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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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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후
2009-01-24 오후 9:50 조회 4265추천 18   프린트스크랩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로 가득 메워진 지하철 안은, 살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추위와는 대조적으로 후덥지근 했다. 가끔씩 소곤거리는 소리와 기침소리가 들려왔지만 대체적으로 고요한 편이었고, 오히려 거대한 전동차가 내는 익숙한 소음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의 코앞에 있는 창문은 출입문에 달려있는 것으로 지금은 어두운 터널을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색채가 흐릿할 뿐 그의 넓은 이마, 약간 처진 눈매와 보통보다 약간 크면서도 뭉툭한 코, 그리고 얼굴 오른쪽 라인을 따라 희미하게 보이는 흉터자국까지 또렷이 비춰주고 있는 것이었다. 그 흉터자국은 한 5년 전쯤에 일어난 교통사고의 잔해로 그에게 얼굴의 흉터는 물론 전혀 다른 몸매를 갖게 만든 사건이었다. 원래 운동을 좋아하여 탁구, 테니스, 수영 등 많은 스포츠를 즐겼지만 교통사고 이후 몸이 급격히 약해지는 바람에 운동을 못하게 되었고, 어느새 늘어난 체중들로 언뜻 보면 삶에 지친 40대 중반의 모습을 하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아직 서른여덟, 30대 후반이었다. 분명 매일 보는 얼굴 그대로였지만, 한창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감상에 젖어있던 그에게는 불쑥 늙어버린 듯한 그 모습이 꽤나 낯설게 느껴졌다. 문득 갑자기 환해진 창 밖을 보니 지하철이 역 안으로 서서히 들어서고 있었다.

 

이렇게 빨리 도착하는 걸 보니 지하철도 때로는 탈만 하군, 주차 걱정도 없고 기름값도 안 드니 말이야.

그가 내릴 역이라는 것을 생각하자 벌써 도착했다는 생각에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저기요, 안 내리실 거면 조금 비켜주시겠어요?

그의 뒤에서 약간의 짜증이 섞인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출입문이 열리지도 않은 데다 그도 내릴 것이었기 때문에 대꾸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어쩐지 생기는 호기심에 뒤를 돌아보니 짙은 화장에 커다란 귀고리를 하고 머리는 자연스러운 웨이브로 잔뜩 멋을 낸 젊은 여자가 만사가 귀찮다는 표정으로 딱딱하게 서있었다.

 

아직 문도 안 열렸는데 조금만 기다려요, 나도 이번에 내리거든요.

겉모습만 아름다운 그녀에게 여유로움을 가르쳐 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였을까, 그는 평소보다 유난히 느긋한 마음으로 느릿느릿 말했다.

 

문은 왜 이렇게 안 열리는 거야!

그의 대답을 들은 여자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그녀의 말투는 듣는 사람마저 기분이 안 좋아지게 만드는 이상한 힘이 있었지만 그에게는 오히려 예민했던 한 친구를 떠올리게 만들어 그를 깊은 추억에 빠지게 만들었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그는 여유로운 만큼 느긋한 걸음걸이로 출구를 향해 나아갔다.

 

 

바깥으로 나오자, 아니나 다를까 매서운 추위가 그의 옷 속을 파고들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코트 끝자락을 단단히 여미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새로 들어선 커다란 가게들과 세련된 전광판 등이 그의 눈을 어지럽혔지만 잠자코 서서 침착하게 둘러보니 큰 건물들의 윤곽이 어렴풋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래, 이쪽이야, 이쪽으로 가면 있을 거야.

한번 방향을 되찾자 그는 빠른 걸음으로 나아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허름한 기원으로 통하는 입구 앞에서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을 수 있었다. 20년 만에 다시 찾아온 만큼 혹시 그 기원이 없어지지는 않았을까 무척 걱정했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어서 오세요.

