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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달콤한 바둑 레슨 (43) | 나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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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달콤한 바둑 레슨 (43)
2008-12-05 오후 11:28 조회 3605추천 15   프린트스크랩

아직이야?

아무것도 오지 않는 핸드폰을 열어보며 어두운 표정을 짓는 기영에게 진호가 안쓰럽다는 듯 물었다.

 

……”

기영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문자를 몇 개나 보냈는데?

 

5개쯤?

 

오늘 오전에만?

 

.

 

차라리 전화를 해보면 어때?

 

그냥……왠지 이럴 땐 문자가 편해……”

 

너도 참 소심하다, 사실 네가 바람을 피운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죄 지은 사람처럼 그래? 네가 이러면 더 그랬던 것처럼 보인다니까.

 

전화를 하는 게 좋을까?

 

전화고 뭐고 일단 밥부터 좀 먹어라, 찌개 다 식겠어.

 

……지금 밥이 넘어가게 생겼어. 마음이 얼마나 답답한데.

기영이 크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근데 혜린씨도 팀장이랑 있었다며?

진호가 갑자기 기영에게 가까이 고개를 갖다 대며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

 

그건 또 어떻게 된 거야?

 

나도 모르겠어.

기영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내가 보기엔 둘 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은데 더 복잡하게 만들지 말고 속 시원히 털어 놔. 대화로 풀면 되겠지.

 

“…...

진호의 단순한 해결책에 기영이 생각에 잠긴 듯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의 표정에서 뭔가 반박하고 싶지만 마땅한 것이 떠오르지 않는 다는 것을 어렴풋이 읽을 수 있었다.

 

너 혹시 그 수현이라는 애 좋아하는 거 아냐?

 

수현이는 글쎄, 잘 모르겠어.

 

어떤데?

 

동생 친구라서 그런지 혜린이랑 동갑인데도 어리게만 느껴지기도 하고, 여려 보이는데도 대화를 해보면 강한 면이 있어.

 

나 언제 한번 소개시켜주면 안돼? 네 얘기 들으니까 엄청 궁금하다.

 

그래, 언제 한번 시간 내서 보자.

 

여자로 느껴진 적도 있어?

 

그건……”

기영이 고개를 갸웃하며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본인은 없었다고 생각했지만 지난 시간들을 떠올려 보니 전혀 없었다는 건 솔직하지 못한 대답인 듯 느껴졌기 때문이다.

 

네가 혜린씨한테 전화 안 하려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너 혜린씨한테 떳떳하지 않은 거지? , 네가 이렇게 쉽게 변할 줄은 몰랐는데.

 

아냐, 수현이가 싫지 않은 것뿐이야. 그래도 내겐 혜린이밖에 없어.

기영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우선 남자답게 전화를 해, 그래서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만나서 얘기하자고 말하면 되잖아.

 

그럼 전화 해볼까?

 

네가 언제부터 혜린씨한테 전화할 때마다 나한테 허락 받고 했니.

기영의 어린아이 같은 모습에 진호가 핀잔을 주며 말했다.

 

혜린이도 점심 먹고 있으면 어떡하지?

 

, 너 진짜 보는 사람까지 답답하게 만들래?

핸드폰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불안해하는 기영을 보며 진호가 밥이 가득 얹어진 숟가락을 입으로 가져오다 말고 버럭 화를 냈다.

 

알았어, 하면 되잖아.

진호의 성화에 기영이 못 이기는 척하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전화기가 꺼져 있다는데?

혜린에게 전화를 걸었던 기영이 힘없이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럼 네 문자 아직 못 봤을 수도 있겠네?

 

, 아마도……”

 

거봐, 그냥 무시한 게 아닐 수도 있다고 했잖아.

 

네가 언제 그랬어, 완전 무시 당했다고 하더니.

 

어쨌든, 혹시 오늘 시합 두는 거 아냐?

진호가 물었다.

 

, 그러고 보니 오늘쯤 시합이 있다고 했던 것 같아.

 

관심이 없구나, 이러니 그런 일이 생기는 거야.

 

됐어, 다 먹었으면 그만 일어나자.

 

너 다 먹었어?

진호가 밥이 그대로 남아있는 기영의 자리를 보며 말했다.

 

그만 먹을래.

기영이 더 이상 얘기할 여지를 주지 않으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

기영이 점심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회사 건물에서 나오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멀리서 봐 확신은 안 갔지만 느낌이 수현인 것 같았다.

기영은 빠른 걸음으로 뛰다시피 하며 수현에게 다가갔다.   

 

, 무슨 일이야?

갑자기 혼자 가는 기영을 보며 진호도 얼떨결에 뛰어가며 물었다.

 

수현이가 온 것 같은데.

기영이 빠른 걸음으로 수현의 뒤를 쫓아가며 말했다.

 

벌써 불렀어?

의외의 대답에 놀란 진호가 물었다.

 

그럴 리가.

