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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력 수담만필手談漫筆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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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외로움
2009-04-18 오전 11:17 조회 3708추천 11   프린트스크랩
 

젊었을 때의 일이다.

 직장 따라 연고 없는 도시로 전근되었을 땐, 지리(地理)도 사람도 다 설어, 일상의 불편과 혼자뿐이라는 외로움을 이기는 게 가장 큰 고통이었다. 이럴 때 찾게 되는 곳이 교회였었다.

 

 교회는 참으로 따뜻했다. 새로 왔다고 꼬치꼬치 묻지도 않았고, 돈이 없다고 눈총도 주지 않았다. 텃세도 없었고, 경계는 물론이다. 그저 하나님의 사랑이 넘쳐나는 듯했다. 모두가 아버지 어머니요, 누나고 형이며, 그리고 다정한 이웃이고 친구였다. 그들에겐 오직 하나님의 말씀 따라 사는 것이 문제였지 세상일은 그까짓 것이었다.

 

 그러니까 다른것은 신경 쓸 가치조차 없다는 것만 같았다. 모처럼 시간이 날 때는 바람도 쐴 겸 교외라도 나가보고 싶었지만 혼자 다니기 멋 적어 교회를 찾아가면 많은 교우들과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당시의 교회는 다 그런 것 같았다. 무서운 자가 와도, 더러운 자가 와도 개의치 않았던 것 같았다. 어떤 사람이 온다 해도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하게 받아 안아주는 것만 같았다. 이래서 막 옮긴 새 직장에 미쳐 정을 붙이지 못해도, 설사 객지놈이라 해서 지역이 텃세를 해도, 교회가 있고 교우들이 있으면 외롭지가 않았다. 그곳에는 나보다 먼저 이웃을 생각하는, 그야말로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전에 오랜만에 만나 점심을 먹으면서 나눈 선배 한 분의 가슴 아픈 얘기가, 외로움을 달래려고 교회를 찾았던 내 젊은 시절의 추억을 되살려 주었고, 그리고 정말로 세상이 많이도 변했구나, 했다. 

 

 학문을 벗 삼아 평생을 살아온 그가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성공의 그늘이라고 하는 사람 냄새가 그리워지더란다. 그래서 그간 소원했던 고향 동창들과 새롭게 어울려 보려고 찾아갔다가 오히려 더 큰 외로움을 느끼고 돌아왔다는 그의 쓸쓸한 독백이 나를 쓸쓸하게 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짙은 인연으로 주저 없이 가까워 질 수 있는 동창들이었기에, 서로 마음을 나누며 살아가자고 모인 오래된 친목모임이었단다. 단지 자기는 그간 직장이 바빠서 쭉 참석치 못하다가 퇴직 후에야 참석하게 되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꾸밈이 없고 따뜻하기만 했던 어릴 적의 모습들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단다. 

 

 얼마 되지 않은 삶을 남겨놓은 지금도, 비우지도, 버리지도 못한 체, 주름 속에 감추어 놓은 그들의 모습은, 친구 사이에서도 너보다는 나였고 명분보다는 실리였으며, 나이다운 고상함 보다는 물질에 대한 욕망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더란다. 

 

 은퇴한 나이가 되면 오히려 움켜지고만 있던 손을 조금씩 펴 나갈 때가 아닌가 싶기도 했고, 그야말로 마음을 비우면서 영혼의 구원을 생각할 때가 아닐까 싶은데도, 시간이 흐를수록, 그리고 가까이 다가설수록 그들의 속내가 멀게만 느껴지는 그런 동창들이었단다. 

 

 요령 있는 처신으로 적당히 어울리며 뭔가 실리만을 챙기는 그런 포장된 노인의 모습을 본다면, 누구나가 그랬겠지만, 특히 선비 같이 순진한 선배에게는 더 큰 외로움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을 것만 같았다. 다른 세상에 혼자 버려진, 외롭고 무서운 그런 기분이었단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른 체 친구들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만을 가슴에 안고 사는 쪽이 더 행복했을 것이라고 쓸쓸히 술회하는 이 선배의 독백에서는 미묘한 감정이나 쓸쓸한 공감보다는 나를 먼저 돌아보게 했다. 이런 게 정말 세상 탓인가 싶었고, 나는 과연 어떠했는가, 싶었다.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사람이 변했다 해도 너무했다는 안타까움을 떨칠 수가 없었다. 하나님의 사랑이나 부처님의 자비를 찾기 이전에, 그저 인간적인 의무만 생각해보아도 무엇이 정답인지를 알 것만 같아서였다.