기원 문을 열고 들어서니 자욱한 담배연기와 함께 원장으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바둑을 두고 있던 손님들도 원장의 인사에 일제히 그를 바라보았다. 잠시 불편한 침묵이 흐르자 그는 어색한 몸짓으로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가벼운 목례를 해 보였고 사람들은 다시 각자의 바둑으로 주의를 돌렸다. 아담한 홀에 4명이 바둑을 둘 수 있는 테이블이 8, 커피를 뽑아 마실 수 있는 자판기와 음료수가 가득 찬 냉장고, 바둑 잡지들과 잡다한 책들이 꽂혀있는 책장……자세히 보면 모든 것이 달라졌지만, 또 어떻게 보면 전체적인 분위기가 예전 그대로였다. 다만 원장은 언제 바뀌었는지 바뀐 것이 분명했고, 손님들도 모두 낯선 사람들이었다. 문득 한쪽 구석을 보니 기다란 책상 위에 데스크탑 컴퓨터가 2대 놓여져 있었는데 2개 모두 오로의 바둑 대국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 오로에서 대국을 하시나 보군요.

그가 반가운 마음에 컴퓨터 쪽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 기원에 상대가 없을 땐 온라인 대국이 딱이죠, 선생님도 온라인 대국 해보셨죠?

작은 키에 마른 체구를 가진 원장은 누가 보아도 그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지만 새로 온 손님을 접대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본래 성격인지 정중하고도 친절한 말투로 대꾸했다.

 

하다마다요, 실은 오로에서 직책을 하나 맡고 있어요.

 

, 그러셨군요. 그럼 분명 보통 기력은 아니겠지요.

 

그저 뭐 1급 정도는 될 겁니다. 다른 분들은 이미 대국 중이신 것 같고……저기 구석자리에서 신문 읽고 있는 저 분하고 한수 해보면 어떨까요.

 

저분도 오늘 처음 오셔서 제가 기력을 잘 모르는데……우선 그럼 이리 오시죠.

가까이 다가가니 날카로운 눈과 날렵한 콧날에 시원스런 입이 돋보이는 꽤나 잘생긴 남자가 신문을 내리며 경계의 눈빛으로 그들을 힐끔 쳐다보았다. 약간은 마른 듯한 몸에 운동으로 다져진 남자다움이 스며있었지만 눈가에 어렴풋이 보이는 잔주름은 그가 어느 정도 나이를 먹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 손님, 여기 이 선생님하고 한수 하시겠습니까?

원장의 질문에 잠시 신문을 내려놓은 그는 왜소한 체구의 원장 뒤에 우두커니 서있던 상대를 빤히 쳐다보다가 다시 신문을 집어 들며 심드렁한 표정으로 관심 없습니다. 라고 말했다.

너무도 무성의한 태도에 살짝 당황한 원장이 움찔 하였으나 이내 평정을 되찾은 듯 뒤에 서있던 남자에게 돌아서며 난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자 그는 원장을 안심시키려는 듯 이제 제가 알아서 하죠. 원장님은 하시던 일을 마저 하시는 게 좋겠어요. 라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결국 원장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고, 대국 신청을 거절당한 남자는 아랑곳 하지 않고 날카로운 눈매의 사나이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얼굴은 거의 변하지 않았군……예민했던 성격도 그닥 무뎌진 것 같지 않고.

그는 당장이라도 친구의 손을 잡고 살가운 인사를 건네고 싶었지만,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재미있어 그가 모르는 채로 바둑을 한번 두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문을 읽던 남자는 그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처음엔 자신과 바둑을 두려는 남자를 못 본체 하였지만 이내 무언가 불쾌한 기사를 읽었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신문을 던지듯 내려놓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남자에게 화풀이를 하듯 말했다.

 

거기 그렇게 앉아계셔도 소용없을 겁니다, 전 친구를 기다리고 있어요.

 

친구가 늦는가 보군요.
은근히 상대의 비위를 거스르는 빈정대는 말투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의 그 느릿한 말투로 아무렇지 않은 듯 대화를 이어갔다. 그러자 잔뜩 경계의 빛을 띄우던 그도 조금은 편해졌는지 한결 부드러워진 말투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런 얘기 믿지 않겠지만, 전 지금 20년 전에 헤어진 친구와의 약속 때문에 이 곳에 왔죠. 사실 잊어버렸을 것이 분명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정말 영화 같은 이야기네요. 20년 전의 약속이라.

