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밤, 그 시간에 왜 내가 혼자 되었는지 기억이 안났다.

좌우지간 밤 열 두 시가 훨씬 지난 시간에 나는 도심에서 혼자가

되어 있었다.

무척 취해 있었던 상태였었지만 나는 어쨌던 한잔을 더 해야 하

겠다고 생각하면서 술집을 찾고 있었다.

하나 둘 네온이 꺼져 가는 가운데, 머잖은 곳에 붉은 빛을 뿜는

포장 마차가 눈에 띄었다.

나는 포장을 들추고 들어서서는 아무 자리에나 털석 주저 않았다.

꼼장어 구이 한 점과 소주 한 잔으로 목마름을 축이고 있자니 슬

그머니 내 옆자리에 앉는 사나이가 있었다.

약간 마른 체형에 이목구비가 확실 한 것이 제법 잘생긴 얼굴이

었지만 어딘가 허무해 보였다.

나는 이런 사람을 싫어 한다.

왜냐하면 허무는 전염되기 쉬운 것이고 나는 전염되는 것을 아주

 혐오하기 때문이다.

< 흐으, 형씨, 내 기막힌 야그를 함 들어 보실라우? >

사나이는 자신의 술잔을 훌쩍 비우고는 내 앞에 타앙, 놓았다.

나는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약간의 호기심이 일었기에 그의 빈

잔에 술을 채워주며 말했다.

< 세상에 기막힌 야그가 진따 어디 있겠소만 함 해 보시우… >

< 나는 평범한 사람이었소…결혼해서 마누라 있었고 … 두 살배

기 아들도 하나 있었고…머,짜릿하게 행복 하지는 않았지만…그

저 인생이 모두 그러려니 하고 살아 왔었소…험, >

사나이는 나의 빈 술잔을 채워 주고 나서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 그런데 말이오 형씨, 이 년 전이었었소

퇴근하여 집에 와 보니… 마누라와 아이가 사라져 버렸단 말이오

.잠시 시장에라도 간 모양이구나 하고 기다려 보았지만…마누라

와 아이는 돌아 오지 않았소.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그러면서

 이 년이 흘러 버린 것이오.>

사나이와 내가 거의 동시에 잔을 비웠다.

나는 그와 나의 잔을 채우면서 그의 이야기가 계속되기를 기다렸

다.

< 마누라와 아이를 잃어 버렸다는 것은 나의 모든 것을 잃었다는

 의미라 그 말 입니다.

나는 그만 혼이 나간 사람처럼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단 말이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 난 것인지, 누구라도 붙들고 묻고 싶

었단 말이오.

나는 시방 내가 비통해야 할 것인지, 좌절 해야 할 것인지, 아니

면 분노해야 할 것인지 도무지 판단이 서지 않는단 말입니다.>

나는 아주 오래 전부터 친한 사이 였던양 사나이와 잔을 짜안~

부딪쳐 비운 다음에 말했다.

< 이 보우, 아우씨…

그런 일은 아주 흔한 이야기요.

가만히 집 구석에 박혀 있던 백수가 갑자기 집을 뛰쳐 나가 차에

 치어 죽는다던가…

아침에 출근 한다고 차를 몰고 나갔던 사람이 출근 길과는 엉뚱

한 곳에서 교통사고로 죽는다던가…

행복한 가정을 꾸려 가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수 십억의 공금

을 횡령하고는 모든걸 버리고 해외로 날라 버린다 던가…

도무지 일어 날 수 없는 일이 매일 매일 일어 나고 있단 말이

오.>

나는 술 한 병과 안주 한 접시를 더 시키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 아우씨, 내 야그도 함 들어 보실라우?

내 아내도 가출을 해 버렸었오…7년 전이었었소…

그런데 말이우, 이 년전 이었었소…

내가 퇴근하여 집에 돌아와 보니 누군가가 부엌에서 밥을 짓고

 있었단 말이오.

잠시만 기다려요, 곧 밥상 올릴게요…하면서 말이오.

집을 나갔던 아내 였소. 그녀는 두 살쯤 되어 보이는 얼라도 데

리고 왔더구먼…흐흐흐, >

우리는 서로 외면하며 술잔만 비웠다.

< 나는 누구라도 붙들고 묻고 싶었단 말이오…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 났느냐고 말이오.

나는 시방 비통해야 할 것인지, 히안한 인생에 순응해야 할 것인

지, 분노해야 할 것인지 도무지 판단이 서지 않는단 말이오.>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던 양 포장마차를 나와 서로 헤어졌다.

그는 오른 쪽으로, 나는 왼 쪽으로…

포장마차에서 전혀 모르는 사람과 합석하여 한잔 술을 나누는 것

은 아주 흔한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