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에 찌들면 사람의 모습이 변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들은 그 사람의 모습을 보고 생활의 형편을 가늠하기도 한다. 직업에 따라서도 모습이 변한다. 학창을 같이 보낸 친구들이 수십 년 만에 만나보면 생각과 생활습관에 따라 모습들이 변해있음을 보게 된다. 어른이 된 다음 옛 사진을 보고 스스로 놀라는 일도 다 그런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사람은 흐르는 세월에 따라 변하는 마음의 모양이 그 사람의 모습이 되어 밖으로 나타나는 모양이다. 그런데 1,100년의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은 아름다움이 있었다. 바로 인도 여행 중에 본 카마수트라의 미녀들이다. 

 북인도의 시골도시, 카쥬라호에 카마수트라라는 한 힌두교 사원이 있다.

 이 사원 안에는 힌두교식 큰 탑이 여러 개가 있는데, 탑의 모든 벽면에는 남녀가 벌이고 있는 수천 개의 SEX 장면이 조각되어 있다. 그래서 이 사원을 에로틱사원이라 부르기도 한다. 산스크리트어로 “카마”는 "SEX"를 “수트라”는 “자세”를 뜻한다니 애초부터 이들도 숨길 생각이 없었나 보다.

 멀리서 온 여행이라 어쩔 수없이 탑마다 고개를 젖혀가며 쳐다보기는 했지만 조각된 모습이 하나같이 보기 민망한 것들뿐이었다. 성희가 극에 달해있다는 오늘날에 와서도 상상을 초월하고 마는 이 조각들은 당시에 이미 사람들이 취할 수 있는 SEX자세를 전부 84가지로 개발하여 조각한 것이라고 하니, 과히 성의 경전이라 한다 해도 조금도 부족함이 없겠다싶었다. 1,100년 전의 일이다.

 더욱 놀란 것은 조각된 여인들이 오늘날의 미인들보다 더(?) 아름답다는 것이다. 모르긴 해도 당시에는 생존이 우선시 되는 시대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당시를, 여유를 즐기기 보다는 먹고살기 바빴던 시대로 본다면, 1,100년 전의 이곳 여인들은 태생적으로 아름다웠다는 얘기가 된다. 보통은 사람도 변하고 미인의 기준도 변한다고 하는데 어찌하여 1,100년 전의 미인의 기준과 1,100년 후의 기준이 어찌하여 조금도 변하지 않았을까?  

 우리나라만 해도 9색 미인이라 하여 살결과 이와 손은 희어야 하고, 눈동자와 눈썹과 머리칼은 검어야 하며, 입술과 볼과 손톱은 붉어야 한다고 했단다. 그러다가 8등신 미인이 나왔고, 또 실용주의로 흘러 엉덩이가 적으면 아기집이 좁아 아이를 못 낳는다 하여 미인기준에서 빠졌고, 유방이 적어도 아이를 키울 젖이 적다하여 미인에서 탈락시켰다고 한다. 이제는 서구문명과 뒤섞여 비너스상이 어떻고 하여 서구인의 기준에 따라가고 있는 꼴인데도 이곳 인도의 미인들은 여전했다. 그런데 이것도 사실은 사람을 보는 눈이 변한 것이지 사람이 변한 게 아니고 보면 사람의 인모는 그리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얘기가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이곳 인도의 에로틱사원 카마수트라를 보면서 더욱 그렇다는 생각을 해본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고, 100년이면 인심이 변한다고 했으며, 1,000년이면 인모가 변한다 했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강산은 쉽게 변해도 인모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된다. 이 말이 정말인 듯 내 앞에서 갖가지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이 카마수트라의 벽면 미녀들이 탐스러운 몸매를 뽐내면서 나를 희롱하는 듯 해 뜻밖에도 이 먼 인도에 와서 그간 무심히 접했던 고전의 명구 하나를 제대로 확인하게 된 것 같기만 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