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o 세계 인터넷바둑의 허브
  • 겜임&채널
그녀의 달콤한 바둑 레슨 (28) | 나도 작가
Home > 커뮤니티 > 거문고자리
거문고자리 이야기방

작가의 말


 이 글의 저작권은 작가에게 있습니다. 저작권자와 협의하지 않은 무단전재는 금합니다.
그녀의 달콤한 바둑 레슨 (28)
2008-09-23 오전 2:42 조회 2354추천 12   프린트스크랩
▲ .......

여기서 백이 이쪽을 막으면 어떻게 둘 거야?

열심히 채점을 하던 혜린이 기영의 눈 앞에 사활 책을 들이대며 물었다.

 

이 문제? 언제?

기영의 표정이 순간 긴장한 듯 보였다.

 

흑이 여기를 끊는 다며, 그 때 백이 위로 안 막고 이 쪽을 막아.

 

……그런 수가 있었어? 그럼 안 되는 거야?

 

안 되는 지는 나도 모르지, 난 그냥 오빠가 어떻게 받을 건지 묻고 있는 거야.

 

잠깐만, 지금 생각해볼게.

 

.

기영이 사활 책을 가져가자 그녀는 의자에 몸을 편안하게 기대 앉으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덧붙여 말했다.

 

천천히 생각해. 난 좀 쉬고 있을게.

 

그럼 여기에 호구 치면 되는 거 아니야?

잠시 후, 기영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막으면?

그녀는 여전히 몸을 의자에 기댄 채 사활엔 눈길 조차 주지 않고 물었다.

 

막아? 어딜?

 

호구 친 자리를 2선으로 막아.

 

, 거기. 그럼 먹여쳐.

 

따면?

 

단수 치고 백이 이을 때 뒤에 공배를 메워.

 

에이, 금방 풀어버렸네. 조금 쉬려고 했더니.

혜린이 쉬는 시간을 뺏긴 것 치고는 기분 좋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난 또 틀린 줄 알았네. 네가 물어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 한다니까.

 

뭘 그렇게 긴장해. 틀릴 수도 있지.

 

그래도 맞추고 싶은 건 본능인가 봐.

 

어쩌면, 여기 그냥 건너 뛴 것들은 몰라서 넘어간 거야?

어느새 다시 사활 책을 가져온 혜린이 드문드문 답이 비어있는 문제들을 보며 물었다.

 

. 아무리 생각해도 안 풀리는 건 그냥 넘어 갔어.

 

잘 했어. 그럼 우리 같이 풀어볼까?

 

이 것들은 아직 내가 풀기엔 조금 어려운 것 같아.

 

?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르겠어.

 

, 그럼 이제 지금까지 생각했던 건 다 잊어버려.

 

.

 

이제 이 문제를 처음부터 같이 풀어보는 거야.

 

알았어.

 

우선 백의 궁도를 잘 보고, 오빠가 최대한 궁도를 좁히는 정도로 백을 잡을 수 있는지 확인해봐.

 

못 잡아.

 

. 백의 모양이 너무 넓어서, 그냥 좁혀서는 백이 살게 돼. 그럼, 백 진영 안에서 수를 내야 한다는 뜻이지?

 

. 그렇지.

 

그럼 이번엔 백 모양에 약점이 있는지 봐봐. 끊어진다던 지, 자충이라던 지.

 

여기 보면 오른쪽은 백의 공배가 많이 비었는데, 왼쪽은 다 메워져 있어.

 

맞아. 그럼 결론은 오른쪽 백의 자충을 이용해서 백 모양 안에서 수를 만드는 거야. 맞지?

 

. 그럼 여기서 일단 여기를 먹여쳐야 하나?

 

거기 두면 백이 따고, 흑이 단수칠 때 이어야 하지? 그리고 흑이 이 곳을 젖혀야 하는데, 백이 끊어서 안되잖아. 근데 자세히 보면 흑이 만약 이 곳을 하나 교환해 두었더라면 수가 난다는 걸 알 수 있지?

 

! 그럼 먹여치기 전에 먼저 여길 둬. 그럼 백이 막아야 하고 그때 먹여쳐.

 

. 그게 정답이야. 풀만하지?

 

신기하게 금방 풀렸네. 전에는 정말 안 풀리더니.

 

사활은 차근차근 생각하면 더 간단해질 수 있어. 그럼 나머지 문제들도 오빠가 한번 풀어볼래?

 

. 내가 숙제로 풀어올게. 오늘은 그만하자.

기영이 사활 책을 접어 가방에 밀어 넣으며 말했다.

 

벌써?

 

. 많이 했잖아.

 

많이 하긴, 요즘엔 이상하게 수업시간이 자꾸 짧아지는데?

 

괜찮아. 숙제로 더 많이 해올게.

 

더 많이 해오긴, 맨날 해오라는 양도 못 해오잖아.

 

이번엔 진짜 할게. 우리 놀러 가자.

기영이 거리의 아이스크림 아저씨를 발견한 어린아이와 같은 눈빛으로 혜린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항상 그렇듯, 그 눈빛은 강력한 힘을 발휘하여 그녀를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오늘 날씨 참 좋긴 하다.