친구를 속이는 것은 괴로운 일이겠지만, 어릴 적 개구쟁이 같은 마음이 올라왔는

지 그는 이제 이런 대화를 은근히 즐기고 있었다.

 

저와 그 친구는 정말 둘도 없는 사이였거든요, 이 기원에서 같이 바둑을 공부했죠. 20년 전, 그러니까 우리가 열여덟 살 때 그 친구가 느닷없이 프로기사가 되는 것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아직도 잘 지내고 있었을 겁니다.

 

왜 포기한다고 하던가요?

 

자신이 없었던 거겠죠. 열심히 노력은 했지만 남을 넘어서는 뛰어난 재능이 부족했거든요, 결국 그 친구는 20년 후 이 기원에서 만나 다시 바둑을 둬보자는 말만 남긴 채 떠나버렸어요. 누구보다 열심이니까 늦게 시작했어도 분명 성공했을 겁니다.

 

지금 얘기하시는 분도, 보아하니 프로기사는 못 된 것 같소만, 꽤 성공하신 것으로 보이는군요.

그도 그럴 것이 패션이라고는 청바지와 편안한 셔츠가 전부였던 친구가 이제는 웬만한 사람들은 알아볼 법한 유명 브랜드 옷에 은빛으로 반짝이는 시계 등 상당한 멋쟁이가 되어 있었고, 그것은 또한 경제적으로 부유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입단이라는 게 참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더군요, 하지만 요즘은 프로기사들 부럽지 않게 돈벌이를 하고 있으니 뭐 먹고 살만은 하죠.

 

어떤 일을 하십니까?

 

특기라고는 바둑밖에 없으니 그냥 바둑으로 이런 저런 일을 하고 있죠. 아까 얼핏 들으니 오로에서 일하신다고요?

 

, 저도 바둑관련 일을 하고 있으니 결국 같은 직종에 있는 셈이군요. 어떻습니까, 친구분은 언제 올지 모르니 그 전까지라도 바둑 한수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정 그러시다면 한번 걸어보시죠. 전 내기 아니면 둘 맛이 나질 않아서……”

 

기본 만원에 집당 천원 정도로 해볼까요……”

오로에서 일한다는 사나이의 대범한 제안에 모든 사람들의 눈길이 두 남자의 대화로 집중되었다. 10집 차이만 벌어져도 2만원, 동네기원에서 재미 삼아 두는 내기바둑으로는 제법 큰 액수였던 것이다. 한편 날카로운 눈의 사나이는 선한 인상에 후덕한 몸매, 그리고 오로에서 일한다고 하지만 잘 둬야 아마 5단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가 화끈하게 내기바둑을 제안하자 기분이 좋아졌는지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띄며 어느새 흑통을 자신의 앞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돌을 쥐시죠.

돌을 가린 결과 오로 사나이가 백, 친구를 기다리는 남자가 흑이었다.

예사롭지 않은 대국의 시작으로 좁은 기원 안은 크게 술렁이는 분위기였고 사람들은 호기심을 못 이기고 한 명, 두 명 그들의 주위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두 대국자가 뿜어내는 묘한 긴장감이 모두를 압도하고, 사람들은 숨소리마저 죽이며 함께 바둑판을 응시했다.

초반은 비교적 빠르게 진행되었다. 흑을 쥔 남자가 준비했다는 듯 경쾌한 손놀림으로 복잡한 모양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백을 쥔 오로의 사나이는, 상대가 자연스럽게 전투로 이끈다는 것을 눈치채고 끌려가지 않기 위해 고심을 거듭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간단하게 처리하려고 하면 할수록 바둑은 더욱 꼬이기만 할 뿐, 정리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이상했다.그가 기억하는 한 그의 친구는 전투에 강하긴 했어도 두텁게 기다리고는 했다. 물론 20년이 흐른 지금 기풍이 바뀐 것은 아무렇지 않았다. 다만 그의 새로운 스타일이 너무도 익숙했던 것이다. 어디선가 그 바둑을 경험해본 적이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럴 리가 없는데……대체 내가 어디서 이런 바둑을 느꼈던 거지.

