休暇

선비만석

  휴가를 맡았다. 휴가를 안가면 연가보상비야 더 타겠지만 연가보상비 몇푼 더 받자고 이제 공직생활 몇 달 남지 않았는데 책상머리에 앉아서 결재서류에 컴퓨터 마우스를 누르며 서명하기도 지겹다. 또 직원들이 내 얼굴을 안 봐야 스트레스를 덜 받을지도 모르니 휴가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월요일부터 휴가를 내었다. 좋은 세상이다. 5일간 휴가를 받으면 토. 일요일 합치어 무려 9일을 흐느적거릴 수 있다.

  휴가를 받아서 기실 춘천 집에를 가야 하지만 집에 가야 다들 자기 볼일에 바쁠 테고 잘못 하다간 집지키는 강아지 신세가 될게 뻔하니 이참에 여행이라도 다녀볼 생각을 했으나 그도 턱없이 오른 기름값과 휴가철 잠자리 잡기 곤란한 것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산재해서 포기하고 에어컨 틀어놓고 내가 기거하는 집에서 빈둥대는 것이 가장 좋을것 이라는 현명한 판단이 들었다. 결국 여행을 다니겠다던 애초의 생각은 물 건너 간 셈이다.

  주말에는 누님 회갑이라 그럭저럭 시간을 보냈고 일요일은 비가 와서 또 방구석에서 보냈고 월요일 가까운 속초에 볼일을 보러 갔다 왔다. 저녁시간에는 모처럼 8km정도가 넘게 걸었다. 두 시간 반 정도 걸었더니 다리가 뻐근하다. 평소 책상물림이라 운동이 부족하니 그럴 수밖에........

  어제는 모처럼 좀 조용한 마차진 해수욕장에 갔다 하루 종일 바다를 들락거리면서 바다 물에 몸을 담갔다가 수영도 하고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집에 오니 녹초가 되었다. 휴가라면 좀더 신나는 일을 해야 할 테지만 이거 나이 탓인지 매사 귀차니즘에 빠지는 모양이다.

  젊은 시절에는 휴가를 받아 여행을 하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냈는데 요즈음은 어째서 모든 것이 이 모양인지 어제 마차진 해수욕장을 가느라 화진포 해수욕장을 지나가는데 “소설가 이청 선생님 외 나도작가 여러분 고성방문을 환영 합니다.” 라는 플래카드가 아직도 화진포 해수욕장에 매달려 있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몇 년 전만 해도 휴가들을 갈 시간도 없이 바빠서 일에 매달려 휴가를 반납하고 살았으나 그게 다 젊어서나 가능한 일이지 나이를 먹으면 가끔은 쉬어야 한다는 것을 요즈음 새삼스레 깨달았다.

  오늘은 아무것도 안하고 방안에서 딩굴러 볼 요량이다. 무더운 날씨에 바다에 나가도 체력이 달리고 그렇다고 계곡을 가려니 엄두가 안 난다. 이제 와서 젊음을 되돌려 달라고 할 수도 없고 지난 젊은 시절에는 그저 아이들 키우고 일하기에 바빴으나 정작 쉬어야 할 나이에는 함께 쉴 사람이 없다. 

  퇴직 후가 은근히 걱정이 되지만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내게 바둑이라는 취미가 있다는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또 운동도 탁구니, 배드민턴이니, 수영이니, 테니스니, 볼링이니 이것저것 조금은 다 할줄 아니 운동을 열심히 할 생각이다.  가능하면 글쓰기를 계속할 생각도 한다. 또 문학지에 응모도 해볼 정도로 글쓰기 공부도 하고 싶다.

  휴가라고 맡아서는 집안에서 딩굴거리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조금은 답답한 생각도 드나 어쩌랴 서민의 휴가야 이런 것 뿐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