 곳이라 하여 아우라지라 했다한다. 지금도 나룻 터 건너편 여송정에는 아우라지 처녀가 배 좀 건너 달라고 발을 구르고 서 있다.

 

 거칠현동(정선군 남면)의 역사는 가슴이 무겁다.

 조선조 초기 불사이군의 충정을 다짐하며 송도 개성으로 피신했다가, 그곳에서 다시 살아남은 일곱분이 제2의 은둔처로 이곳 정선(거칠현동)을 택했다니 말이다. 조정에 출사하던 선비들이 심심산골에 묻혀 나물 먹고 물 마시는 은둔자로서의 생활이 어찌 비통치 아니했을까?

 

 그들의 무거웠던 마음이 칠현비에 새겨져 오늘에 전해지고 있다. “일편단심, 두 나라 섬기지 않고, 수양산 고사리 캐먹으며 세상인연 끊겠다” 는 다짐도, “이 몸은 고려사람 정절선생 어디계시냐”고 불러보는 마음도, “새나라 영화에 굽히지 않고, 청풍으로 세상인연 씻겠다” 는 의지도 모두가 칠현들의 충정에서 비롯된 불같은 마음이요, 지역정서로 굳어진 의식의 뿌리다.


 이 때문인가? 정선은 참으로 살기 좋은 곳인 것 같다.

 정선(旌善)의 정(旌)자를 파자하면 人生方(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된다. 험하디 험한 산골이지만 칠현들처럼 이곳을 찾아 은둔한 역사는 있어도, 옆 동래(영월)처럼 살기 어려운 유배지로서의 역사는 없었던가 보다. 더구나 정선의 선자는 착할 선자다. 결국 정선은 착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 된다. 여기 와서 살기에 착하게 되는 것인지, 아니면 아예 착한 사람들만이 모여든 것인지는 알 길이 없으나, 어쨌든 이곳 사람들은 찾아온 외지인들을 진심으로 대하면서 자신들의 고장을 참으로 아끼고 있다.


 그래선지, 이곳엔 행정과 주민도 하나가 되어있다.

 외지인을 불러들이는 아리랑 창극과 정선5일장이 그것이다. 행정이 창극과 5일장을 만들었지만 동참한 것은 전부 주민이다. 창극의 배우부터가 농사 짓던 개똥이네 아버지요, 옥분이 네 어머니다. 나물 먹고 물 마시는 이들의 애환이 그대로 무대 위에 펼쳐진다. 꾸미는 연극이 아니고 살아있는 눈물이다. 그래서 막이 내리면 수백 여 관객은 손수건을 찾는다.

 

 서울서 내려오는 장꾼들의 안내는 또 어떤가? 바로 이 고장의 젊은 여인들이 맡아서한다. 내 고장을 위해 뭔가 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모여든 자원봉사자들이다. 끊기지 않고 흘러온 옛 칠현들의 넋이 그들의 가슴속에 소리 없이 스며든 탓일 게다.

 

 칠현들의 충정이 고장을 사랑하는 애향심이 된 것이다. 버스를 타고 돌아보는 관광안내도 고맙지만 시장 곳곳에 서서 장을 안내해주는 시장도우미도 고맙다. 눈감으면 코 베가는 세상이라 얼마나 속아 왔든가?

 

 그러나 단정한 유니폼의 도우미들은 정선의 믿음을 팔고 있다. 그래서 장도 끝나고 창극도 끝나면 헤어지는 버스는 안타깝기만 하다. 하루를 나눈, 못다 한 정리들을 서로가 아쉬워하기 때문이다. 이런 게 바로 그들의 냄새요, 정선의 힘이다. 

 

 이십 여 년 만에 한, 이번 나들이는 옛날보다 더 젊고, 더 푸근한 정선을 느끼게 한 듯 하다. 변하지 않은 인심도 보았고, 역사를 캐내는 애향심과 젊음도 보았다. 곳곳에 스며있는 색채를 찾아 새로운 그림을 그려 가는 그들의 모습에서는 열정과 희망도 보았다.

 

 어쨌거나 정선은 자연풍광도 좋았고, 아리랑의 역사와 문화도 좋았지만, 더 좋은 것은 역시 정선 사람들의 변하지 않는 구수한 그들의 인심이구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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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선공팔 |  2009-05-03 오전 1:05:5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우와!!!!! 월력님을 정선군에서 홍보대사로 임명혀두 되것네욤. *^^*  
월력 ^^^ , 제가 느낀 사실인 걸요.
youngpan |  2009-05-03 오전 6:56:4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정선..칠현의 숨결..
그리고 도우미..
호호야호..  
월력 ^^^
태평역 |  2009-05-03 오전 9:01:02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정선은 그 말자체로도 부르기쉽고, 정감이 느껴집니다.
정선을 사랑하는 마음과함께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
 
월력 고맙습니다. 정말로 그런 곳입니다.
맹물국수 |  2009-05-03 오후 4:43:1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시골의 정서와 냄새...  
월력 ^^^
팔공선달 |  2009-05-04 오후 10:51:1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늦었는데도 5등...^^

아직도 내뒤로 한자리 등수도 4명은 있네...^^
정선.. 옛말이 아닐까도 생각 합니다 .  
월력 그럴수도 있겠지요.
당근돼지 |  2009-05-06 오전 8:19:2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몇해전 아내와 함께 찾은 정선.......올챙이 국수 먹던 생각이 나네요  
월력 맞습니다. 올챙이 국수도 향토식중의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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