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가네"
바삐 기원문을 나서는 양반에게 뒷켠의 남은 두 노인은 말한다.
두 노인의 잃은 돈은 더 많은가본데 딴이는 3만원 땃다며 기료를 내라는 것도 못 들은척하고 나간 것이다.
저 양반은 이동네 제일좋은 F아파트에 살고 재산도 많아 해외에도 자주 다녀오는 양반인데 돈에 대해서는 모두 같은가보다.
바둑실력도 인터넷3단 이라는 그는 약하기 짝이없어 두면 노상 잃는다. 그래서 바둑보다 포커로 소일하나 보다.
저쪽 구석의 포커판도 끝났나보다. 모두 일어서며 흩어지다 다시 누군가가 오딱을 하지 하자 여럿이 다시 테이블에 앉는다. 막 바둑을 끝낸 정원장도 "8시니 10시 까지만 할까" 하며 앉는다. 바둑보다는 노름이 더 재미있는가보다. 바둑은 칫수가 있어 하수들은 불리하고 노력을 오랜 해도 늘지를 않는데 노름은 운이 좋으면 딸 수 있는것이어서 일까? 노름도 고수 하수가 있다고들 예기는 들었다.
퇴근 후 모처럼 들른 기원에서 모두들 반긴다. "삼성이 인기는 좋은가 봐" 박사범도 한마디 인사를 건넨다.
관전차 옆에 앉자마자 꾸벅거리며 존다. 앞에 앉아 관전을 하던 가락시장 상인도 꾸벅꾸벅 졸고있다. "두 분이 꾸벅거리며 서로 절을 하고있네" 서서 관전을 하던이들은 웃고있다.
한 수 한 수에 정성을 다 하느라 장고를 하는것을 옆에서 지켜보노라니 왜 저렇게 오래끌며 장고를 하나 싶다. 저게 무슨 재미일까? 돈이 걸린것이니 돈을 잃지않기 위해서이지. 알면서도 나 역시 그리 오래 최선을 다 해 잃지 않으려고 노력을 했었으면서도 요즘은 직장일이 바쁘고 몸이 피곤하니 바둑보다 시간이 되면 쉬는것이 앞선다. 한참을 꾸벅거리고 졸고나니 조금 힘이 솟는듯 하다.
머리고기에 김치, 홍어회, 막걸리, 소주 등으로 다 같이 한 잔 할 수 있게 준비를 해서 한 턱을 내야 할 텐데 아직 첫 월급도 타지를 못 했으니 마음 뿐이다. 기나긴 인고의 시절 도움과 격려를 해 주신 분들이 이곳 기원의 식구들 아닌가.
며칠전 밤늦게 오피스텔로 들어가는데 입구에 서 있던 보쌈집 오토바이 배달을 하는 신프로가 나를 보더니 박수를 친다. "일을 나가신다며" "잘 됏네요" 관리비를 못내 전기를 끊는다는 소리에 신프로에게 빌려 막은적이 있은 후 오랬동안 갚지를 못하고 있었는데 갚으라 말 한마디 없던 신프로는 이제 나의 복직소식에 더 반가워하며 축하를 한다. 배운것 없고 가진것 없어 보쌈배달을 해도 정과 의리를 가지고 있는 바둑인들. 그 분들과 사무실에서 가락시장 낙지를 사다가 삶아 소주추렴을 하던 기억이 난다. 다시 한 번 그런 기회를 만들어야지.
기원은 바둑 두는 이들도 별로 없이 노름판들만 벌이고 썰렁하다. 다들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 평소 2만원하던 판내기도 잘 이루어 지지 않는다. 한 번 이기면 이겼다고 빠지고 지면 졌다고 물러서니 판이 잘 안 이루어진다. 이렇게 손님이 많고 오래된 단골뿐인 기원조차 사정이 이러니 기원들의 생존이 쉽지는 않겠다.
선배 원장은 반가운 내색이면서도 말씀은 없으시다. 말없이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이 마하가섭의 염화시중의 미소이겠지. 편안한 마음으로 잠시 앉아 졸며 바둑을 두지 않아도 편안한 이곳! 기원이기보다는 내게는 영국인들이 퇴근 후 들린다는 Pub 처럼 싸롱이자 사랑방이겠지.
수입상 박사장과 룸사롱 유사장은 개인전을 한다. 감리단 김사장과 부자 전사범도 술내기 개인전이다.
편바둑에 돈을 잃기 보다는 친소에 따라 막걸리라도 한 잔 하려는 절약하려는 마음들일까?
다같이 어울려 편바둑 후 다같이 노래방도 가던 호시절은 돌아오지 않으려는지.
변해가는 기원 풍속도 앞에서도 기원에 첫 출입하던 중2시절 이래의 옛모습을 반추하고 싶은것은 나만의 욕심일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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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팔공선달
달선공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