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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의 추억과, 탈 일상의 행복 | 나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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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12 화개류수花開流水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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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의 추억과, 탈 일상의 행복
2007-07-20 오후 6:29 조회 6290추천 12   프린트스크랩

 
 사람이 개미 쳇바퀴 돌듯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가끔은 현실생활에서 탈출하고 싶은 강한 욕망을 느낄 때가 있다. 더구나, 천성이 다소 자유분방했던 나로서는 엄청나게 보수적인 회사분위기에 적응하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았던 차에, 입사 다음 해 여름휴가를 맞게 되니, 날개를 활짝 펴고 하늘을 날고 싶었다.

주위 사람들 다 물리치고 혼자서만 어디론가 정처 없이, 구름 흐르고 바람 부는 대로 떠나기로 작정하고, 허름한 작업복에, 속옷 몇 벌, 양말, 소주, 시집 1권을 넣은 배낭을 달랑 메고 농구화바람으로 늦은 밤, 비를 맞으며 무작정 서울역으로 나갔다. 경부선이건 호남선이건 가릴 것 없이, 매표소에서 먼저 곧장 살 수 있는 완행열차 차표 한 장에 몸을 맡기기로 했다.

열차시간표에서 가장 이른 표를 사고 보니, 그것은 호남선 완행열차였다. 아무튼 일단 열차에 오르고 보니, 좌석은 승객들로 이미 찼고 구석 몇 자리를 상이군인들 몇 명이 선점했다가 팔고 있어서, 그 좌석을 사서 앉았다.

열차가 출발해서 창밖을 내다보니 여전히 어둠 속에서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차 안은 많은 승객들로 붐비며, 자욱한 담배연기 속에서 퀴퀴한 냄새가 났지만 악취로는 느껴지지 않았다. 구수한 호남사투리 소음 속에서, 열차는 비 내리는 호남평야의 밤 공기를 가르며 질주하고 있었다.

 "담배나 껌이나 캬라멜, 요깡, 인단, 가오루가 있어요, 심심풀이 땅콩, 오징어도 있어요."
강생회 이동수레가 비좁은 입석승객 사이를 용케도 헤쳐 가면서 연신 부지런히 지나가고 있다. 이게, 우리 60년대 완행열차의 풍경화다. 나는 연신 소주병나팔을 불며, 나름대로의 해방감을 만끽하고 있었다. 열차가 어둑한 새벽녘에 송정리역을 지난 듯 하더니, 어느새 안개 깔린 아침나절에 종착지인 목포역 땅을 밟게 했다.

우선 재래시장 위치를 물어물어 무작정 해산물식당으로 들어갔다. 싱싱한 생선으로 끓인 찌개와 해장 ‘쐬주’로 속을 달래고 나니, 세상이 선명해지고 정신이 싹 돌아온 것 같았다. 생소한 지역인지라 또 물어물어 유달산에 올라, 노래로만 들었던 삼학도를 바라보는 낭만에 젖어 보기도 했다. 일제시대에 우리 이난영 아줌마가 불러 전국을 울음바다로 적셨다던 '목포의 눈물'을 흥얼거리니, 뭔가 감흥이 옹달샘마냥 솟아오른다.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물 위에 새아씨 아롱 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사랑 "


 다시, 비린내 스치는 선창가 어물전들을 기웃거리다가, 노천 좌판에 피곤한 몸을 퍼대어 앉혔다. 갖가지 싱싱한 생선과 해산물 안주들이 나그네의 여정을 유혹한다. 날씨가 워낙 더워서인지 소금끼 머금은 해풍마저도 시원치는 않지만, 눈앞에 펼쳐진 쪽빛 바다를 보고 어찌 한잔 술을 마다하는 나그네가 있을 소냐. 마음씨 넉넉한 좌판 아줌마 인심에 한잔, '목포의 눈물' 한 곡조에 한잔, '부어라 마셔라' 바야흐로 낮술의 황홀경에 빠져 드는데....