기영과 함께 밖으로 나온 혜린이 파란 하늘을 향해 크게 심호흡하며 말했다.

 

거봐, 바둑공부만 하기엔 억울하다니까.

기영이 보란 듯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알았어 알았어, 근데 나 다음 주 토요일에 일 있어서 레슨 못 하는 거 알지?

 

, 전에 얘기 했었지, 무슨 일이더라?

 

프로기사들 회의가 있어.

 

맞다, 회의가 있댔지. 근데 무슨 회의?

 

여러 가지 일로. 예전엔 프로기사라면 누구나 한 달에 한 번씩 일정한 돈을 받았거든. 많은 액수는 아니었지만 연구수당이라는 명목이었지. 입단 연수나 단에 따라서 그 연구수당이 조금씩 늘어나는 식이었어. 일본에 그런 제도가 있었거든.

 

그럼 일본에서 배워온 거야?

 

. 그랬는데 일본기원이 그 연구수당 때문에 적자가 나서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었어. 그래서 우리도 그걸 보고 연구수당 제도를 개혁하기로 했지.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40세 이상이 되면 연구수당을 그대로 받고, 그 미만은 하나의 기금으로 모으기로 했어. 그리고 그때 당시 프로 기전이 점점 줄고 있었기 때문에 시합을 만들기로 했지. 근데 우리가 우리 돈으로 시합을 하면 조금 이상하잖아? 그래서 우리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만한 대회 방식을 연구해서 스폰서를 구하고, 거기에 우리의 기금도 보태서 큰 시합을 열기로 했어.

 

. 좋은 방법인 것 같은데?

 

근데 문제는 스폰서를 구하는 게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데다, 군대나 해외보급을 간 기사들이 피해를 입고, 또 성적 좋은 기사는 항상 성적이 좋고, 성적이 안 좋은 생활이 힘든 기사들은 항상 성적이 안 좋으니까, 정말 이게 좋은 방법인지 회의가 들기 시작한 거야.

 

그런 문제가 있구나. .

 

그래서 좋은 방법을 찾는 중이야. 그래도 난 이게 우리가 발전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 아무 일도 안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좋잖아?

 

. 좋아 보여.

 

아무튼 레슨은 못하지만 다음 주에 회의 갔다 와서 재미있는 거 있으면 말해 줄게.

 

오케이. 근데 우리 뭐 할까?

 

글쎄, 산책할까?

 

산책?

 

. 난 천천히 걸을 때가 좋아. 왠지 내가 인생을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거든.

 

그럼 빨리 걸을 때는?

 

. 그 때는 뭔가 내 머리 속에서 생각하는 게 따로 있겠지, 얘를 들면 이대로 가다간 늦는다던 지, 도착해서 무슨 일을 해야겠다던 지, 아무튼 뭔가 바쁘고 정신 없어.

 

천천히 걸을 때는 어떤 생각을 하는데?

기영이 혜린과 나란히 걸으며 물었다.

그는 지금 혜린과 보조를 맞춰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겨 놓는 중이었다.

항상 빨리 걷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던 그에게는 무척 어색한 일이었다.

 

난 앞으로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을까. 내가 정말로 원하는 건 무엇일까. 또 어떻게 사는 것이 정말 뜻 깊은 인생일까. 뭐 이런 거?

혜린이 수줍은 듯 미소 지으며 말했다.

 

순간 그녀의 순수한 눈동자가 그의 마음을 맑게 적시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시원한 느낌이 그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오늘만큼은 그도 그녀의 곁에서 천천히 걸으며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었다.

따스한 햇살이, 따스한 혜린의 기운이 그를 부드럽게 에워쌌다.

그는 그 따스함이 좋아 혜린의 손을 살짝 잡으며 눈을 감았다.





┃꼬릿글 쓰기
당근돼지 |  2008-09-23 오전 6:49:4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1등이네요...........감사 합니다.  
거문고자리 당근돼지님은 1등을 도맡아 하시네요~! 1등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데 ^^
팔공선달 |  2008-09-23 오전 9:52:07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사진도 맑고 편안한데 글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댕겨 갑니당 ^^  
거문고자리 선달님 안녕하세요! 사진은 캐나다에 있는 페이토 호수에요. 직접 보면 몇 배의 감동이 느껴진답니다!
메이비 |  2008-09-24 오후 8:40:2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눈에 보일듯한 사활레슨이 참 인상적이네요^^  
거문고자리 바둑을 잘 두려면 사활 공부는 필수겠죠! ^^
선비만석 |  2008-09-27 오후 6:17:5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사활~~~이거 머리 쥐난다 아니요...ㅎㅎㅎㅎ  
거문고자리 ㅎㅎㅎㅎㅎ 그런가요~? ^^ 그치만 실력을 늘리는데는 사활이 효과적이랍니다!












* 띄어쓰기 포함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000 / 400바이트)
대국실입장하기
다운로드 이용안내 고객센터
정회원가입
오로볼구매
가장 많이 본 기사
스폰서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