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물회를 먹으며


제주에는 자리돔이 있지
동네 조그만 포구마다 자리는 매일 잡히지
노릇노릇 구워먹기엔 모슬포 자리지만
강회나 물회로는 보목 자리가 최고야
어슷어슷하게 썰어넣은 식초내음 코를 찌르는
시원한 물회 맛좀 봐
으슥한 내 그림자마저 구겨져
근심 또한 그릇 속으로  휙 사라져버렸다면...
술잔에 풍경이 가만가만 흘러내린다
쓸쓸한  바다에 추억의 영사기 돌면
물결이 분말로 부서져 굳세게 뛰쳐나오고
하얀 런닝셔츠가 바람에 펄럭인다
뼈채로 입안 그득 씹히는 연한 자리 살점에
간밤의 신열도 아득한 숨결 속에 닻을 내리고
긴 터널의 저쪽 끝에서 이쪽 끝으로
내 시집 또한  닫으며,
물맛 좋은 이 기억을 다시 기억하는 날이
올 때까지는
다른 모든 것들을 잊어야 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