 "아자씨, 목포에는 뭔 일로 왔당가요? 이뿐 애인이라도 찾아 왔는 개비여? 호 호 호 호 ".

 갑자기, 흑산도 홍어를 닮은 얼굴의 옆 좌판 아줌마가 끼어든다.

 "나가 이래 뵈도 여학생 때는 한 인물 했당깨. 머심애들이 나를 졸졸졸 따라 다녔지라우. 목포 머심애 치고 나 모르면 간첩이여."

 "예, 그렇게 보이네요. 자, 한잔 더 받으시죠."

마음에도 없는 내 아부성 장단 맞춤에, '흑산도 홍어'는 연신 신바람이 난 눈치다. 세상에 이런 세계도 있었구나. 내가 왜 일찍이 이렇듯 천진무구한 세계를 찾아내지 못했던가? 맞아, 인간세상은 참 무궁무진한 장면의 연속이야!...

 이튿날 아침 여관에서 아침을 대충 해결하고 나서, 서점에 들려 정밀지도를 한 권 사 들고, 무작정 해안선을 따라 걷기로 하고 떠났다. 그러나 지도와 아무리 맞춰 봐도 어디가 어디인지, 거기가 거기인 것 같아서, 지도에 적힌 곳과 하나도 맞춰 낼 수 없었다. 다만, 순서는 영암, 해남, 보성, 순천일 것이라고 어렴풋이 머리 속에 입력시켜 놓은 채, 또 물어물어 길을 걷기 시작했다.

세상만사 다 잊고 맑고도 맑은 대기를 흠씬 마시며 자연의 자애로운 품속을 활보하는 이 행복을 내 어이 상상이나 했었던가! 농촌마을 길을 가다가 주막 같은 곳에 들러서 꽁보리밥에 풋고추를 된장 듬뿍 찍어 뭉틈 베어 물고, 열무김치 잔뜩 끼얹어서 매운 시골고추장 넣고 비벼 먹는 그 맛이라니! 여기에다 막걸리 몇 사발 들이키면 낙원, 천국, 유토피아, 파라다이스, 극락이 어디 따로 있으랴!

걷다가 지치면 어느 무덤 앞 잔디나 풀밭에 벌렁 드러누워 드넓은 창공을 우러러 보며 명상에도 잠겨 보고, 시집을 꺼내 낭송도 해 보고.... 황토 길, 자갈 길, 풀 길을 터벅터벅 걷다가, 어느 이름 모를 해변가 바위에서 운 좋게 해녀 아줌마들을 만나게 되면, 갓 따 온 전복이며, 해삼, 멍게, 잡어를 안주 삼아 또 쐬주 한잔 쭈욱 들이키게 되는데, 이 기막힌 재미와 행복을 그 누가 알소냐.

그런데, 어떤 해녀들은 돈을 줘도 한사코 사양한다. 그럴수록 나는 그들의 노고를 생각해서, 아니 그 넉넉하고 이뿐 마음씨가 기특(?)하고 너무 고마워서, 적지 않은 액수를 던져 주다시피 하고, 급히 자리를 떠난다.
 요즘도 그 옛날 그런 넉넉하고 훈훈한 인심이 아직도 살아 있을까? 요즘처럼 각박해진 세상에서는, 글쎄......

 그렇게 정처 없이 걷다 보면, 그 옛날 한 많은 현실세계의 아픔을 잊으려, 주유천하 호기를 부려가며, 구름 흘러가는 대로, 바람 부는 대로, 하늘을 지붕 삼아 풍찬노숙하던 방랑시인 김삿갓이 떠오르고, 그 천재시인의 심경도 어렴풋이나마 읽을 수 있을 것 같았으나, 그 깊은 속과 오묘한 철학세계를 나 같은 범부가 어찌 감히 짐작인들 하리오! 또 한편으로는, 이조 말기 대동여지도를 만들기 위해, 30여 년간이나 조선 팔도 방방곡곡을 누비셨던 고산자 김정호님 생각도 불현듯 떠올라, 존경심으로 스스로 숙연해지기도 했다.