그는 바둑에 집중해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가슴에 남아 그를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바둑이 중반으로 들어가고 승부처에 접어들면서 어느새 다른 생각들은 모두 날아가버리고 오로지 반상에만 몰입하게 되었다. 운이 좋게도 그는 중앙의 불리했던 전투를 깔끔한 바꿔치기로 정리할 수 있었고, 형세는 약간 불리하나마 큰 차이는 나지 않는 듯 보였다.

이 정도면 만족스러웠다. 게다가 그는 나름대로 형세판단과 끝내기에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한편 자신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상대는 승부에 초월했다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수읽기에만 여념이 없었다. 사실 자신이 이만큼 버텨내고 있긴 했지만 그의 정곡을 찌르는 행마 하나하나로 그가 대단한 실력자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누군가 컴퓨터를 하다가 기지개를 펴며 한마디를 날린 것은.

, 요즘에는 검은고양이가 안 보이니 오로도 재미가 없네.

 

......!

그때 그의 머릿속에 한줄기 빛이 번개같이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상대의 이마가 살짝 찌그러지는 것을 목격했다. 한 찰나였지만, 그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본 것이었다. 검은고양이는 오로에서 활약하는 손꼽히는 강자였는데 자신의 실력과 명성을 이용해 온갖 사기와 내기바둑, 불법 거래 등으로 사이버 바둑계 암흑 세력의 전설과도 같은 인물이었다. 그는 분명 검은고양이가 프로기사나 아마추어 강자일 것이라 생각하고 그의 바둑을 숱한 기사와 대조해 보았었다. 하지만 뜬구름 잡기도 이만한 것이 없어 단서조차 잡히지 않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와 대국을 하는 이 사내가, 그 검은고양이가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그의 마음에 확신이 들자 자신도 모르게 옅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구경을 하던 사람들은 바둑이 어려워 그런다는 생각으로 아무도 이상한 낌새를 채지 못했지만 그와 바둑을 두고 있던 남자만큼은 상대의 심경변화를 인식하고 있었다.

 

잠시 화장실 좀……”

아무리 애를 써도 바둑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심란한 마음도 감출 길이 없어 그는 일단 이 상황을 빠져 나오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 화장실 앞에 자리한 계단 쪽 통로에 가서 창문을 열었다. 찬바람이 그의 이마를 휙 쓸고 지나가자 지끈지끈 아파오던 머리가 한결 나아지는 것 같았다.

 

20년 만에 힘들게 되찾은 친구다. 그를 잃고 싶지는 않아……하지만 회사를 생각한다면 그에게 법적인 책임을 물어야겠지. 이대로 모른 척 해버릴까? 그렇다고 언제까지 덮어둘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검은고양이가 계속 활동하는 한 나는 그를 찾아야만 하는 것이다.

온통 그의 머릿속을 뒤덮고 있던 바둑의 승부는 이미 자취도 없이 그를 떠난 지 오래였다. 지금 그에게는 2가지의 선택이 있는 것으로 보였는데, 하나는 동료를 불러서 검은고양이의 존재를 알리고 뒤처리를 맡기는 것과 또 하나는 친구의 잘못을 덮어주고 이대로 지나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관계가 계속되는 한 예전의 우정을 되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한참 고민에 빠져있을 때, 문득 지금 친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기원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빨리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그래, 아무리 경기가 어려워도 내가 다닐만한 직장이 다른 곳에도 한 군데쯤은 있겠지. 하지만 이 친구는 20년을 기다려 찾은 친구가 아닌가. 난 친구를 보호하겠어.

그가 기나긴 고민을 마치고 한결 비장해진 표정으로 기원에 다시 들어왔을 때, 바둑을 구경하느라 조용하던 사람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하며 어수선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챈 그가 급히 바둑을 두던 자리로 가보니 상대는 온데간데 없고 자신의 돌통 위에 대충 접은 듯한 쪽지만 하나 남겨져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쪽지를 펼쳐 보니 급하게 날려 썼지만 익숙한 필체가 눈에 들어왔다.

