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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력 수담만필手談漫筆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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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다는 독백
2009-04-13 오후 9:24 조회 3648추천 9   프린트스크랩
 

 현직에 있을 때의 일이었다.

 막 퇴직한 상사나 선배들의 안부가 궁금하여 만날 때마다 물어보면 한결같이 바쁘다고 한다. 의아해 하면서도 참으로 다행하구나 했다. 퇴직한 분들의 가장 큰 고통이 바로 할 일을 일어버린 일이고, 그리고 그 남아도는 시간을 뭔가로 메워나가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몇 년의 세월이 또 흘러 이번엔 내가 선배의 입장에 서게 되었고 또 퇴직도 했다. 업무 분장에 따라 날과 달과 해를 채우며 평생을 일해온 길고 긴 시간, 앞으로도 쉼 없이 흘러왔다가 가버릴 그 시간들을 어떻게 메울까 심히 걱정스러웠으나, 퇴직 후엔 의외로 바쁘기만 했다.

 

 이제는 바쁘다고 하는 나를 보고 거꾸로 저쪽에서 고개짓을 하고 있다. 긴가 민가 하는 고개짓은, 할 일이 분명 없는데 이해가 안 된다는 뜻이고, 바쁘다는 쪽은 만나고, 먹고, 얘기하고 놀다보면 하루해가 짧다는 얘기다.

 

 산엘 가도 하루가 가고, 책이 있는 찻집엘 가도 하루가 간다. 바둑을 두어도 하루가 가고 골프를 쳐도 하루가 간다. 한술 더 떠서 소위 똥집이 맞다는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면 밤샘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시간 맞혀 출근할 일도, 언제까지 꼭 해야 할 일도 없기 때문이다.

 

 퇴직한 자가 가진 것이라곤 시간과 돈뿐이란 말도 그래서 생겨났나 보다. 그런데 일주일이 전보다 더 빠르게 돌기는 하나 그리 기쁘지가 않다. 잡히지는 않지만 뭔가 허전하다. 그래서 이런 게 사는 건가하고 곰곰이 정리해보면 허무감만 밀려 올 뿐이다.

 

 여기에 자신도 모르게 노쇠해진 체력을 잊고 무리하면, 피로가 겹쳐 자리에 눕기까지 한다.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게 이를 두고 한 말인가 싶다. 더 무겁고 답답하기만 하다. 무엇 때문일까?

 

 하루해가 짧다는 말은 착각이었고, 일없이 바쁘다는 것은 숨기고 싶은 부끄러움 때문은 아니었는지 모를 일이다. 바쁘다는 것은 일을 두고 하는 얘기이고, 일이란 의미가 있어야 일이라고 할 수있는데, 그런 일이 없다면 바쁠 이유가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에 바쁠 땐 피곤하기는 하나 기쁘고 뿌듯했다. 보람 때문이다. 바쁠 땐 몸은 혹사당해도 정신은 만만했다. 자고 나면 심신도 가뿐했고 마음은 하늘을 날았다.

 

 아무리 힘들어도 사는 맛을 느끼며 살았고, 박봉을 이긴 힘도 그런데서 비롯된 듯했다. 그런데 그 때에는 살아가는 일에는 무엇보다 의미가 중요한 것도 몰랐고, 의미가 없는 일은 바쁘다는 범주에조차 들 수 없다 것도 알지를 못했다. 

 

 그런데도 나는 지금도 얼마 남지 않은 시간마저 까맣게 잊어버린 채 “어떻게 즐겁게 살 수 있을까?” 하고 시간 죽일 일만 생각하며 산다.

 

 정말이지 퇴직 후야말로 내가 살아온 일생 중 잘못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줄도 모르고, 지금도 누가 물어오면 텅 빈 자신을 포장하기에만 바쁘다. 이젠 만성이 되어 바쁘다는 말에 부끄러움이 묻어있는 줄도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정말 부끄러운 것은 ‘먹고 노는 일을 바쁘다고 보는 착각이 아니라 이렇게 세월만 죽이는 일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타성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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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프라테 |  2009-04-13 오후 9:56:1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이런 저런 약속들로 .. 단순히 여유있는 시간이 없다는 것은 ..진정 바쁜것이 아님을...

엉덩이 붙일 틈없이 하루가 훌쩍 지나가도 마음이 허한것임을.. 공감공감..ㅎㅎ


 
월력 ^^^
달선공팔 |  2009-04-13 오후 10:26:2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이젠 만성이 되어 바쁘다는 말에 부끄러움이 묻어있는 줄도 느끼지 못한다.>

으음...
 
월력 ^^^
달선공팔 *^^*
은선도 |  2009-04-13 오후 10:31:3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몸은 바쁘더라도 마음만은 여유롭게 삽시다. 일에 바쁘든 놀기에 바쁘든 그건 나의 본모습이 아닐지도 모르죠. 내가 바쁠때 조용히 곁에서 지켜보는 자가 진짜 나인지도...  
월력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나무등지고 |  2009-04-13 오후 11:36:4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저의 앞날의 가르침입니다  
월력 도움이 된다면 다행한 일입니다.
youngpan |  2009-04-14 오전 1:17:1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퇴직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저도 사실은 세상일을 던져버리고 훌훌 날아왔지만 아직은 철도 안 들고 선머슴같이 세월을 보내고 있는 형편입니다. 다들 도를 닦는다는 것이 성인이 되기 위함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이 만만치 않습니다. 님께서도 도전해 보셔요..나이는 숫자인만큼요..지화자~하면서..바닥을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만..저도 세상살이에서는 몰랐지만..산으로 들어가서는 정말 바닥이 뭔지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youngpan 아직도 헤메기는 하지만 모든 원인이 스스로에게 있다는 것은 감지가 됩니다. 님에게는 선생님의 책이 나오면 한번 권하고 싶습니다. 곧 출간될 예정입니다.
월력 감사합니다. 우리가 정말 목숨걸고, 그것도 빨리 찾아야 할 것이 인생에 이미 주어진 목적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하수무명 |  2009-04-14 오후 4:39:3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휴가중이라 간만에 님의글을 의미있게 읽어보았습니다.퇴직을 얼마앞둔 저로서는 내일의 저를 보는것같았습니다 참으로 유익한글입니다  
월력 감사합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선비만석 |  2009-04-14 오후 6:57:2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에혀 위의 하수무명님이나 제 모습을 대변하신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네요...퇴직후에 할일이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지만....딱히 할일이 없으니.....걱정입니다.  
월력 ^^^
기원2급2 |  2009-04-15 오후 5:25:3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아...무지하게 죄송한 말씀인데요 저만 그런가 월력님 얼굴 볼때마다 느끼는건데요
이런말해서 혹시 기분 나쁘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있긴한데 도저히 궁금해서 안되겠음
혹시 탈랜트 임채무씨랑 뭔 연관이 있으세요 너무 닮으셧어요 ㅠ..ㅠ 얼뚱한 질문 드려 죄송 죄송  
월력 ^^^ 전혀 연관이 없습니다만, 옛날 그런소리 좀 들었습니다. 그런 훌륭한 분과 비교해 주셔서 오히려 영광입니다. 기분 나쁜일 아니니 걱정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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