 

 인간은 서로 어울려 살아야하는 운명을 타고 난 자연의 한 존재일 뿐이기에 처세로 포장된 이기주의는 타고난 운명조차 거부하는 짓이 되고 만다. 자연의 일부가 자연의 섭리를 거역하는 꼴이다. 이 때에는 외로움을 느끼는 대상이 아니라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하는 대상일 뿐이다. 

 

 친구가 그리워 찾아갔다가 뜻밖에 더 큰 외로움을 느꼈다는 선배의 얘기에 내가 뭔가 움찔해지면서 죄책감 같은걸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 지난 날, 기억조차 흐린 옛 친구가 나를 찾아왔을 때, 나는 그 친구를 어떻게 대했는지, 도무지 기억도 자신도 없기 때문이다.

 

 오래전 나를 찾아왔던 그 친구역시 모진 세파 때문에 사람 냄새가 그립고, 우정이 그리워 나를 찾아왔지는 않았는지, 그때 나는  또 다른 외로움을 안겨주는 내가 되어 있었지는 또 않았는지 그저 두렵기만 하다.

 

 나 역시 철저하게 남의 도움으로 살아가면서도, 별로 쥔 것도 없는 손조차 놓지 못하는 한심한 내 모습이 정말로 부끄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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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뀐지 |  2009-04-18 오후 12:42:0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고향친구는 장가 가면 다 변합니다. ^^  
월력 ^^^
달선공팔 |  2009-04-18 오후 9:42:57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차라리, 아무것도 모른 체 친구들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만을 가슴에 안고 사는 쪽이 더 행복했을 것이라고 쓸쓸히 술회하는 이 선배의 독백에서는...>

으음...  
월력 ^^^
예뜨랑 |  2009-04-19 오전 10:14:0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믿음이 있다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모든것을 초월할수 있으니까요
 
월력 네 그렀습니다. 신앙생활을 하시나 보죠?
youngpan |  2009-04-19 오후 4:45:3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혼자서 살아가는 것 같지만 결코 혼자는 아니어서..
세월따라 덕만 쌓이는 것이 아니라 독도 함께 쌓이니..
요즘처럼 이기주의가 만연한 세상에서는 어쩜 당연할지도..
오로나작은 그렇지 않더구만요..용마님도 70이십니다..  
월력 용마님의 춘추가 높으시네요. 아직은 잘 모릅니다만, 믿음만 옳다면 이승의 어떤가치라도 다 초월 할 수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李家完生 |  2009-04-19 오후 5:33:2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얼마전 조카들과 산행후 들린 서면 기원에서 30년전 업무로 알았던 분을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댕기고 (그놈의 기억력땜에).. 자기 윗사람 누구 누구 안부를 물으니 약간 경계를 하는듯해서...결국 소주 한잔 대접하려다 말았습니다.
저 역시 좀 씁쓸했던 기억이 있습니다만 님의 선배님 친구분들도 이해가 갑니다.
선배님 보시기앤 친구들이 많이 변했고 물질에 집착한다고 보였겠지만 세월과 현실땜에 그럴수 밖에 없었다  
李家完生 |  2009-04-19 오후 5:54:32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고 이해가 됩니다. 너무 오랫만에 참석하다보니 하루 아침에 그들의 가슴에 파고들지 못하고 외로움을 느끼는건 어쩌면 당연하다고 보여집니다. 선배님의 안타까운 마음 이해가 되면서 지금부터라도 자주 만나고 베푸시면 옛정을 어느정도 찾을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월력 네, 그랬겠습니다. 선배님 역시 이해는 할 수있었지만 마음이 그리 편치 않드랍니다. 귀한 충고 정말 감사합니다.
당근돼지 |  2009-04-25 오전 3:48:2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잘 보고 갑니다........  
월력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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