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순 노인네와의 삶 파란만장하다

모자지간이 아니라 30여 년 간병전우로서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여간 아니나

이제 누구의 간병도 받지 말자 하셨던 엄니가 쓰러지신지 반년이 넘었다.

“요건 내가 하께”

오이 냉국을 먹고 싶다 하셔 놓고 재료가 없어 마트에 갔다 오고

이것저것 챙기는 걸 보고 침대에서 오이를 달라 하신다

“됐고.”

했다가 도마와 판을 들고 가져다 드렸다.

신세를 갚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보편적인 방법은 형편이 조성되면 갚는다는 것이지만 글쎄다.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고 인연은 이해해주지 않는다.

양파와 깨소금 참기름 미역 다진 마늘 그리고 간은 조선간장으로 해야 제맛이다

당신이 뭐든 도움이 되고 싶고 환갑이 지난 아들이 늘 어설프다.

여튼 우리는 올망졸망 궁시렁거리며 오이 냉국을 완성하였고 엄니는 오이만 썰었어도

도왔다는 만족감 나는 정성을 보인다는 만족감에 밥상을 마주하니

오호.!

이거 제대로 되었다.

서로 자랑하고 칭찬하며 밥 한 그릇씩 뚝딱 하고 티비 앞에 앉았다.

연속극을 좋아하시지만 내가 싫어한다고 이리저리 돌려 테마기행이나 동물농장

재방송을 찾는다.

이유는 한가지. 내가 같이 놀아주기 때문이고 내가 신경 쓰는 일이다.

오랜 간병에서 느낀 것은 나이 들어 상실감을 느낄 때 하찮은 관심거리에도

옆에 있어 주는 것이고 작은 지식에도 놀라워하며 칭찬을 많이 해야 한다.

그들은 우리보다 어려운 시기와 조건에서 행동했다.

30대에 버림받은 여인은 이제 내 자식이 되었다.

이 못난 아들 믿고 식당에서 일하며 반항하던 사춘기를 견뎌 내셨기에

지금 나와 친구처럼 혹은 부부처럼 그렇게 알콩달콩 살지만

내 욕심에 잘한다고 하는 게 역정도 자주 낸다.

여생 호강시켜드리지 못하는 건 조건을 갖추고 하기엔 시간이나 미래가 묘연해

있는 조건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을 걷는다.

내가 얼마를 버틸지 모르지만 내 자식을 두고 먼저 가고 싶진 않고

부귀영화 없는 삶이나 신세 갚다 쓰러지고 싶다.