 

-         너 정말 많이 변했어, 감쪽같이 속을 뻔 했으니, 그래도 수읽기 할 때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을 까딱대고 계가할 때 눈을 깜빡이는 버릇은 여전하더군. 실력이 전혀 녹슬지 않은 걸 보고 정말 놀랐어. 틈틈이 바둑공부를 했나 보지? 나도 정말 이렇게 되고 싶지는 않았어. 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얼떨결에 시작한 일이 그렇게 되어버렸지. 네가 일하는 곳이라는 걸 알았더라면 그렇게 까지 일이 커지도록 만들지는 않았을 거야. 만나서 반가웠어. 우리, 20년 후에 다시 보자고  -

 

잠시 후, 친구의 필체가 담긴 너저분한 메모지 위로 작은 물방울이 하나 뚝 떨어졌다. 그리고 남자는 속으로 되뇌는 것이었다. 그까짓 20, 더 기다려 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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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pan |  2009-01-24 오후 10:17:52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솔솔..소설 냄새..아님..실화?..  
거문고자리 안녕하세요~! 오헨리의 단편소설을 패러디한 소설이에요^^
박쥐 |  2009-01-24 오후 11:55:02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오헨리의 20년후를 기가막히게 어레인지를 했군요
머찝니다,, 훌륭해요
잘읽었씁니다,,  
거문고자리 칭찬 감사합니다~ ^_^
바르스 |  2009-01-25 오전 1:24:02  [동감1]  이 의견에 한마디
검은고양이~대화명 멋지네요^^실제 쓰시는분이 궁금하군요ㅋㅋ
원작소설 읽어봐야겠네요...^^;;  
거문고자리 아, 혹시 실제로 쓰시는 분이 보시고 기분 나빠 하시지는 않을까 걱정이네요..미처 그 생각은..^^; 오헨리 단편들은 짧은 이야기로 큰 감동을 주죠~ 꼭 한번 읽어보세요 ^-^
바르스 실제 쓰시는분도 좋아할꺼라 생각합니다..유사 대화명이 생길까 걱정이네요^^:
당근돼지 |  2009-01-25 오전 7:47:1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20년후의 내모습은 어떻게 변할까?......생각해 보고 갑니다.  
거문고자리 20년 후라....참 실감이 안 나는 긴 세월이에요ㅎ
달선공팔 |  2009-01-25 오전 9:40:3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단숨에 읽엇네요.^^

잼있었습니다. (...^.^...)  
거문고자리 감사합니다~ ^-^
반상의몽 |  2009-01-25 오후 3:09: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아, 참 재미있네요.상황 묘사와 심리 묘사 같은게 기가 막혀서 서점에 나와 있는 유명 단편 소설 보는 느낌였습니다.혹시 현역 소설가 아니신지....아무튼 잘 읽었습니다.  
거문고자리 과찬이세요..부족한 글 읽어주시고 격려해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멀리보며 |  2009-01-25 오후 3:10:3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한사람은 걍 척 알고
한사람은 바둑을 두면서 알고
결국 다 알아 버린 두 친구이군요.
그런데 마지막 처리가 멋지네요
현실하고는 좀 동 떨어진 그런 너무 평범하지 않은 처리였습니다.^^  
거문고자리 처음엔 원작 20년 후와 비슷한 결말을 만들려 했습니다만, 저만의 스타일로 바꿔보았어요. ^^
오향만석 |  2009-01-25 오후 5:25:27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하아~~~~~~~~~~이거 너무 짜릿한 소설이네요... 거문고 자리님 추천이 한번박에 안되니 어쩔 수 없어요..한번만 추천 쾅  
거문고자리 추천 한번 해주시는 것도 정말 감사한걸요!! 게다가 즐겁게 읽으셨다는 말을 듣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은 없지요.
메이비 |  2009-01-25 오후 8:39:27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오 헨리의 원작를 얼른 읽어보고 싶네요!  
거문고자리 원작을 먼저 읽어보셨다면 더 좋았을텐데...저의 짧은 글솜씨가 오헨리의 명문과 비교될 것을 생각하니 부끄러울 뿐이에요..^^;
맹물국수 |  2009-01-29 오전 12:09:4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천천히 읽어보겠습니다. 굽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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