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입구에 젊은 부부가 하는 과일 가게가 하나 있다. 그런데 가게를 시작 할 때는 사람도 가게도 모두가 다 엉성해 보여, 저래서 밥이나 먹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2년쯤 지난 지금은 사람도 가게도 싹 달라져 있었다. 우선 가게 안이 정돈되어 있고 과일도 많아졌다.

 또 사람을 맞이하고 보내는 몸놀림도 틀이 잡혀있었다. 처음 시작할 때의 어색하던 촌티도 간 곳이 없다. 그래서 지금은 돈도 조금은 번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가게를 시작할 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건, 과일을 파는 부부간의 서로 다른 장삿속이다.

 이들 부부가 과일 팔 때를 유심히 보면, 남자는 좋은 것부터 골라 주는데, 여자는 은근히 나쁜 것부터 골라준다. 이것도 금방 알 수 있는 게 아니고 집에 돌아와서 사온 과일을 살펴보아야 알 수가 있다.

 그래서 그런지, 남자가 있을 때는 가게가 붐비는데, 여자만 있을 땐 가게가 썰렁하다. 이미 나만의 느낌이 아니구나 했다. 그 가게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다 여자를 기피하고 있었구나 했다.

아마도 그 여자는 나쁘고 상한 것부터 빨리 팔아야 손해 보지 않을 것 같았던 모양이다. 장사란 물건만 사고파는 게 아니라 마음도 사고파는 것인 줄을 여자는 모르는 모양이었다. 여자에겐 나쁜 것을 사간 사람의 속상한 마음은 안중에도 없고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여자는 그야말로 된 장사꾼이 아니구나 했다.

 상자 안의 과일이 어찌 다 같을 수가 있을까? 좋은 것도 있겠고 또 나쁜 것도 있을 것이다. 큰 것이 있으면 작은 것도 있겠고, 맛있는 것이 있으면 좀 덜한 것도 있는 것이 세상 이치다. 다만 파는 마음이 좋은 과일을 만들 수도 있고, 또는 나쁜 과일로 만들 수 있을 뿐이다.

 이를테면 좋은 것부터 골라서 팔면, 다음사람도 남은 것 중에서 좋은 것으로 골라가게 되니 전부가 좋은 과일이 되고, 나쁜 것부터 골라서 팔면 전부가 나쁜 과일이 될 수밖에 없다. 이래서 과일을 만드는 것보다 파는 마음이 더 중요하지 않나 싶다. 농부가 땀과 정성을 들여 과일을 생산해 놓으면, 장사꾼은 건네는 바구니에 그 마음을 담아주어야 한다. 이게 바로 상도의요, 협력하며 살아가는 예절이다.  

 그런데 이런 간단한 이치를 누가 모를까 만은, 사실 아는 사람도 그리 많지는 않은 것 같다. 돈이 된다면 먹는 것에 먹어서는 안 되는 것들까지 넣는 걸 꺼리 지 않는, 갈 데까지 간 사람들이 판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쯤 되니 은근슬쩍 나쁜 것부터 담아주는 여자는 차라리 귀엽다. TV화면을 메우고 있는 상품선전이나 무슨 토론 같은 것을 보면 양심과 지성을 찾아 볼 수가 없다. 차라리 사기술이나 거짓말들의 향연장 같이만 느껴진다. 오히려 배웠다는 사람들이 앞장을 서는 듯해, 마치 우리 사회가 고장 난 폭주열차에 올라타 있는 기분이다. 이 위험천만인 열차를 세울 수 없다면 끝은 뻔하다. 정말 걱정되는 것은 폭주열차가 아니라, 세울 의지가 없는 것 같은 이 사회현상이다. 도대체 누구하나 걱정하거나 지켜보는 사람도 없는 것 같아서이다.  

 젖먹이 아이의 부드럽고 조그마한 예쁜 손이 수십 년 후 호랑이도 때려눕힐 역사(力士)의  커다란 손으로 자라나기까지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렇게 서로 도우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인데도 다들 아니라고 하는 것 같고, 뭉치면 살고 헤어지면 죽는다는데도, 이리 가르고 저리 갈라서서는 서로가 삿대질이다. 

 인생의 궁극적 목표는 행복추구에 있고, 보통의 행복은 “건강과 물질과 친구”에서 나온다는 "달라이 라마"의 행복 론이 생각나기도 한다. 3가지 조건이라 했다.

 사람은 우선 살아 있어야 하니 “건강”이 제일이고, 먹고살기가 궁해서도 안 되니 “물질” 또한 필요한 만큼은 있어야 하며, 몸만 있는 게 아니니 마음을 주고받을 정다운 “친구”도 있어야 하는 것은 물어보나 마나란다. 그런데 문제는 이중에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건강부터 보더라도, 본인이 할 탓인 것 같지만 어림도 없단다. 만물이 무상하니 병드는 것 당연하고, 병들면 약과 의사의 도움이 절대적인데, 그 약은 누가 만들고 또 의사는 누가 길러내고 있느냐이다.

 물질도 마찬가지란다. 먹는 것은 농부들이 땀 흘려 지은 것이고, 쓰는 것은 공장의 공인들이 애써 만든 것이란다.

 친구는 말할 것도 없단다. 마음부터 맞아야 친구가 되는데, 어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느냐 이다. 결국 인간들의 행복의 조건 모두가 남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얘기다.

 부부간에 장삿속이 서로 다른, 동네 앞의 과일가게를 생각하며, 인생은 내 것이지만 남의 도움 없이는 그 인생을 한시도 지탱해 낼 수가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 것이다. 이게 진정 인간의 숙명이라면,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는 양, 이기적인 생각에 빠져, 속이고 삿대질하고 갈라서서는 서로가 지탄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무엇 때문에 일그러지고 있는지 한숨만 나온다.

 하나님과 부처님이 다른 것 다 제쳐두고 사랑부터 가르친 이유가, 오늘날 우리들의 이런 세태를 미리 내다보았기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다.

 무섭고 두렵기만 하다. 정말 큰일이구나 생각하니 가슴까지 답답해진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니 불현듯 과일 가게 아주머니에게 미안한 마음이 솟는다. 정다운 이웃사촌이 되어 다정하게 감싸주지는 않고, 똥 묻은 개 천지에, 재 좀 묻힌 것을 보고, 무슨 대단한 것을 본 것처럼 핍박한 꼴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정말로 과일가게 아주머니에게 미안한 마음, 죄송스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