짧게 대답한 기영이 다시 속도를 내 수현을 따라잡았다.

 

 

 

수현아?

기영이 가까이 다가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수현이 뒤를 돌아보았다.

 

어머, 오빠.

수현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우리 회사 왔었어?

기영이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물었다.

 

, 그게……”

 

회사에서 나오는 걸 봤거든. 무슨 일이야? 나 보러 온 거 아니야?

그는 자신이 그렇게 수현을 놀라게 만들었는지 생각하며 당황한 채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그녀에게 평소와 같은 편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 그게 사실은 근처에 일이 있어서 왔다가, 오빠가 여기서 일한다는 게 생각나서 호기심에 들어갔었어요.

그녀가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은 듯 한결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전화를 하지, 왜 그냥 가려고 했어.

 

오빠 일하는데 방해 될까 봐서요.

수현이 쑥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 이쪽은 내 친구 진호야. 이쪽은 동생 친구 수현이.

진호가 옆에서 계속 기영의 옆구리를 찌르며 눈치를 주자 기영이 진호와 수현을 소개시켰다.

 

안녕하세요? 박진호라고 합니다.

진호가 씩씩하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수현이 얼떨결에 그와 악수를 나누며 인사했다.

 

오빠, 그럼 들어가세요, 저는 이만 가볼게요.

수현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사무실 구경하고 가, 커피도 한 잔 하고.

 

그래요, 잠깐 들렀다 가세요.

기영의 권유에 진호가 호흡을 맞추며 말했다.

 

아니에요, 아르바이트 하러 가야 해요. 그럼 다음에 또 뵐게요.

수현이 고개를 숙여 꾸벅 인사를 하며 말했다.

 

 

 

 

이쁘다.

수현이 가자 진호가 장난기 가득한 동작으로 기영의 한쪽 어깨를 치며 말했다.

 

이쁜가?

 

이쁘지, 근데 생활이 어려워서 항상 아르바이트 한다고 하지 않았어?

진호가 의아하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 그게 왜?

 

아니, 수십만원짜리 가방을 들고 있길래.

 

잘못 본 거 아냐?

 

, 내가 그 가방 때문에 소연이한테 얼마나 괴롭힘을 당했는데, 잘못 볼 리가 있겠어?

 

너 요즘 소연이랑 연락해?

 

아니! 헤어졌다니까.

기영의 엉뚱한 질문에 진호가 발끈하며 말했다.

 

네가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게 한두번이어야지.

 

이제 진짜 끝났어, 진짜.

 

알았어. 꼭 그렇게 단정 지을 필요 없어. 또 만날 수도 있지 뭐.

 

, 진짜!

 

알았어. 이제 그만 할게.

진호가 버럭 화내는 모습에 기영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어쩌지, 아무리 세봐도 조금 모자라네……”

혜린이 침착한 표정으로 바둑판을 응시한 채 생각했다.

무겁게 가라앉은 공기와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적막이 그녀를 답답하게 했다.

옆에 놓인 물을 한 모금 마시고 크게 심호흡을 한 혜린이 다시 반상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우하 끝내기가 5 3분의 1, 상변은 11집짜리고, 좌변이 4집이 조금 두터운데 저기를 선수로 처리하면……’

혜린이 머릿속에 계산기를 가져다 놓은 듯 이곳 저곳의 가치를 잽싸게 계산하기 시작했다.

 

50, 하나, , , , 다섯, 여섯.

 

-

 

, 모르겠다.

계산에 확신이 서지 않았던 혜린이 선수로 끝내기 할 수 있는 자리에 돌을 갖다 놓으며 나지막이 탄식했다.

상대도 계가가 정확히 안 되었는지 뻔한 자리에서 바로 받지 않고 바둑판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다 뒀지?

혜린이 허리를 피고 시계에 손을 갖다 대며 물었다.

대국이 끝났으니 시계를 끄겠다는 표현이었다.

상대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시계를 끈 혜린은 자신의 사석을 집어 상대의 집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두 대국자에게 계가는 그저 확인 과정에 불과했다.

33집 대 백27, 백을 잡은 혜린의 반집승이었다.

결과를 확인한 그들은 말이 없었다.

그저 말없이 마음을 추스르고 머릿속으로 대국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7시간이 넘도록 긴장한 상태에서 매달렸던 대국이 끝나자 갑자기 몸이 나른해지면서 피곤함이 몰려왔고 얼굴은 빨갛게 상기되면서 살짝 열이 나는 것 같았다.

 

여기서 조금 손해 봤지?

멍한 혜린에게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 그런 것 같아.

바로 정신을 차린 혜린이 다시 바둑판을 바라보며 답했다.

 

 

 

혜린아!

밖으로 나와보니 프로기사이자 동갑내기 친구인 은실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 언제부터 있었어?”’

혜린이 반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금방 왔어, 연구실에서 인터넷으로 보다가 끝날 때 다 돼서 같이 저녁 먹으러 왔지. 한턱 내는 거야?