 오른쪽으로는 질푸른 바다와 파도가 넘실대고, 왼쪽으로는 무성한 숲을 끼고 터벅터벅 걸을라치면, 자연의 위대함과 경건함에 곧잘 압도되곤 했다. 물방울 한 점, 풀 한 포기, 비옥한 흙 한 줌,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아니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퍽 오래 전에 봤던 이태리 흑백영화 '길'('La Strada') [앤소니 퀸(Anthony Quinn), 줄리에타 마시나(Gulieta Masina) 주연]에 나왔던 감명 깊은 대사 한 구절을 기억해 낸 것이다;

  "저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하나도, 쓸데없는 돌은 하나도 없다"

 이태리 시골마을들을 방랑하며 떠돌이 광대 노릇하면서 살아가는 두 젊은 남녀의 사랑과 애환을 그린 비련의 스토리였는데, 약간 저능의 팔푼이 아가씨인 '제르소미나'는 깡패 같은 무식한 '쟘빠노'의 갖은 퇴박과 구박을 다 받아 주며 순애와 순정을 바친다. 그러다가, 결국 그녀가 먼저 죽는데, 인생의 험한 세파를 비유해서 진한 감동을 줌으로써, 객석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던 영화로 기억한다.

 온 세상이 녹음방초로 우거진 농어촌 어디를 가도 우리나라 인심은 참으로 정겹고도 살갑다. 그렇게 유유자적 걷다가, 어느 시골 논두렁 옆 개울에서 동네 청년들이 그물로 천렵을 하는 곳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가만 보니까 잡아낸 미꾸라지며 메기, 붕어가 토실토실 살이 올라, 절로 군침이 돈다. 왁자지껄한 그들의 분위기를 은근히 즐기며 서성거리고 있었더니, 눈치 빠른 이 친구들, 풋고추, 마늘, 고추장, 애호박, 감자를 듬뿍 넣고, 금방 매운탕을 끓여 내더니, "앉으시시요. 보아하니 도 닦는 유랑객 같으신디... 좌우간 우리랑 한잔 하십시다잉" 하지 않는가. 한 대엿새 면도도 못하고 부석부석 꾀제제한 내 몰골이 영락없이 '도를 닦는 浪人(낭인)‘ 쯤으로 비쳤었나 보다.

 - 어이쿠, 인심도 후하시지. 거지(乞人)를 면해 준 것만도 감지덕지 인데, '道士(도사)'씩 이나 -.
 
그들과 논두렁에 앉아 권커니 작커니 하다 보니까, 어느새 긴 여름 해도 서산마루로 뉘엿뉘엿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문학을 하는 친구, 철학을 하는 친구도 있어서, 화제가 다양하고 흥미로웠다. 비록 오다가다 만난 잠깐의 스쳐가는 인연이건만, 그들은 어느새 나와 정이 들었는지, “누추하지만 자기네 집에서 일박하며 쉬고 가라”는 것이다. 참으로 자연의 아량을 닮은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그들의 성의는 고맙지만, 신세지고 폐 끼치기 싫어 굳이 사양하고, 읍내 쪽 여관을 찾아 들었다. 몇날 며칠 흥에 겨워 쉼 없이 강행군한 탓에 꽤 피곤했는데,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나오니, 피로가 싹 가신다. 내친 김에 맥주 두어 병을 게 눈 감추듯 해치우고 나니, “아-, 극락이 어디고 천국이 어드메뇨? 여기가 바로 '파라다이스'로다!