 

, 먼저 내려가 나 가방 가져올게.

은실을 먼저 보낸 혜린이 가방을 챙기며 핸드폰을 켜니 기영에게 문자 6통과 부재중 전화가 와있었다.

중요한 시합을 이긴 기쁨에서였을까 혜린은 기영과 있었던 불편했던 일들을 그대로 덮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덮어버리고 싶었다.

기영의 번호를 보며 잠깐을 망설이던 그녀는 통화버튼을 꾹 눌렀다.

 

 

 

, 혜린아, 시합 두고 있었어?

전화를 받은 기영이 태연한 척 어색한 목소리로 물었다.

 

, 전화 했었네?

 

미안, 시합인 걸 잊었어. 지금 끝난 거야?

 

. 오늘은 정말 치열했어. 저녁 먹었어?

 

이제 막 먹으려던 참이야. 너는?

 

나도. 집이야?

 

.

 

혼자?

 

.

 

집에 먹을 건 있어?

기영을 잘 아는 혜린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별로, 대충 먹으려고.

기영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잘 챙겨먹어.

혜린의 차분하고 낮은 목소리는 오랜 대국 끝의 피곤함 때문이었지만 기영에게는 지난 날의 일을 상기시키는 듯 불편하게 들렸다.

하지만 기영은 그런 생각들을 내색하고 싶지 않았다.

 

, 너도 저녁 잘 먹고, 잘 쉬어.

기영이 덩달아 낮아진 목소리로 그녀에게 차분한 인사를 건넸다.

 

 

디이이잉-

기영과의 통화를 마치기가 무섭게 혜린의 핸드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무의식적으로 전화를 받으며 혜린이 대답했다.

 

혜린씨 축하해요.

지훈이었다.

 

어떻게 벌써 아세요?

조금은 기운을 되찾은 혜린이 웃으며 물었다.

 

사무실에서 바둑을 봤거든요. 오늘 저녁에 바쁘세요?

 

그랬구나, 오늘 저녁에 왜요?

 

축하의 의미로 제가 근사한 데서 한잔 살까 해서요.

 

, 감사하지만 다음에요. 어쩐지 기영오빠가 마음에 걸려서요. 약속한 건 아니지만 집에 혼자 있다니까 이따가 가볼 생각이에요.

지훈의 다정다감한 목소리가 너무 편하게 들린 탓이었을까, 혜린이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말했다.

 

그래요? 그럼 할 수 없죠. 대신 다음엔 꼭 같이 가시는 거에요?

지훈이 싹싹하게 혜린의 거절을 받아들이며 말했다.

 

, 그럼 다음에 뵐게요.

 

 

 

지훈과의 통화를 마친 혜린이 그제서야 은실을 떠올리며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가방 가지러 간 거 맞아? 난 가방을 만들어 오는 줄 알았잖아.

총총걸음으로 계단을 내려오는 혜린을 발견한 은실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내 가방 멀쩡히 있는데 굳이 만들 필요 있겠어?

혜린이 자연스럽게 은실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뭐 사줄 거야?

은실이 반짝이는 눈빛으로 혜린을 보며 물었다.

 

김밥?

은실의 기대에 가득 찬 표정을 따라 하며 혜린이 말했다.

 

?

 

아냐, 아냐 농담!

은실이 잡고 있던 혜린의 손을 놓으며 뭐라고 말을 하려는 찰나 혜린이 은실의 손을 다시 잡으며 소리쳤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손을 맞잡은 채 인적 없이 쓸쓸해진 기원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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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랑숙이 |  2008-12-06 오전 7:13:0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본격 바둑소설..아니 바둑연애소설...헷갈립니당...좋은글 읽었습니당~~  
거문고자리 음...바둑소설, 바둑연애소설 다 맞는 것 같네요. ^^
코어스 |  2008-12-06 오전 8:42:3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은실이가 혜린이의 단짝인가봐요^^
따뜻한 우애가 느껴져요.  
거문고자리 단짝 맞을 거에요^^
달선공팔 |  2008-12-06 오전 9:22:4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3등이당 ^^  
팔공선달 등수없네...? 할수없다. 김밥속에 낑기자 ^^:
달선공팔 켁#$%^&*
거문고자리 같은 분 아니셨어요~? ^^;;ㅎㅎㅎ
후지산 |  2008-12-06 오후 4:54:32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붉은 집 꽃.
잘 감상했습니다.  
거문고자리 사진만 감상하시고 가시는 건 아니죠? ^^;;
당근돼지 |  2008-12-06 오후 6:44:2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좋은글 ........항상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거문고자리 감사합니다. ^^
멀리보며 |  2008-12-07 오후 12:00:27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바둑소설로 거듭나다.^^  
거문고자리 멀리보며님 안녕하세요! ^^ 바둑소설로 거듭 났다는 건 바둑소설이 아니었는데 바둑소설이 되었다는 뜻인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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