 요즘도 그렇겠지만, 농어촌시골을 떠돌아다닐 때, 운 재수가 좋아야 시골 5일장을 만나게 되는데, 나도 당시 운 재수가 꽤 있었던 모양 같다. 시골 장에는 그 지방의 특산품들이 몰려드니까 진품을 싼 값에 살 수 있었고, 특히 그 난장판에서 벌어지는 각설이타령 하며, 예향 전라도 특유의 판소리, 구성진 풍물 굿 놀이 등, 어깨가 절로 들썩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어디 그 뿐인가,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뭐니 뭐니 해도 먹거리가 첫째가 아닐까? 고소한 기름덩어리를 알맞게 머금은 푸짐한 선지내장국밥, 소담스러운 잔치국수, 잘 삶아진 보리밥에 매큼한 열무김치로 잘 버무린 비빔밥 하며, 우리 고유의 전통음식들을 즐길 수 있어서, 두고두고 감미로운 추억거리로 남아 있다.

내친 김에, 여수, 남해, 하동, 사천, 통영, 거제 등 한려수도까지 섭렵하려 했으나, 서울에서의 선약 일정 때문에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 했다.
 다음번에는 이번과 반대로, 경상도 남해안 쪽으로 터벅터벅 걸어서, 사천, 삼천포, 하동까지 섭렵해야지...

 이제는, 그 경험들이 다 흘러가 버린 감회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을 뿐이지만, 살다 보면 괜히 짜증스럽고 화가 치밀고 때로는 쓸쓸하고 외롭고, 누군가가 그리워질 때면, 나는 무작정 날뛰며 휘젓고 다니던 그 때를 회상하곤 한다. 지금 다시 그 곳에 가면, 그 시절과 같은 감흥을 또 다시 엔조이 할 수 있을까? 아닐 거야. 삼라만상 모두 다 세월 따라 변하고 무상한데, 무얼 기대 하느뇨? 이 철부지[季不知] 인생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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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된소리 |  2007-07-20 오후 6:34: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2007-07-20 오후 4:22
2007-07-20 오후 6:29

첨오셨는디^^
두시간 남짓에 장문의 글을 또하나?  
헛된소리 |  2007-07-20 오후 6:43: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글속에 작가님의 성픔이 엿보일 듯 하네요^^  
헛된소리 성픔- 성품 으로 정정^^
愚公^^移山 |  2007-07-20 오후 7:42: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잘읽고 갑니다. 두번 추천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별天地 |  2007-07-20 오후 9:46: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교련복, 아니 카키복 비슷한 복장에 선글라스 눌러쓰고 베낭을 둘러메고
두꺼운 혁대엔 도끼 한자루 그리고 배낭뒤엔 접은 삽 한자루 에 워커를 신은
무전여행객 ,, 그 시절 최고로 멋있게 보였었는데 ~  
운영자55 |  2007-07-20 오후 10:46: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찔레꽃님...인쇄(활자)매체의 종이책과는 달리 인터넷글은 가독성을 고려해 문단을 가급적 자주 구분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글이 전체적으로 문단 구분이 없어 제가 허락없이 조정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냥 enter을 치는 것과 shift+enter 치는 것과는 행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후자가 행간이 조금 벌어지지요. 참조하시길...  
헛된소리 아, 그런 기능이 또 있남요? 한 수 뱁웠습니다^^
음모자 |  2007-07-21 오전 7:18: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저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하나도, 쓸데없는 돌은 하나도 없다"
몸소 체험하신 느낌이 마음에 다가옵니다^^  
BomSol12 |  2007-07-21 오전 9:30: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찔레꽃 볽게피는 남쪽나라 내고향 언덕위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생전에 우리어머니의 애창곡 이었는데..
그때 그시절 이 생각납니다. 잘 읽었습니다.
 
맥점구사 |  2007-07-21 오후 3:07: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  
마음의여정 |  2007-07-23 오전 9:59: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완행열차..바삐 산다는 핑계로 KTX만 타다가 얼마전 우연히 무궁화호를 타고 서울로 돌아올 일이 있었는데..세상에! 시간에도 상대성의 원리가 있더군요. 느리게 움직이는 세상이 훨씬 아름답다는 걸 가끔씩 잊고 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늘 좋은 글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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